말의 말/3. 셋째 마당 - 口 4

왕휘지王徽之가 문을 열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밤이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보고 싶었다. “배를 띄워라!” 그 밤, 밤새 노를 저어 대안도의 집 대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가자, 배를 돌려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 갸웃하는 노꾼에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흥이 나서 왔지만 이제 흥이 다했으니, 됐네.” 그리움이었을까, 눈 내리는 밤, 이 양반 가슴을 흔들었던 흥이란 것이. 지금으로부터 1천 6백여 년 전, 중국 동진 때 이야기이다. 온 산천을 하얗게 만든 흰 눈이 이 그리움의 배경으로 제격이다. 이 둘이 만나 술잔 기울이며 새벽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았어야 그 맛이 더 진했을 것이다. 맛이 진해야 멋이 넘..

독서의 멋

경서는 겨울에 읽기 좋다. 그 당시 사람들의 정신에 쉽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여름에 읽기 좋다. 이때 대낮이 길어 기분 좋게 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백가는 가을에 읽기 좋다. 이때 하늘 높고 날씨 상쾌하여 남다른 운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선비들의 작품은 봄에 읽기 좋다. 이때 만물이 일어나며 생기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또 경전은 홀로 앉아서 읽으면 좋고, 역사는 친구와 함께 읽으면 좋다. 청淸 나라 때 장조張潮의 소품 문집 가운데 한 구절이다. 계절에 따른 독서의 갈래를 재미있게 내보인다. 계절이 다르면 책을 읽는 느낌도 다르다는 데 이르면 이 분의 다양한 독서 경험이 손에 닿는 듯하다. 여러 가지 독서 환경 가운데 옛 선비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야독夜讀’이었다..

알과녁을 맞힌 한 발의 화살과 훌륭한 말

자금子禽이 물었다.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까?" 묵자墨子가 대답했다. "두꺼비와 개구리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도 귀 기울이는 이 없네. 하지만 수탉은 날 샐 무렵 때 맞춰 울어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며 온갖 만상을 깨우네. 말 많은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때맞춰 하는 말이 중요하지." 춘추시대 말엽에서 전국시대 초엽에 걸쳐 살았던 농민 출신 사상가 묵자의 언행을 뒷날 제자들이 편찬한 저서 '부록' 가운데 한 부분이다. 말 많은 이와 함께하면 불안하다.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온누리에 가득한 듯하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입을 온전히 제대로 간직하며 침묵할 줄도 안다. 그러나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은 제 거짓을 참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입을 혹..

무게 없는 말은 침묵보다 가볍나니

위衛 나라의 어떤 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다. 새댁은 수레에 오르자 마부에게 이렇게 물었다. "바깥쪽에서 달리는 말은 뉘 집 것이오?" "빌렸습니다." 그러자 새댁이 마부에게 이렇게 일렀다. "바깥쪽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해도 되지만 안쪽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해선 안 되오." 수레가 신랑 댁 문간에 이르자 새댁은 들러리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렸다. 이때, 새댁이 들러리에게 이렇게 일렀다. "빨리 부엌의 불을 끄게, 자칫 불나겠네." 새댁이 이제 방에 들어가려는데, 마당에 놓인 돌절구가 눈에 들어오자, 이번에는 이렇게 일렀다. "이놈을 창문 아래로 옮기게, 오가는 이들에게 거치적거리겠네." 이 말을 들은 신랑 댁 어른들이 피식 웃었다. 새댁이 이른 세 마디는 하나같이 꼭 필요한 말이었지만 비웃음을 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