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말 37

백성이 곧 하늘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물었다. “임금이라면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요?” 관중이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께서는 마땅히 하늘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환공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자 관중이 다시 말했다. “제가 말씀 올린 하늘은 가없이 넓고 넓은 하늘이 아닙니다. 임금께서 백성을 하늘로 삼으면, 백성은 임금을 지지하고 나라는 평안해지고, 임금께서 백성을 하늘로 삼으면, 백성은 임금을 도와주고 나라는 강대해집니다. 그러나 백성이 임금을 비난하면 나라는 위험에 빠지고, 백성이 임금을 배반하면 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유향劉向의『설원說苑』「건본建本」 가운데 한 부분이다. 군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친 채 주색에 빠졌던 제나라 양공襄公의 뒤를 이어 자리에 오른 환공이 춘추시대 첫 번..

세 가지 위험

세상에는 세 가지 위험한 일이 있다. 덕이 모자라는데도 윗사람의 총애를 많이 받는 것이 그 한 가지 위험한 일이요, 재능은 별로 없는데 지위가 높은 것이 또 한 가지 위험한 일이요, 큰 공을 세우지 않았는데 봉록을 후하게 받는 것이 마지막 한 가지 위험한 일이다. '인간훈人間訓'가운데 한 구절을 뽑았다. 덕이 모자라는데도 윗사람의 총애를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마다않는 게 사람이다. 제 재능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재능 있는 이 누르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온 힘을 다 쏟는 게 또 사람이다. 큰 공 세우지 않았는데도 녹봉은 후하게 차지하려는 게 사람이다. 욕망 때문이다.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임계점을 넘어 탐욕으로 바뀌는 순간 죽음은 턱 앞이다. 인간의 욕망은 권력을 오로지하려는 자가 이용하는 덫이..

왕휘지王徽之가 문을 열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밤이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보고 싶었다. “배를 띄워라!” 그 밤, 밤새 노를 저어 대안도의 집 대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가자, 배를 돌려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 갸웃하는 노꾼에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흥이 나서 왔지만 이제 흥이 다했으니, 됐네.” 그리움이었을까, 눈 내리는 밤, 이 양반 가슴을 흔들었던 흥이란 것이. 지금으로부터 1천 6백여 년 전, 중국 동진 때 이야기이다. 온 산천을 하얗게 만든 흰 눈이 이 그리움의 배경으로 제격이다. 이 둘이 만나 술잔 기울이며 새벽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았어야 그 맛이 더 진했을 것이다. 맛이 진해야 멋이 넘..

독서의 멋

경서는 겨울에 읽기 좋다. 그 당시 사람들의 정신에 쉽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여름에 읽기 좋다. 이때 대낮이 길어 기분 좋게 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백가는 가을에 읽기 좋다. 이때 하늘 높고 날씨 상쾌하여 남다른 운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선비들의 작품은 봄에 읽기 좋다. 이때 만물이 일어나며 생기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또 경전은 홀로 앉아서 읽으면 좋고, 역사는 친구와 함께 읽으면 좋다. 청淸 나라 때 장조張潮의 소품 문집 가운데 한 구절이다. 계절에 따른 독서의 갈래를 재미있게 내보인다. 계절이 다르면 책을 읽는 느낌도 다르다는 데 이르면 이 분의 다양한 독서 경험이 손에 닿는 듯하다. 여러 가지 독서 환경 가운데 옛 선비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야독夜讀’이었다..

안목眼目

무릇 사물은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라지 싹은 벼이삭처럼 보이고 검은 소의 황색 무늬는 호랑이처럼 보이며, 백골은 상아처럼 보이고, 붉은 바탕에 흰무늬가 있는 돌은 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 즉 ‘사이비’이다. '위책1魏策一'에서 뽑아왔다. 전국시대 초기에는 위魏 나라가 칠웅 가운데 앞이었다. 인재를 알아본 위문후魏文侯와 그의 뒤를 이은 위무후魏武侯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 이야기는 임지 업현鄴縣으로 떠나는 서문표西文豹가 공을 세우고 이름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위문후가 내놓은 말 가운데 한 부분이다. 권력을 가진 자 곁에는 권력의 한 부분이라도 손에 쥐려는 자들이 떼로 몰려든다. 이들..

오독誤讀

노魯 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기夔는 다리가 하나뿐이라는데 믿을 만하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는 사람인데 어떻게 다리가 하나뿐이겠습니까? 기는 다른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단지 음률에 정통했을 뿐입니다. 요堯 임금께서, ‘이런 사람이라면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하다.’라고 이르며 악정樂正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군자가 이르기를, ‘기 한 분만 있으면 족足하다[夔有一, 足]’라고 했지, ‘기는 다리[足]가 하나[夔有一足]’라는 말이 아닙니다.” '외저설좌하外儲說左下'에서 한 부분 가져왔다. 잘못 읽으면 그릇되게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 이는 글뿐만 아니라 세상에 두루 통하는 이치이다. 사람 잘못 읽고 긴한 자리에 앉히면 낭패가 코앞일 터. 시세 잘못 읽고 큰돈 던졌다가는 큰코..

쓸모없는 사람 없다

예전에 공손룡公孫龍이 조趙 나라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교분을 맺지 않네.” 이때, 허름한 옷에 낡은 새끼로 허리를 동인 사람이 공손룡을 찾아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렇게 아뢨다. “저는 고함을 잘 지릅니다.” 이 말을 듣자 공손룡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 가운데 고함을 잘 지르는 자가 있느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공손룡은 이렇게 일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우리 곁에 머물도록 하고 이름을 명부에 올려라.” 며칠 뒤, 공손룡은 연燕 나라 임금에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길을 떠날 일이 생겼다. 황하에 이르러 강 양쪽을 오가며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는 배가 강 저쪽에 있음을 알았다. 고함을 잘 지르는 자를 불러 이 ..

곧은길이나 질러가는 길보다 더 편리한 길은 없다. 그러나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은 없다. 대체로 새롭고 독특함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곁문을 내어 집안 식구들이 드나들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닫아서 아담하고 우아한 운치를 살리면서 실제 생활의 쓰임을 모두 갖추도록 했다. 『한정우기閑情偶寄』「거실부居室部」〈방사제일房舍第一〉가운데 ‘도경途徑’ 꼭지 전문을 몽땅 데려왔다. 구불구불 곡선으로 그려진 길이 우리가 걸었던 길의 원형이다. 길은 원형을 허물고 변형으로 치닫기를 결코 소망하지 않았지만 곡선의 부드러움과 정겨움을 허문 이는 인간이었다. 길의 원형을 허물기 시작한 인간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

알파고의 무례無禮

그러기에 사람이 예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예가 없으면 이룰 수 없고, 국가도 예가 없으면 안정될 수 없다. (故人無禮則不生, 事無禮則不成, 國家無禮則不寧.) '수신修身'에서 가져왔다. 나는 바둑의 고수라는 중국의 커제柯潔가 알파고에게 세 번이나 잇달아 진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키득키득 한참이나 웃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바둑 고수 이세돌李世乭이 커제에 앞서 붙은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한 판 이겼다고는 하지만, 이는 바둑의 역사에서 마지막이 될 결과임에 분명하다. 나는 이런 대국을 세기의 대국이라 널리 알리며 자기 회사 선전에 열을 올리는 구글이 정말 염치없는 짓을 한다며 혀를 찼다. 염치없는 짓이란 바로 타자에 대한 예의를 잃은 행동을 낮잡아 이를 때 ..

내홍內訌

동물 가운데 훼虺라는 독사는 한 몸에 두 개의 입이 달렸다. 이놈이 먹을 것을 두고 다투느라 서로 물어뜯으며 싸웠다. 결국 이 두 개의 입이 서로 잔인하게 물어뜯다가 자기를 죽이고 말았다. 신하들이 권력과 이익을 더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나니, 이는 모두 독사 훼와 다름이 없다. '설림하說林下'에서 가져왔다. 한 나라나 집단 안에서 그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이 외부의 적과 벌이는 싸움보다 더 위험하다. 내홍으로 입은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 통증은 오래가고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부른다. 분단 때문에 치러야 했던 싸움으로 더 깊은 분단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대사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조정래 선생의 엔 '분단과 전쟁'이 앞서고 '전쟁과 분단'이 그 뒤를 잇는 꼭지로 엮어진다..

본성本性

검중黔中이란 자가 제齊 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그런데 이 양반, 뇌물을 좋아하다가 쫓겨나 생활이 곤궁하게 되자 환룡豢龍 선생을 찾아가서 이렇게 아뢨다. “소인이 재물을 탐내다가 지금 이렇게 벌을 받느라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른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다시 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는 뇌물을 챙기다가 다시 파면되었다. 그러자 환룡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현석玄石이란 자가 술을 좋아하다가 과음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지. 오장은 불에 쐰 듯 말라버리고 살과 뼈는 수증기를 쬔 듯 갈라졌는데, 온갖 약을 써도 되지 않았지. 사흘이나 지나서야 겨우 주독이 풀리자 곁에 있는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지. -이제 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작정이네...

제대로 살기

나이 아흔 되니 지난 여든아홉 해를 잘못 살았음을 알았네. (年九十而知八十九非.) 한 세상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오로지하던 어떤 이가 세상 떠나기 즈음하여 스스로 지은 묘비명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 사람, 나이 여든에는 지난 날 되돌아보지 않았을라? 그렇다면 지난 일흔아홉 해를 깊이 뉘우쳤을 터이다. 하기야, 이 사람, 스스로 지었다는 이 말을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생각에 찾아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거백옥은 나이 쉰 되니 지난 마흔아홉 해를 잘못 살았음을 알았네. (蘧伯玉五十而知四十九非.) 춘추시대 거백옥蘧伯玉의 이야기로 '원도훈原道訓'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세상 온전히 잘 사는 이는 언제나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궤도 수정을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온전한 인격에 도달하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돈 세다 잠드소서

영주永州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수영을 익숙하고 능란하게 한다. 어느 날, 물이 갑자기 불어났는데도 대여섯 사람이 자그마한 배를 타고 상강湘江을 가로 건너고 있었다. 중간쯤 이르렀을 때, 그만 배가 파손되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건너편 기슭을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헤엄을 쳐도 평상시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를 본 그의 또래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 헤엄 솜씨는 알아주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뒤처지는가?” “엽전을 천 냥이나 허리에 찼더니 무거워서 뒤처지네.” “왜 버리지 않는가?” 그는 대답 대신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제 기슭에 닿은 또래가 그를 향해 목소리를 한껏 높여 내질렀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 손가락만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는 돌덩어리를 황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여 재물에 대한 탐욕이 적은 이를 찾아 신선으로 만들려고 했다. 골골샅샅 찾았지만 이런 이는 없었다. 커다란 바위를 황금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지만 모두 너무 작다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에게 신선은 돌덩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이 돌을 황금으로 만들어 네게 줄 것이니라.” 하지만 이 사람은 고개를 흔들며 필요 없다고 했다. 신선은 이 양반이 돌덩이가 작아서 그러는 줄 알고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저 바위를 황금으로 만들어 네게 줄 것이니라.” 그래도 이 양반은 고개를 흔들며 필요 없다고 일렀다. 신선은 재물에 대한 탐욕이 전혀 없는 이런 양반을 만나..

알과녁을 맞힌 한 발의 화살과 훌륭한 말

자금子禽이 물었다.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까?" 묵자墨子가 대답했다. "두꺼비와 개구리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도 귀 기울이는 이 없네. 하지만 수탉은 날 샐 무렵 때 맞춰 울어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며 온갖 만상을 깨우네. 말 많은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때맞춰 하는 말이 중요하지." 춘추시대 말엽에서 전국시대 초엽에 걸쳐 살았던 농민 출신 사상가 묵자의 언행을 뒷날 제자들이 편찬한 저서 '부록' 가운데 한 부분이다. 말 많은 이와 함께하면 불안하다.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온누리에 가득한 듯하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입을 온전히 제대로 간직하며 침묵할 줄도 안다. 그러나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은 제 거짓을 참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입을 혹..

부부의 기도

위衛 나라의 어떤 부부가 함께 기도를 했다. 먼저 아내가 간절히 바라며 빌었다. “저에게 시련을 거두어 주시고 그저 삼베 일백 필만 손에 쥐게 하소서.”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왜 겨우 그것뿐이오?” 이 물음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작은마누라 들일 테니까요.” '내저설하內儲說下'에서 가져왔다. 본성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그 일이 자기에게 미칠 이해관계부터 셈한다. 더구나 재물은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요물이다. 이 요물은 소망을 욕망으로 재빨리 바꾼다. 아니 욕망을 건너뛰어 탐욕의 키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키운다. 다른 한편, 참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재빨리 짚어내는 이 여인의 지혜를 지나칠 수 없다. 사랑 없는 ‘함께’..

참 용기

25년 봄, 제나라 최저崔杼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노魯 나라 북쪽 변경을 공격했다.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양공25년襄公二十五年'에서 앞 부분 두 문장만 가져왔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 장공莊公이 대부 최저의 아내와 남몰래 정을 통했다. 이를 안 최저는 계책을 세워 장공을 죽이고 그의 배다른 동생 저구杵臼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고 최저 자신은 스스로 재상 자리를 차지하고 제멋대로 조정을 오로지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임금을 죽였기에 자못 두렵고 불안했다. 이 사실을 사관이 그대로 역사에 기록하면 천고에 오명을 남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태사太史를 가만히 불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매하고 무능한 임금이 세상을 떠났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

효빈效嚬

공연 중에 이루어지는 상투적인 스타일은 가지각색이라 하나하나 다 셀 수 없는데, 참으로 격이 낮고 속된 내용을 어느 한 사람이 연출하고 나면 수많은 이들이 이를 본받아 표준으로 굳어지니,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로다! 17세기 청淸 나라 극작가 이어李漁의 '연습부演習部'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그가 ‘괴이쩍은 일’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도 여러 사람의 눈길을 받는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단지 이들의 비속한 행동이 미칠 부정적인 결과를 염려했음이 분명하다. 옛적 초楚 나라 영왕靈王이 몸매 가는 사람 좋아하자 이 나라 사대부들이 먹을 것 덜 먹으며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물론 온 나라 백성들이 이를 본받아 굶어죽더라도 몸매 날씬해지기를 간..

역시 사람이다

환공桓公이 마구간을 돌보는 관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가장 어렵소?” 마구간을 돌보는 관리가 미처 대답을 못하자 관중管仲이 입을 열었다. “저 관이오管夷吾가 일찍이 말을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마구간의 울짱을 겯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먼저 굽은 나무를 써서 결으면 또 굽은 나무를 써서 결어야 합니다. 이렇게 굽은 나무로 결으면 나중에는 곧은 나무는 쓸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먼저 곧은 나무를 써서 결으면 또 곧은 나무를 써서 결어야 합니다. 이렇게 곧은 나무로 결으면 나중에는 굽은 나무가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관자管子』「소문小問」에서 한 단락 데려왔다. 역시 사람이다. 굽은 나무를 재상 자리에 앉혔더니 줄줄이 알사탕 엮듯이 재상 아래로 참모들 모두 ..

끝나지 않는 아픔

그대 없이 한식을 맞으니, 눈물이 금빛 물결처럼 쏟아지네. 달 속 계수나무 잘라내면, 달빛 더욱 깨끗하고 맑으리. 헤어질 때 밝은 달빛 흩뿌렸는데, 그대 지금 이마 찌푸리고 있겠지. 견우직녀는 이별에 시름겨워도, 기약한 날 그래도 은하를 건너겠지. 無家對寒食, 有淚如金波. 斫却月中桂, 淸光應更多. 仳離放紅蕊, 想像嚬靑蛾. 牛女漫愁思, 秋期猶渡河. 당나라 때의 천재시인 두보杜甫의 전문이다. 고향 떠난 지 1백 일 하고도 닷새가 된 어느 날 밤, 달 마주하며 보고픈 이 그리는 두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예나 이제나 저쪽이나 이쪽이나 우리에게 아픔을 한 아름 안긴다. 일천 몇 백 년 전, 두보도 사랑하는 처자식과 헤어진 지 석 달 넘은 어느 날 밤, 달을 바라보며 이렇게 그리움..

한단학보邯鄲學步

그대는 연燕의 수릉壽陵에 사는 어떤 젊은이가 조趙의 서울 한단邯鄲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한단에 가서 이들의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결국 이 젊은이는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자기 걸음걸이 자세마저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땅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네. 「추수秋水」가운데 한 부분이다. 학문과 변론은 물론 사상가로서도 당대 최고라고 자부하던 조나라 사람 공손룡公孫龍에게 위魏 나라 공자 위모魏牟가 들려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공손룡이 그만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칼날이 번득이고 피가 튀던 전국시대에 (이런 글을 남긴 장자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연나라 수릉의 이 젊은..

알묘조장揠苗助長

송宋 나라의 어떤 농부가 자기가 심은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어린 농작물을 하나하나 살짝 들어올렸다. 피곤했지만 만족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참 피곤하오. 내가 어린 농작물 싹이 잘 자라도록 좀 도와주었소.” 아들이 급히 달려가 살피니, 어린 싹은 벌써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공손추상公孫丑上'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이곳 한국 땅에는 옛적 이 농부처럼 제 자식을 다루는 부모가 있다, 아니 많다. 2천 몇백 년 전,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도 알묘조장하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한탄했지만, 이제 좀 가만히 두시라, 자식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오로지 자연의 이치 따라 그냥 북돋아 주면 될 일이다. 엄동설한이 아무리 매서워도 오는 봄 앞에 무릎 꿇는 이..

목불견첩目不見睫

동해의 신 약若이 푸른 모래톱에 놀러 나왔다가 우강禺强도 만났다. (이날, 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의 순찰에) 조개와 물고기 들이 나와 서열에 따라 늘어서서 알현했다. 기夔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때, 기의 모습을 본 자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소?” 기의 물음에 자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껑충껑충 뛰는 모습이 우습소이다. 그러다가 넘어질세라 걱정이오.” 그러자 기는 이렇게 되받았다. “제 걱정 접어두고 이 몸 걱정해 줘서 고맙소만, 참, 걱정도 팔자로소이다. 네 발로 길을 가면서도 제 몸 하나 건사 못 해 절뚝거리면서 내 걱정을 하며 키득거리니 말이오.” 먼저, 이 글에 등장하는 '약若'은 다르게 '해약海若'이라고도 하며 중국 옛 신화 속의 '해신海神'을 말한다. 또 이 글이 두 번째 등장인물 '우강禺..

군주가 지켜야 할 도리

진晋 나라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어떻게 왕도를 펼쳐야 할까요?” 사광의 대답은 이러했다. “왕도를 펼치려면 청정 무위해야 하고 백성을 두루 아끼는 데 힘써야 하며 인재를 뽑아 써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널리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살펴야 합니다. 게다가 세상의 비속함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홀려서도 안 됩니다. 고요한 상태에서 멀리 바라보면 여러 사람 가운데 분명 돋보일 것입니다. 이어서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자주 살피면서 이로써 신하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주가 왕도를 펼치는 데 갖추어야 할 몸가짐입니다.“ 사광의 말을 다 들은 평공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훌륭하오!” 서한시대 문학가 유향劉向이 펼친 '군도君道'..

귀 둘 입 하나

송宋 나라에 사는 정 아무개는 집 안에 우물이 없어서 언제나 사람 하나를 두어 밖으로 나가서 물을 떠와야 했다. 그는 집 안에 우물을 파고서야 동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물을 파서 사람 하나 얻게 되었소." 이 말을 들은 이가 다른 사람 귀에 이렇게 전했다. "정 아무개가 우물을 파다가 사람 하나를 얻었대." 송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수군거렸다. 결국 나라님도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정 아무개 집으로 보내 사실을 알아보았다. 정 아무개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제 말은 우물을 파고 나니 밖으로 나가서 오로지 물만 길어 오던 사람에게 집안일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지, 우물 안에서 사람을 파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여불위呂不韋가 자신의 문객들과 함..

포원蒲元의 지혜

에 이렇게 일렀다. 포원은 보통사람과는 달리 생각이 유달리 뛰어나고 재치가 있었다. 그가 사곡斜谷에 있을 때, 제갈량을 위하여 3천 자루나 되는 군도軍刀를 만들었다. 칼이 다 완성된 뒤에 이렇게 말했다. "한중漢中 지방의 물은 단물이기 때문에 담금질에 쓸 수 없고, 촉강蜀江의 물은 센물이기 때문에 쇠붙이의 정기를 모을 수 있소이다. 이런 구별은 하늘이 만든 것이오." 이리하여 그는 사람을 성도成都로 보내 그곳 촉강의 물을 떠오도록 했다. (이 사람이 돌아온 뒤) 그는 이 물로 담금질을 해 보고 이렇게 말했다. "부강涪江'의 물이 섞여서 담금질하는 데 쓸 수 없구려." 이 물을 떠온 이가 부강의 물이 섞였을 리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포원은 칼을 들어 물을 한 번 휘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강의 물이 여..

인화人和

군대를 부려 전투를 벌이려면 사람의 마음을 한데 뭉쳐 화합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한데 뭉쳐 화합하면 동원력을 내리지 않아도 뜻을 모아 작전에 참여한다. 만약 고급 장교들이 근거 없이 서로 의심한다면 사병들이 온 힘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계책도 받아들이지 않고 부하들은 불만을 터뜨리며 서로 상대방을 헐뜯게 된다. 이렇게 되면 탕湯이나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지혜와 계략으로도 보잘것없는 이 하나를 부너뜨릴 수 없는데 여러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제갈량諸葛亮이 펴낸 두 번째 권에서 '화인和人'을 몽땅 옮겨왔다. 어디 군대를 부려 전투를 벌이는 일만 그러하겠는가? 여러 사람이 마음으로 서로 뭉쳐 화합하지 못하면 제대로 될 일 어디 있겠는가? 화합하지 못하면 앞을 막아선 자그마한 언덕도 태산보다 높..

향기 넘치는 부부

밥상을 물리고 나면 (남편과 함께) 귀래당歸來堂에 앉아 차를 우렸다. 그러면서 가득 쌓인 책을 가리키며 어떤 전고典故가 어느 책 몇 권 몇 쪽 몇째 줄에 있는지 알아맞히기로 승부를 결정하여 차를 마시는 순서를 정했다. 맞히면 찻잔을 들고 크게 웃다가 가슴에 찻물을 쏟아 한 모급도 마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환경에서 한 평생을 지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비록 환난과 곤궁 속에 살지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북송과 남송 어름에 살았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의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청조는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사대부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열여덟 살에 스물한 살 난 태학생 조명성趙明誠과 북송의 도성 변경汴京에서 결혼했다. 때는 휘..

정사초鄭思肖의 지절

"어떤 놈이 흙을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는가?" "흙도 뿌리도 그리지 않고 잎과 꽃만 그렸으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떤 이의 이 물음에 정사초가 버럭 목소리를 높인 되물음이다. "아니, 어떤 놈이 흙을 다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호통이었다. 이 호통 속에는 원元에 나라를 내어준 송宋의 유민으로서의 애절하고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라가 망하자 그는 자기 이름까지 '사초思肖'로 바꾸었다. '초肖'는 '조趙'의 오른편을 취한 글자이다. 조씨가 세운 자기 조국 송宋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송을 세운 황제가 바로 '조광윤趙匡胤' 아닌가. 정사초의 지조와 절개가 서릿발이다. 그가 그린 국화 제시에도 무릎 꿇지 않으려는 그의 기개가 자못 오롯하다. 꽃이 피어도 ..

남당의 서예가 서현의 '마침내'

남당南唐의 서현徐鉉은 소전小篆에 능했다. 그가 쓴 소전 작품을 햇빛에 비춰보면, 필획의 가운데에 한 가닥 짙은 먹물이 공교롭게도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필획이 구부러진 곳에도 짙은 먹물은 역시 한가운데에 있다. 필획 양쪽에 이 짙은 먹물이 치우치지 않았으니, 이는 필봉이 뒷걸음치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언제나 필획의 한가운데를 직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전 서법의 진정한 운필법이다. 서현이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왜편법歪匾法을 알아냈소." 대체로 소전은 보통 여위고 긴 것을 좋아한다. 절충하여 비스듬하고 평평한 운필법을 쓰는데,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서예가가 아니면 쓸 수 없다. 11세기 북송의 학자 심괄沈括이 펴낸 '서화書畵' 가운데 한 부분을 데려왔다. '늘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