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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84년, 악의樂毅가 이끄는 연燕 나라 군대가 제나라 국경을 넘어 도성 임치臨淄까지 손에 넣었다. 당시 연나라 군주는 소왕昭王. 그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날부터 이웃 제나라를 무릎 꿇릴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요 선왕인 연왕쾌燕王噲가 제나라의 침공으로 당한 아픔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전국시대 다른 어떤 제후국과 마찬가지로 계획의 출발은 인재 영입이었다. 아경亞卿으로 발탁된 위魏 나라 출신 악의가 연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선 데에는 소왕이 기울인 인재 영입이 열매를 맺은 결과였다.
당시 제나라 군주는 민왕湣王, 자리에 오른 지 열일곱 해 되는 해였다. 그도 어질고 착한 신하를 멀리하고 달콤한 말로 꾀는 간신을 가까이 둠으로써 불행한 끝장을 맞은 여느 군주와 다름이 없었다. 제나라는 일흔 곳에 이르는 성읍 가운데 거莒와 즉묵卽墨 두 곳만 남기며 멸망 직전의 상태에 빠졌다. 도성을 손에 넣은 악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악의열전樂毅列傳」에서 한 부분을 가져온다.
악의는 임치에 쳐들어온 뒤 제나라의 귀중한 보물과 제기를 몽땅 연나라로 옮겼다.
樂毅攻入臨菑, 盡取齊寶財物祭器輸之燕.
옹근 서른 해 전, 제나라 선왕宣王이 내분으로 어지러운 연나라를 공격한 뒤 그곳의 귀중한 보물과 제기를 몽땅 자기 나라로 옮긴 것과 똑같은 행동이었다. 연나라로서는 아버지가 겪은 치욕을 아들이 되갚은 셈이고, 제나라로서는 아버지가 상대에게 준 모욕을 아들이 되받은 셈이다. 생각하면 무섭다, 치욕으로 쌓인 원한의 대물림은 이처럼 무섭다.
전단田單의 등장
주周 나라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강자아姜子牙가 봉지로 받은 제나라는 이미 그때부터 대국이었다. 제나라 군주가 전田 씨로 바뀜으로써 춘추시대를 끝내고 전국시대로 진입하게 되었지만, 제나라는 여전히 강국이었다. 그런데 북쪽의 보잘것없는 연나라에게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연나라를 중심으로 몇 나라가 연합하긴 했지만 일흔 개의 성읍 가운데 두 개 성읍만 남기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일찍이 없었다.
전단은 제나라 전씨 왕족의 먼 일가붙이라고는 하지만 ‘장마당 관리인’이라는 말단 벼슬아치로서 평민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온종일 채찍을 들고 이래라저래라 목소리 높이며 장마당 질서를 위해 뛰어다녔기에 장꾼들의 호의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전단이 지혜를 발휘할 순간이 왔다. 난세였기 때문이다. 난세는 보통사람도 영웅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전단열전田單列傳」을 펼친다.
연나라 군대가 거침없이 쳐들어와 제나라를 평정할 때, 전단도 도성을 떠나 안평安平으로 달아났다. 그는 자기 겨레붙이들에게 굴대 양 끝에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전부 잘라낸 뒤, 그 위에 강철 띠를 붙이도록 했다. 얼마 뒤, 연나라 군대가 안평을 쳐서 무너뜨리자 제나라 사람들은 길을 다투어 달아나려 했지만 서로 부딪치며 굴대 양쪽 끝이 부러지며 수레까지 못 쓰게 되어 모두 연나라 군대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오로지 전단과 그 겨레붙이는 강철 띠로 굴대 끝을 붙였기에 탈출하여 동쪽 즉묵으로 가서 몸을 보존할 수 있었다.
燕師長驅平齊, 而田單走安平, 令其宗人盡斷其車軸末傅鐵籠. 已而燕軍攻安平, 城壞, 齊人走, 爭塗, 以轊折車敗, 爲燕所虜, 唯田單宗人以鐵籠故得脫, 東保卽墨.
남과 다른 생각으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면, 그 생각은 지혜를 어머니로 한다. 난을 피하려는 사람에다 짐 실은 수레까지 이리저리 뒤엉킨 상황을 미리 예측한 전단의 지혜가 겨레붙이를 살려 냈다. 전단이 몸을 피하여 이른 즉묵은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로서 산둥성 칭다오시靑島 동북쪽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당시 제나라 군주 민왕도 막 세상을 떠나고 성을 지키던 대부도 세상을 떠난 터라 이곳 백성들에게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백성들은 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지도자로 전단을 강력하게 떠받들었다. 그의 지혜를 높이 샀던 것이다.
전단의 지혜①
거짓 정보로 적을 함정에 빠뜨리기, 이는 역사도 유구하다. 전단보다 2백 5십여 년 앞서 살았던 손무도 일찍이 ‘전쟁은 일종의 간사한 속임수로 상대방을 속이는 책략이다.’라고『손자병법』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악의가 제나라에 들어온 지 몇 년 뒤, 연나라 소왕이 세상을 뜨고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자리를 이었다. 아버지인 소왕과는 달리 그의 아들 혜왕은 악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달갑게 여기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심하기까지 했다. 전단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도자는 안다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아는 것을 자기 것으로 재가공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전단은 이를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이용할 줄 알았다. 연나라로 첩자를 보내어 가공한 ‘정보’를 사실인 양 퍼뜨리게 만들었다.「전단열전」에서 데려온다.
“제나라 왕은 벌써 죽었고 함락되지 못한 성읍은 두 곳뿐이다. 악의는 책망을 당할세라 두려워 감히 돌아오지 못하면서 제나라를 친다는 핑계를 내세우면서 사실은 전쟁을 질질 끌어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한다. 제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므로 즉묵에서 공격하기를 늦추며 때만 기다리고 있다. 제나라 사람들은 다른 장군이 와서 즉묵을 쑥대밭으로 만들까 두려울 따름이다.”
齊王已死, 城之不拔者二耳. 樂毅畏誅而不敢歸, 以伐齊爲名, 實欲連兵南面而王齊. 齊人未附, 故且緩攻卽墨以待其事. 齊人所懼, 唯恐他將之來, 卽墨殘矣.
손무는 그가 펼친『손자병법』13편 가운데 특별히 이간책을 다룬「용간편用間篇」을 넣을 정도로 싸움에서 떨어져서는 안 될 사이를 벌게 만드는 술책을 중히 여겼다. 전단이 보낸 첩자의 이간질을 믿은 연나라 군주 혜왕은 악의를 소환하고 대신 기겁騎劫을 장수로 삼았다. 악의는 혜왕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 조趙 나라로 달아났다. 당시 조나라 군주는 혜문왕惠文王이었다. 그가 악의를 받아들여 봉지를 내리고 높이 떠받들자 연나라 군주 혜왕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조나라 혜문왕 곁에는 염파, 인상여, 평원군平原君, 조사 같은 현명한 문무대신이 즐비하여 강국 진나라도 함부로 넘보지 못할 정도였는데 여기에 악의까지 더해졌으니 이 나라 군주의 품이 얼마나 넓었던지 가히 알 만하다.
어떻든 전단의 이간책은 성공을 거두었다. 장마당 관리인 전단의 지혜가 또 한 번 빛을 내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한 번 기우뚱 기울어진 연나라는 전단의 또 다른 계책에 이제는 비틀비틀 중심을 못 잡게 되었다. 즉묵 성읍의 보통사람들은 전단이 내놓은 말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귀에 담으며 웬만한 고통쯤은 기꺼운 마음으로 참았다. 위와 아래가 한마음으로 굳게 합쳐졌을 때, 위기는 항상 기회로 바뀌었다.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비교적 잦았다. 모든 사실이 다 진실은 아니지만, 위와 아래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칠 때, 위기는 언제나 기회로 바뀐다는 사실, 이런 사실은 언제나 진실이다.
전단의 지혜②
전단은 이어서 즉묵 성안에 사는 백성들에게 식사 때마다 뜰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도록 했다. 하늘을 날던 새들이 제사 음식을 먹기 위에 성안으로 날아들었다. 성 밖 연나라 군사들이 괴이하게 여겼다. 이제 전단이 ‘거짓 정보’를 만들어 세상에 퍼뜨릴 차례였다. ‘신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서 나에게 때에 맞는 대책을 일러주셨다’, 이렇게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연나라 군사들이 잘 듣도록 퍼뜨렸다. 게다가 ‘신이 내려와 우리 제나라 군대의 참모가 되었다’, 이런 내용도 널리 퍼지도록 만들었다. 모두 다 전단이 만들어낸 ‘거짓 정보’였다.
이때, 덜렁대기 좋아하는 한 병사가 전단 앞에 나타났다.「전단열전」을 본다.
“제가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뒤돌아 내달렸다. 전단은 곧바로 일어나 그를 다시 되돌아오도록 한 뒤, 동쪽으로 향해 앉히고서 그를 스승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자 그 병사가 말했다.
“제자 장군을 속였습니다. 저는 정말로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전단이 말했다.
“그대는 입을 다물게!”
이리하여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리고 명령을 내릴 때마다 반드시 신이 내린 스승의 뜻이라고 이르게 했다.
“臣可以爲師乎?” 因反走. 田單乃起, 引還, 東鄕坐, 師事之. 卒曰 : “臣欺君, 誠無能也.” 田單曰 : “子勿言也!” 因師之. 每出約束, 必稱神師.
신과 통하는 이 병사의 말이 곧 신의 뜻이었다. 전단은 신의 스승이 된 이 병사의 이름으로 자기 뜻을 아래로 전달하곤 했다.
사마천은「진섭세가」에도 ‘신이 내린 말씀’이라는 구실을 내걸어 기회를 만든 이야기가 있다.
(진승은) 오광을 주둔지 부근 숲속 사당으로 남몰래 보내 한밤중에 횃불을 밝힌 뒤 여우소리로 이렇게 외치도록 했다.
“위대한 초나라가 일어나고 진승은 왕이 된다.”
又間令吳廣之次所旁叢祠中, 夜篝火, 狐鳴呼曰 : “大楚興, 陳勝王.”
그러고 보면, 점복이나 꿈, 그리고 신이나 자연에 기대어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들은 역사에서 끊이지 않았던 셈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연 이성계도 ‘木子得國’이라는 네 글자를 붓에 꿀물 적셔 나뭇잎에 썼다지 않은가. 단맛 좋아하는 벌레가 이 부분을 파먹으면 이 나뭇잎을 높이 들어 보이며 하늘 뜻이라고 외쳐서 백성들 마음을 자기에게 모이게 만들려는 술책이었다. ‘木子’는 곧 이성계를 가리키는 ‘李’를 파자한 것이다.
전단은 첩자를 풀어 ‘거짓 정보’를 계속 흘렸다. 이 정보는 항상 신의 뜻으로 널리 퍼졌고, 연나라 군사는 이에 따라 행동했다. 이들은 포로로 잡은 제나라 병사들의 코를 베어냈고, 성 밖에 산재한 제나라 사람들의 조상 무덤을 파헤쳤다. 분노한 즉묵 성읍 백성들은 분노로 주먹을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 모든 것은 전단이 시간표에 따라 내놓은 계책이었다.
전쟁에 동물을 이용한 전단
전쟁에 동물이 함께한 역사는 곧 전쟁사의 첫 꼭지일 수도 있다. 인간이 곧 동물이기에 그러하겠지만 인간은 인간 이외의 동물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했다. 게다가 인간을 위해 길들여진 동물은 때로는 인간보다 더 빨리, 더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내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후각이나 청각 등 뛰어난 감각으로 인간의 모자람을 기워주며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다.
카르타고의 젊은 영웅 한니발이 피레네 산맥을 넘고 다시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짓치고 들어간 두 번째 포에니 전쟁에서 코끼리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는 제법 잘 알려졌다. 시오노 나나미가 쓰고 김석희가 옮긴『로마인 이야기』두 번째 권「한니발 전쟁」을 읽으며 코끼리를 전쟁에 이용한 젊은 장군 한니발의 지혜와 용기를 지구 이쪽 중국 땅 산둥 반도에서는 또 한 사람 전단의 지혜와 용기와 맞앉힌다. 시기도 같은 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젊은 영웅 한니발이 코끼리를 이용했다면, 제나라의 젊은 영웅 전단은 소를 이용했다. 그리고 저쪽 카르타고 영웅 한니발이 코끼리를 앞세운 곳이 대평원이었다면 이쪽의 전단이 소를 앞세워 내몬 곳은 비탈진 산 아래였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공통된 점은 남다른 지혜와 용기였다.
조선 땅에서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가 원숭이를 이용하여 왜군의 넋을 빼놓은 일도 남다른 지혜와 용기의 산물이다. ‘교란용 원숭이 기병’ 수백 마리를 숲처럼 빽빽한 대오를 이루어 충청도 땅 직산稷山에서 북상하는 왜군 1백여 보 앞에 풀어놓았다니, 이 원숭이가 말을 타고 채찍질하며 적진을 돌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원숭이를 처음으로 본 왜군은 사람인 듯 사람이 아닌 듯 아리송한 원숭이를 사로잡거나 때려잡으려 했으나 원숭이의 재빠름을 당하지 못하고 허둥댔을 뿐이다. 이 틈을 타서 중무장한 기병이 다가가서 왜군을 유린했다. 왜군은 조총 한 발 쏘지 못하고 달아났지만 주검이 들을 덮었다.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 학자 이중환李重煥의『택리지擇里志』충청도 편에 기록으로 전한다.
누구나 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동물을 전쟁에 끌어들여도 승리하는 장수도 있을 터이고 패배하는 장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에 맞게 이용해야 승리할 수 있다. 손무는 ‘지피지기’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이야기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적과 나 밖의 상황도 셈하여 계책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전단은 이런 점에서 지혜 넘치는 지도자였다. 게다가 씩씩하고 굳센 기상까지 더해진 지도자였다.
전단은 먼저 연나라 장수에게 금 1천 일鎰을 보냈다. ‘일鎰’은 중량을 세는 단위로 1일은 대략 20냥, 한 냥은 오늘날의 15g에 상당하니, 1천 일이라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많은 황금은 모두 즉묵 성읍의 부자들이 선선이 내놓았다. 여기에 더하여 전단은 ‘거짓 정보’도 함께 내놓았다. 곧 항복할 터이니 포로로 삼거나 해치지 말라는 간절한 소망까지 덧붙였다. 연나라 장수는 기쁨에 넘쳤고 군사들은 긴장을 풀었다. 바로 이때, 전단은 성안에서 모은 소 1천 마리에게 붉은 비단에 오색으로 용무늬를 그려 넣은 옷을 입히고 있었다. 또 이들의 뿔에는 칼날을 붙들어 매고 꼬리에는 갈대를 매달았다. 게다가 갈대에는 기름을 가득 부어 넣었다. 밤이 되었다. 소 1천 마리의 꼬리마다 불을 붙였다. 이제「전단열전」을 펼친다.
소들은 꼬리가 뜨거워지자 골이 나서 연나라 군대를 향해 뛰어드니 연나라 군사는 한밤에 크게 놀랐다. 소꼬리에 붙은 횃불이 눈이 부시도록 빛났는데, 연나라 군사가 보니 모두 용의 모습이었다. 소에 받힌 자는 모두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5천 명의 제나라 병사가 입에 나뭇가지를 문 채 이들을 공격했고 성안에서는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내질렀다. 또 노인과 아이들은 구리그릇을 두드리며 성원하니, 그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연나라 군사는 크게 놀랐다. 이들은 싸움에 져서 달아났다.
牛尾熱, 怒而奔燕軍, 燕軍夜大驚. 牛尾炬火光明炫燿, 燕軍視之皆龍文, 所觸盡死傷. 五千人因銜枚擊之, 而城中鼓譟從之, 老弱皆擊銅器爲聲, 聲動天地. 燕軍大駭, 敗走.
옛적 전투에서는 말소리가 적군에게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입에 나뭇가지를 물었다고 한다. 나뭇가지를 입에 문 제나라 병사들이 마침내 연나라 장수 기겁을 죽이고 승리를 거두었다. 1천 마리의 힘찬 소의 양쪽 쇠뿔에 날카로운 칼을 묶어 맨 것도 대단한 발상이지만, 꼬리에 기름 가득 채운 갈대를 묶어 맨 것은 한층 더 돋보인다. 지구 저쪽 그 옛날,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은 코끼리는 서른 몇 마리, 물론 더운 지방 코끼리가 눈 덮인 알프스를, 그것도 눈보라 치는 추위에 넘은 일도 대단하지만 붉은 비단에 오색 용무늬 새겨진 옷을 입은 소들이, 그것도 1천 마리나 되는 무리가 성 밖 아래쪽으로 씩씩거리며 내닫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장관이다.
연나라가 차지했던 70여 개 성읍은 드디어 제나라로 되돌아왔다. 거성에 있던 제나라 군주 양왕襄王을 도성 임치까지 모시고 정사에 임하도록 인도한 이는 물론 전단이었다. 장마당 관리인 전단은 안평군安平君에 봉해졌다.
난세는 지체 낮은 보통사람을 영웅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되는 건 아니다. 난세를 제대로 뚫어보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줄 아는 지혜는 물론 위기를 돌파하는 용기까지 갖추어야 하늘은 이들에게 영웅이 될 수 있는 무대를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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