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개울 사슴이 건넜어도 이끼는 차분하네.
幽溪鹿過還苔靜.
어려서부터 어른들 곁에 기웃거리길 좋아하던 왕이열王爾烈이었다. 지방의 풍토와 특색을 이야깃거리로 삼았지만 마침내 나라의 큰일에 이르러 설왕설래할 때면 어린 왕이열은 귀를 쫑긋 세우고 온 마음을 다 기울였다. 어른들도 그의 비범함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시구 한 구절을 던지며 짝이 되는 구절을 읊도록 채근하는 일이 잦았다. 앞에 든 시구는 탁월한 안목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던 승려 한 분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마침 명사들을 초대하여 시회를 벌이던 이 집에 들러 왕이열을 특별히 지명하며 내놓은 시구이다. 여러 사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왕이열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 시구에 짝이 될 대련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깊은 산에 구름이 덮였어도 새는 알지 못하네.
深山雲來鳥不知.
주위에 있던 어른들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재기 넘치던 왕이열은 어른이 되어 벼슬길에 올랐어도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다.
지방에서 치러지는 관리 등용 시험에 주임 시험관으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왕이열에게 가경제가 이렇게 물었다.
“경의 집안 형편은 좀 어떻소?”
왕이열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메마른 땅 몇 마지기에 봄바람 불면 비 오길 바랄 뿐입니다. 게다가 몇 칸 되지도 않은 초가집에 절반은 농기구가 차지했고 나머지 절반은 책이 차지했습니다.”
가경제는 앞선 황제 건륭제 때부터 줄곧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떨치던 왕이열을 진즉 기억하고 있었다.
“짐은 벌써 알고 있었소, 경이 얼마나 청렴한지. 이제 경에게 안휘성 구리 광산으로 내려가 동전을 주조하는 일을 맡길 작정이오. 몇 년 동안 동전 주조하는 일을 관장하면 분명 괜찮을 거요.”
이보다 거의 2천 년 전 한나라 문제의 굄을 한껏 받던 등통도 동전 주조로 재물을 셀 수 없을 만큼 쌓지 않았던가? 사부辭賦로써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이름을 독자들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양반의 장인 탁왕손卓王孫이 등통으로부터 구리 광산 채굴권을 얻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좀 낯설 것이다. 등통이 탁왕손에게 채굴권을 넘기면서 아무런 이권도 챙기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당시 빈털터리였던 젊은 사마상여가 사천성의 부호 탁왕손의 딸 탁문군과 눈이 맞아 손잡고 야반도주한 이야기는 또 다른 러브 스토리로 맛볼 만하다.
어떻든 동전 주조는 어마어마하게 이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한 관의 동전을 주조하는 데 드는 갖가지 원가를 제하고도 이윤율이 무려 185%에 이른다는 게 송나라 때 어떤 이가 면밀히 계산한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여기에 잇속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하여 꿍꿍이짓을 벌이며 살짝 가짜 원료를 섞어 넣으면 이윤율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가슴 저 밑바닥에 남아 있는 한 가닥 양심쯤 짓뭉개는 일을 예사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왕이열은 달랐다. 그의 한결같이 곧고 꼿꼿한 정신은 아예 탐욕이 접근할 수 있는 틈을 내주지 않았다. 황제의 명령을 받고 떠난 지 세 해, 마침내 황제가 그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입궐한 그에게 황제가 이렇게 일렀다.
“그래, 어땠소? 이 몇 년 동안 괜찮았소? 이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겠지요?”
황제는 동전 주조하는 일을 세 해나 관장했으니 분명 큰돈을 손에 쥐었을 테고 따라서 집안 형편도 예전과는 달라졌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왕이열은 황제의 말을 다 듣더니 소맷자락에서 동전 세 개를 꺼내 황제에게 건넸다. 건네받은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황제는 자세히 살폈다. 닳을 대로 닳아서 반질반질한데다 빛까지 번쩍번쩍했다.
“아니, 이건 그때 경이 가지고 갔던 동전 모형이 아니오?”
그제야 왕이열은 입을 열었다.
“신은 이 세 개의 동전 외에는 양쪽 소매 모두 맑은 바람뿐[兩袖淸風], 가진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황제는 이 정경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두 어깨에 밝은 달이요 양쪽 소매에 맑은 바람이외다.”
두 어깨에 밝은 달을 뜻하는 ‘쌍견명월雙肩明月’과 양쪽 소매에 맑은 바람을 뜻하는 ‘양수청풍兩袖淸風’은 원래 왕이열 집안의 가훈이었다. 둘 다 관리로서 청렴한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이보다 350년쯤 전, 명나라 때 우겸于謙이 쓴 시구도 이쯤해서 한번 함께 봐도 좋을 것 같다.
민간에 넘치는 험담 입에 올리지 않으려면,
맑은 바람 양쪽 소매에 담아 황제 뵈러 가야겠네.
淸風兩袖朝天去,
免得閭閻話長短.
이제 왕이열도 늘그막에 이르러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삶을 살 때가 되었다. 왕이열은 역사에 되살릴 만한 인물이다.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던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짐을 잔뜩 진 노새 대열이 기세도 당당하게 서울을 출발했다. 흥성거리며 떠들썩하게 지나는 대열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양쪽 소맷자락에 맑은 바람 인다더니, 쳇!”
곁에 있던 이도 빈정거리듯이 한 마디 뱉었다.
“노새 등에 실린 물건들이 전부 보물은 아닐 거야!”
말은 원래 나들이를 좋아한다. 게다가 나들이에 나섰다 하면 그 속도도 빨라서 담을 넘고 골목을 빠져나가 한참 멀리 떨 어진 저쪽 동네까지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이다. 구중궁궐 겹겹이 막아선 궁문도 높이 늘어선 담장도 두려움 없이 지나고 겁 없이 넘는다. 황제의 귀에도 이 이야기는 금세 이르렀다.
“당장 길을 막고 조사하여 밝히도록 할지니라.”
황제가 내린 명령이었다.
“아니, 이 자리로 부르도록 하여라.”
황제가 다시 명령을 고쳐 내렸다.
황제 앞에 불려온 왕이열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자세로 귀를 기울였다.
“노새 등에 실린 물건이 대체 무엇이오?”
잠시 침묵하던 왕이열이 대답했다.
“황상께서 제게 내리신 것뿐이옵니다.”
“아니, 짐은 경에게 은 천 냥밖에 내린 게 없소.”
다시 한참 뜸을 들이던 황제가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노새가 필요할 리 없지 않소?”
왕이열도 어쩔 수 없이 짐을 살필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노새 등에 실린 것들은 몽땅 다 깨지고 부서진 기와조각에 벽돌 부스러기였다.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였다. 곁에 있던 대신들도 눈만 휘둥그렇게 뜬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왕이열이 먼저 입을 열어야 했다.
“신에게는 겨우 세 칸 초가집밖에 없어서 거처할 곳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궁을 손보다 남은 깨진 기왓장과 부서진 벽돌을 노새에 싣고 가서 머물 집을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황제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깊이 감동했다. 황제는 일찍이 황태자였던 시절 왕이열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지 않았던가? 황태자 시절 스승이었던 왕이열의 강직하고 청렴한 바탕을 진즉 알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높고 깊은 줄은 깨닫지 못하던 터였다.
황제는 왕이열의 고향땅 요양遙陽에 그를 위하여 한림부翰林府를 지을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왕이열은 이 건축물이 완공되자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공간을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의학관義學館’으로 삼고, 자신은 몸채에 딸린 곁방에 거주했다.
왕이열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년 남짓, 그도 재물이 자기 삶에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에 역사의 무대에 찬란히 부활할 수 있었다.
이제 원나라 때 화가 왕면王冕이 읊은 시 한 수를 함께 보자. 제목은 『묵매墨梅』이다. 먹물로 꽃잎 번 매화 한 그루 화폭에 앉히고 적당한 공간에 쓴 시이다.
내 집 세연지 곁 매화나무 한 그루 그리니,
송이송이 핀 꽃 엷은 먹물로 물들였네.
그대 잘 생겼다고 젠체하지 마소,
산뜻한 향기만 하늘과 땅에 가득해야 하오.
我家洗硯池頭樹,
朵朵花開淡墨痕.
不要人誇好顔色,
只留淸氣滿乾坤.
오직 산뜻한 향기만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란 마지막 행이 왕이열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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