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마당

역할

촛불횃불 2022. 9. 7. 16:31

  예전에 어떤 이가 사냥 갈 준비를 했다. 이 양반은 송골매를 잘 몰랐기에 들오리를 한 마리 사서 들판으로 나아가서 토끼를 잡으려고 했다. 이 양반이 들오리를 공중으로 던지며 토끼를 잡도록 했으나, 들오리는 날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잡아서 공중으로 던졌지만 역시 바닥에 떨어졌다. 이렇게 서너 차례 반복하자 들오리는 뒤뚱뒤뚱 이 양반 앞으로 걸어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들오리입니다. 제 본분은 잡혀 먹히는 것입니다. 어찌 저를 마구 집어던져서 괴롭힌단 말입니까?”

  이 말을 들은 사냥꾼 이 양반이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가 토끼 잡을 줄 아는 송골매인 줄 알았는데, 그래, 들오리란 말인가?”

  들오리는 제 발바닥을 들어 올려 보이며 사냥꾼에게 웃으며 말했다.

  “제 발을 보셔요, 토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소식蘇軾이 편찬한 애자잡설艾子雜說에서 가져왔다.

 

동파 소식

  전국시대 말엽, 나라는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의 명성 때문에 그의 아들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발탁하여 진 나라 군대에 맞서도록 했다. 마침 조괄이 맞닥뜨린 상대는 진나라의 맹장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였다. 겨우 한 차례 전투에서 조나라 군대는 깨지고 조괄은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조괄이 거느렸던 40만 군대는 포로로 붙잡혀 생매장되었다. 게다가 조나라 서울 한단邯鄲도 거의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다.

  기원전 262년을 시작으로 조나라와 진나라는 장평長平에서 3년 동안 큰 싸움을 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국칠웅 가운데 조나라는 진나라가 함부로 넘보기에는 벅찬 상대였다. 칼이 번쩍이고 피가 튀는 싸움이 쉴 새 없이 벌어졌던 이 시대에 장평대전이라 역사에서 일컫는 이 전쟁으로 마지막 일웅은 결국 진나라의 몫이 되었다. 조나라에는 그때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 같은 지혜 넘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적재적소에 쓰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물상이 떡하니 자리 잡은 자연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송골매는 송골매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들오리는 들오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인물이 자리 잡고 있어야 제 구실 다한다.

 

 위 가져온 글의 원문을 여기 보인다.

 昔人將獵而不識鶻買一鳧而去. 原上兔起擲之使擊. 鳧不能飛投於地再擲又投於地至三四鳧忽蹣跚而人語曰我鴨也殺而食之乃其分奈何加我以擲之苦乎其人曰我謂爾爲鶻可以獵兔耳乃鴨耶鳧舉掌而示笑以言曰看我這腳手可以搦得他兔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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