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 여인-마부의 아내

촛불횃불 2022. 9. 21. 19:56

  지금으로부터 25백여 년 전, 남편의 잘못을 당당하게 지적하며 이혼을 요구한 여성이 있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성마저 알 수 없다. 마차를 몰았던 그녀의 남편 이름도 알려진 바 없다. 단지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관안열전管晏列傳에 기록으로 남아 전할 뿐이다.

 

마부

  이 열전은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의 자리로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관중管仲과 역시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나라를 중흥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안영晏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열전의 두 중심인물 가운데 한쪽인 안영의 마부 이야기는 큰 물건에 끼워 파는 껌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만, 이름도 성도 알려지지 않은 수레 몰이꾼 부부의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다. 이 부분을 몽땅 가져온다.

 

  안자晏子가 제나라 재상이 되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그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을 엿보았다. 그녀의 남편은 재상의 마부인데 머리 위로는 큰 양산을 받쳤고 손에 든 채찍을 네 마리 말에 휘두르며 자못 의기양양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한참 뒤 남편이 돌아오자 그녀는 헤어지자고 요구했다. 남편이 그 까닭을 묻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자라는 분은 키가 6척도 안 되지만 제나라 재상으로서 이름을 제후들에게 떨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분께서 바깥나들이를 하시는 모습을 보니 품은 뜻이 깊은 데다 언제나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지만 겨우 마부 노릇을 하면서 아주 의기양양한 모습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헤어지자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마부는 스스로를 낮추었다. 안자가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물어 보자 마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안자는 그를 천거하여 대부大夫로 삼았다.

晏子爲齊相, , 其御之妻從門間而闚其夫. 其夫爲相御, 擁大蓋, 策駟馬, 意氣揚揚甚自得也.

旣而歸, 其妻請去. 夫問其故. 妻曰 : “晏子長不滿六尺, 身相齊國, 名顯諸侯. 今者妾觀其出, 志念深矣, 常有以自下者. 今子長八尺, 乃爲人僕御, 然子之意自以爲足, 妾是以求去也.” 其後夫自抑損. 晏子怪而問之, 御以實對. 晏子薦以爲大夫.

 

안영 동상

 

  춘추시대는 사회에 대변혁이 일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는 높은 산이 평지가 되고 큰 평원이 깊은 강이 될 만큼 중국사의 흐름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14십여 개에 이르던 제후국이 3백여 년의 격동기를 지나며 전국시대에 이르러 칠웅을 포함하여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제후국의 숫자가 적어졌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증명할 정도였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터에 나가서 피 흘리며 싸워 공적을 이루는 이도 남성이었으며 강이나 들에 나가 힘든 노동으로 재화를 창출하는 이도 남성이었다. 고대 사회는 형편이 되는 남성은 혼자서 여러 여성을 제 아래 거느리는 일도 허물이 아닌 사회였다. 여성의 지위는 지위라는 낱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앞으로 나서며 남편에게 올바르지 않은 습성을 고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크게 금기시되는 언어로 사회의 통념에 맞선 용기가 있었기에 재상의 마부 신분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재상보다 의기양양했던 남편의 올바르지 못한 습성을 고쳤다. 그 시대 여성에게 요구한 삼종三從의 족쇄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녀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오만함에서 벗어나 겸손의 길로 들어선 남편의 개과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터이다. 또 이를 눈여겨보았던 재상 안자의 품도 여간 넓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