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마당

표리부동表裏不同

촛불횃불 2023. 6. 12. 07:06

 어떤 이가 자기 아버지가 병이 들자 의원을 모셨다.

 “이 병은 고칠 길이 없소이다. 다만 그대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키면 고칠 수 있소이다. 그대의 넓적다리 살을 한칼 잘라 약으로 드시게 하면 고칠 수 있소이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야 어렵지 않지요.”

 이렇게 말하곤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문간에 한 사람이 누워 있는 걸 보자 손에 든 칼로 넓적다리 살을 발랐다. 누웠던 사람이 깜짝 놀라 펄쩍 뛰자 아들 된 이 사람은 그 사람을 손으로 가만 누르면서 이렇게 일렀다.

 “! 그대 넓적다리 살점으로 우리 아버지 살리니 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 아니겠소.”

 

 

 명 나라 때 취월자醉月子가 편찬한정선아소精選雅笑』「할고割股전문이다.

 마음이 음흉하여 겉 다르고 속 다른 이를 만나 낭패 보는 경우가 있다. 가짜 미끼로 큰 물고기 낚아 제 잇속 채우려고 눈이 벌건 이는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끝내 제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증거를 들어 하나하나 잘못을 짚고 따지면 우선 시치미부터 뚝 뗀다. 그리고 남의 넓적다리 살점 떼어 제 아비 살리는 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정말로 훌륭한 일이라고 큰소리친다. 이들 곁에는 욕망에 눈이 어두운 이들이 겹겹이 모여 있다. 이들은 남의 넓적다리에서 떼어낸 살점 한칼 가운데 한 점이라도 제 입에 넣으려고 안달이다.

 타자의 고통을 통해 영광을 얻으려는 자는 범인이다. ‘!’, 이렇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에게 무릎 꿇는다면, 이도 범인 편이다. 살점 떼여 펄쩍 뛰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연대이다. 그리고 가짜 효자를 향해 그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이 결코 아니다라고 함께 소리 높여야 한다.

 

 여기 이 글의 원문을 보인다.

有父病延醫者醫曰病已無救除非君孝心感格割股可望愈耳.”

子曰這卻不難.” 遂抽刀以出逢一人臥於門因以刀刲之. 臥者驚起子撫手曰不須喊割股救親天下美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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