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종사大宗師
‘종宗’은 ‘경모하다’, ‘우러러 존경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대종사大宗師란 우러러 존경할 만한 스승’을 말한다. 어떤 이를 이런 스승으로 일컬을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도道’이다. 장자는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고 보았다. 그리고 사람의 삶과 죽음의 변화도 아무런 구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장자는 맑은 마음과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몸과 마음에 쌓인 잡념을 없애고 자유로운 영혼의 상태를 유지하며, 삶과 죽음까지 망각하고,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런 상태를 장자는 ‘도道’라고 했다.
‘대종사’는 모두 아홉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是之謂眞人’까지이다. 이상 속의 ‘진인眞人’을 설정하고, ‘진인’은 ‘하늘’과 ‘인간’을 나누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진인’은 ‘무인無人’은 말할 것도 없고 ‘무아無我’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진인’의 정신적 경지는 바로 ‘도’의 형상화이다.
두 번째 부분은 ‘而比于列星’까지이다. ‘진인’을 묘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를 서술하는 데로 방향을 바꾼다. 오직 ‘진인’이라야 ‘도’를 넉넉히 체험하고 살필 수 있으며, ‘도’는 ‘무위무형 無爲無形’하고 영원히 존재하기에 ‘도’를 체험하고 실필 수 있으려면 반드시 ‘무인無人’하고 ‘무아無我’해야 한다. 이 두 도막은 ‘대종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부분이다.
세 번째 부분은 ‘参寥闻之疑始’까지이다. 여기에서는 ‘도’를 체험하고 살필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을 논의한다.
네 번째 부분은 ‘蘧然觉’까지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속과 멸망은 실제로 하나이며, 이를 벗어나서 피할 수 없기에 마땅히 ‘安時而處順’, 곧 ‘현상에 만족해야’ 한다고 내세운다.
다섯 번째 부분은 ‘天之小人也’까지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토론하면서, 삶과 죽음이란 모두 ‘기氣’의 변화, 곧 자연적 현상이기에 마땅히 ‘相忘以生,無所終窮’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정신을 가져야만이 속세에서 초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부분은 ‘乃入于寥天一’까지이다. 인간의 몸뚱이는 변화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오히려 사라질 리 없으며, 자연에 안주하며 죽음을 망각하면 ‘도’의 경지에 들어가서 자연과 한 몸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일곱 번째 부분은 ‘此所游已’까지이다. 이 부분에서는 유가의 인의와 시비 관념을 비판하고 유가의 관념이 인간에 대한 정신을 손상시킨다고 지적한다.
여덟 번째 부분은 ‘丘也请从而后也’까지이다. 여기서는 ‘離形去知,同於大通’하는 것이 ‘도’의 경지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아홉 번째 부분은 나머지가 된다. 모든 것이 다 ‘명命’에 의해 안배되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안배되는 게 아니라고 논술한다.
진정한 앎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데다 사람이 하는 일까지 알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하늘이 하는 바를 아는 사람은 하늘과 더불어 살아간다. 사람이 하는 바를 아는 사람은 그의 앎이 아는 바로써 그의 앎이 알지 못하는 바를 보충하여 완전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늘이 준 목숨을 다하여 중도에서 일찍 죽는 일이 없는 것, 이것이 앎의 성대함이다.
知天之所為,知人之所為者,至矣。知天之所為者,天而生也;知人之所為者,以其知之所知,以養其知之所不知,終其天年而不中道夭者,是知之盛也。
2.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있다. 사람의 앎이란 것은 기대는 데가 있어야만 비로소 올바른 앎이 된다. 하지만 기대는 데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자연이라는 것이 실은 인위적인 것이고, 내가 인위적이라는 것이 실은 자연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雖然,有患。夫知有所待而後當,其所待者特未定也。庸詎知吾所謂天之非人乎?所謂人之非天乎?
*有所待 ... 기대는 데가 있다. 근거하는 바가 있다.
>장자는 인간의 인식과 이해는 인식하고 이해하는 대상과 떨어질 수 없다고 생 각했다.
*當 ... 합당하다, 정확하다.
*特 ... 그러나.
3. 그러기에 ‘진인眞人’이 있어야만 비로소 ‘참 앎’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진인’인가? 옛날의 ‘진인’은 많은 것에 기대어 적은 것을 업신여기지 않고, 성공했다고 하여 우쭐거리지 않으며, 부당한 방법으로 선비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이라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 않고 좋은 기회를 만나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다. 또 이런 이라면 높은 곳에 올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앎의 정도가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이와 같다.
且有真人,而後有真知。何謂真人?古之真人,不逆寡,不雄成,不謨士。若然者,過而弗悔,當而不自得也。若然者,登高不慄,入水不濡,入火不熱。是知之能登假於道也若此。
*逆 ... 대응하다, 맞서다.
*雄成 ... 자기가 얻은 성적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다.
*謨 ... 꾀하다.
*當 ... 운이 좋다. 운 좋게.
*自得 ... 스스로 득의했다고 여기다.
*濡 ... 젖다.
*假 ... ‘格’
*至 ... 도달하다, 이르다.
4. 옛날의 진인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 있을 때도 근심이 없었다. 음식을 먹어도 맛나는 것을 찾지 않았고, 숨을 쉴 때는 깊고 깊었다. 진인은 발꿈치로 숨을 쉬었지만, 보통 사람은 목구멍으로 숨을 쉰다. 다른 이에게 무릎 꿇린 이는 목이 메어 말이 토하는 듯하고 욕망에 깊이 빠져든 이는 타고난 지혜가 옅어진다.
古之真人,其寢不夢,其覺無憂,其食不甘,其息深深。真人之息以踵,眾人之息以喉。屈服者,其嗌言若哇。其耆欲深者,其天機淺。
*踵 ... 발꿈치. ‘息以踵’>호흡이 아주 깊어서 근본에서부터 나오다.
*嗌 ... 목구멍이 막히다. 목이 메다.
*耆 ... 기호, 도락. 뒷날 이 글자는 ‘嗜’로 바뀌어 쓰임.
*天機 ... 타고난 지혜.
5. 옛날의 진인은 삶을 즐겁다고 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다고 할 줄도 몰랐다. 세상에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았고, 세상을 떠남을 거역하지 않았다. 걸림 없이 갔다가 걸림 없이 돌아올 뿐이다. 삶의 시원을 잊지 않았고, 그 끝남을 따지지 않았다. 어떤 것을 받았든 기뻐했으며, 잊어버린 채로 되돌아갔다. 이를 일러 마음으로 도를 해치지 않으며, 인위로 하늘이 하는 일을 돕지 않음이라고 한다. 이런 이가 바로 진인이다.
古之真人,不知說生,不知惡死;其出不訢,其入不距;翛然而往,翛然而來而已矣。不忘其所始,不求其所終;受而喜之,忘而復之。是之謂不以心捐道,不以人助天。是之謂真人。
*出 ... 세상에 태어나다. 뒤쪽의 ‘入’과 상대됨. 그 뒤의 ‘往’과 ‘來’는 사람의 죽음과 태어남을 가리킨다.
*距 ... ‘拒’, 거절하다, 회피하다.
*翛然 ... 구속이 없는 상태, 걸림이 없는 상태. 자유자재의 상태.
*揖 ... ‘損’으로 써야 마땅할 듯. 해치다, 손상시키다.
6. 이와 같은 이는 마음이 비고, 용모는 고요하며, 이마는 단엄端嚴하다. 엄숙하기는 가을과 같고, 따스하기는 봄과 같다. 기쁨과 노여움이 네 계절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고, 모든 사물과 어울려서 그 정신 세계의 진면목을 가늠할 수 없다.
若然者,其心志,其容寂,其顙頯,淒然似秋,煖然似春,喜怒通四時,與物有宜,而莫知其極。
*志 ... ‘忘’의 오기인 듯. ‘心忘’은 마음이 비다, 자신의 주위를 잊다.
*顙 ... 이마.
*煖 ... ‘煊’, 따스하다.
*宜 ... 적당하다, 서로 어울리다.
성인은
7. 그러기에 성인聖人은 무력을 사용하여 적국을 멸망시켜도 사람들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이익과 은택을 만세에 두루 베풀지만,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물에 통달함을 즐거워하는 이는 성인이 아니다. 편애하는 이는 ‘인자仁者’가 아니다. 하늘의 때를 엿보는 이는 ‘현자賢者’가 아니다. 이해에 통달하지 않은 이는 ‘군자君子’가 아니다. 이름을 얻으려고 자기를 잃는 이는 선비가 아니다. 참된 자기를 잃고 참됨을 갖지 못한 이는 다른 이를 부리지 못한다. 이들은 고불해孤不偕, 무광務光, 백이伯夷, 숙제叔齊, 기자箕子, 서여胥餘, 기타紀他, 신도적申徒狄처럼 다른 이들의 일을 하고 다른 이들이 즐길 일을 했지만, 자신이 즐거워할 일을 하지 않았다.
故聖人之用兵也,亡國而不失人心;利澤施於萬世,不為愛人。故樂通物,非聖人也;有親,非仁也;天時,非賢也;利害不通,非君子也;行名失己,非士也;亡身不真,非役人也。若狐不偕、務光、伯夷、叔齊、箕子胥餘、紀他、申徒狄,是役人之役,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也。
*이 단락은 앞뒤 관계로 볼 때, 일관성이 떨어진다. 잘못 끼어든 단락으로 추정된다.
*利澤 ... 이익과 은택.
*親 ... 여기서는 ‘偏愛’를 가리킴.
*行名 ... 명성을 얻기 위하여 일하다.
*役 ... 마구 부리다, 부려먹다, 일을 시키다.
*狐不偕,,務光, 伯夷, 叔齊, 箕子, 胥餘, 紀他, 申徒狄 ... 전설 속 중국 상고 시대의 인물.
*適 ... 조용하고 편안하다, 상쾌하다, 시원하다.
옛날의 진인은
8. 옛날의 ‘진인眞人’은 그 모습이 우뚝하되 무너지는 일은 없고, 모자라는 것 같지만 받아들일 것이 없고, 편안하고 한가한 모습으로 홀로 뛰어나지만 고집스럽지 않고, 마음이 넓고 비어 있으나 화려하게 치레하지 않고, 기뻐하는 듯 엷은 웃음이여, 부득이한 일인 듯 시작함이여! 사람들을 가가오게 하는 기쁨이 넘치는 얼굴빛이며,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고아한 덕성이며, 세상을 안을 것 같은 넓고 큰 정신이여! 스스로 만족한 듯 제약받지 않는 모습이며, 내세우기 좋아하지 않는 듯 깊고 깊은 모습이며, 할 말 잊은 듯 무심한 모습이여!
古之真人,其狀義而不朋,若不足而不承,與乎其觚而不堅也,張乎其虛而不華也,邴邴乎其似喜乎!崔乎其不得已乎!滀乎進我色也,與乎止我德也,厲乎其似世乎!謷乎其未可制也,連乎其似好閉也,悗乎忘其言也。
*狀 ... 겉에 드러난 표정, 풍모.
*義 ... ‘峨’, 높다.
*朋 ... ‘崩’. 붕괴하다, 무너지다.
*與乎 ... 모습이나 태도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
*觚 ... 무리 가운데 홀론 뛰어나다.
*堅 ... 고집 부리다.
*張乎 ... 넒고 큰 모양, 여기서는 마음이 넓고 큼을 가리킴.
*華 ...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하다.
*邴邴 ... 기뻐하는 모습, 즐거워하는 모습.
*崔乎 ... 행동을 개시하는 모습.
*滀乎 ... 물이 모여 움직이지 않는 모습>여기서는 얼굴이 기쁨으로 빛나는 모습을 말함.
*與 ... 왕래하다, 교제하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厲 ... ‘廣’을 잘못 기록한 듯.
*謷乎 ... 스스로 만족한 모습.
*連乎 ... 장구하고 광범위한 모습.
*悗乎 ... 마음이 여기 있지 않은 모습, 정신을 딴 데 둔 모습.
9. (옛날의 진인은) 형률刑律을 다스림의 몸체로 삼았고, 예의를 날개로 삼았으며, 지식으로써 때를 기다렸고, 덕으로써 사물의 본성을 따랐다. 형률을 다스림의 몸체로 삼았다는 것은 죽이는 일에도 여유로웠다는 것이고, 예의를 날개로 삼았다는 것은 예의로써 가르치는 일을 세상에 두루 펼쳤다는 것이다. 지식으로써 때를 기다렸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만 했다는 것이다. 덕으로써 사물의 본성을 따랐다는 것은 발 있는 사람과 함께 언덕에 올랐다는 말인데, 사람들은 참으로 부지런히 걸어야 이를 수 있다고 여긴다.
以刑為體,以禮為翼,以知為時,以德為循。以刑為體者,綽乎其殺也;以禮為翼者,所以行於世也;以知為時者,不得已於事也;以德為循者,言其與有足者至於丘也,而人真以為勤行者也。
*이 단락의 내용은 장자의 사상이나 주장이 아닌 듯하다. 앞뒤 단락의 내용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많은 연구와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爲時 ... 때를 기다리다.
*綽乎 ... 큰 모양, 관대한 모습.
10. 그러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도 하나요,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이다. 같은 것과도 하나요, 같이 아닌 것과도 하나이다. 같은 것은 하늘과 동류同類이고, 같지 않은 것은 사람과 동류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대립하거나 초월하지 않으니, 이런 인식에 이른 이를 일러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故其好之也一,其弗好之也一。其一也一,其不一也一。其一,與天為徒;其不一,與人為徒。天與人不相勝也,是之謂真人。
*徒 ... 문생, 제자. 여기서는 ‘同類’를 뜻함.
죽고 사는 것
11.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다. 밤과 낮의 갈마듦이 변함없는 것 같은 하늘의 이치이다. 사람이 참여하거나 간여할 수 없는 것, 이것이 모든 사물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생명의 아버지로 여길 뿐만 아니라 온몸 다하여 받드는데, 하물며 저 뛰어난 ‘도道’임에랴! 사람들은 임금을 자기보다 낫다고 여기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하물며 저 뛰어난 ‘도道’임에랴!
死生,命也,其有夜旦之常,天也。人之有所不得與,皆物之情也。彼特以天為父,而身猶愛之,而況其卓乎!人特以有君為愈乎己,而身猶死之,而況其真乎!
*命 ... 피할 수도 없는,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작용.
*常 ... 정상, 규칙, 상규. 영원히 바뀌지 않으며 변화하는 규칙.
*與 ... 참여하다, 간여하다.
*卓 ... 뛰어나다, 홀로 우뚝 서다.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道’를 가리킴.
*愈 ... 낫다, 초과하다, 상회하다.
*死之 ... ‘爲之而死’, 즉 나라님을 위해 몸을 바치다.
*眞 ... ‘道’을 가리킴.
물고기는 물에, 사람은 도에
12. 샘물이 마르자 물고기가 함께 뭍에 처하여 서로 물기를 토해 뿜어주고, 서로 침을 내어 적셔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 잊고 사는 것만 못하다. 요堯 임금을 칭송하고 걸桀 임금을 비난하지만, 그 둘을 모두 잊어버리고 ‘도道’에 녹아드는 것만 못하다.
泉涸,魚相與處於陸,相呴以溼,相濡以沫,不如相忘於江湖。與其譽堯而非桀,不如兩忘而化其道。
*涸 ... 물이 마르다.
*呴 ...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쉬다.
*濡 ... 적시다.
*沫 ... 침.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13. 대지大地는 나에게 몸뚱이를 주어 탑재하고, 나에게 삶을 주어 수고롭게 하고, 나에게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나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기에 내 삶을 좋다고 생각하면 내 죽음도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故善吾生者,乃所以善吾死也。
*大塊 ... 대지. ‘대자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佚 ... 편안하다. 한가하고 안일하다.
14. 배를 산골짜기에 감추고, 통발을 늪에 감춰 두고서, 이를 믿음직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밤중에 힘 있는 이가 그것을 걸머지고 달아나거늘, 어리석은 이는 이를 알지 못한다.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감추면 된다지만 그래도 새어나갈 데가 있다. 천하를 천하에 감추면 새어나갈 데가 없다. 이것이 바로 변함없는 사물의 참 모습이다.
夫藏舟於壑,藏山於澤,謂之固矣。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昧者不知也。藏大小有宜,猶有所遯。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是恆物之大情也。
*壑 ... 깊고 깊은 산골짜기
*山 ... ‘汕’, 오구, 통발, 漁具.
*昧 ... 우매한 사람.
*藏大小 ... ‘藏小於大’.
*宜 ... 적합하다, 적절하다.
*遯 ... ‘遁’의 이체. 벗어나다, 면하다, 잃어버리다.
*恒 ... 변함없는, 고유한.
큰 스승
15. 우리는 단지 사람의 형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기뻐한다. 사람의 형상이라는 것이 한없이 변화해도 끝이 있이 있은 적이 없으니, 그 기쁨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성인聖人은 장차 만물이 사라질 수 없는 환경에서 노닐며 만물과 더불어 존재하고 사라진다. 일찍 죽어도 좋고, 늙어서 죽어도 좋고, 태어나도 좋고 죽어도 좋다. 사람들이 이를 본받으려는데, 하물며 만물이 서로 연결되고 모든 변화가 의탁하는 ‘도道’임에랴!
特犯人之形而猶喜之,若人之形者,萬化而未始有極也,其為樂可勝計邪!故聖人將遊於物之所不得遯而皆存。善妖善老,善始善終,人猶效之,又況萬物之所係,而一化之所待乎!
*犯 ... 이어받다, 받다, 접수하다.
*勝 ... 이겨낼 수 있다, 견뎌낼 수 있다.
*妖 ... ‘夭’, 문장의 앞뒤 의미를 미루어 보건대, ‘젊다, 어리다’의 뜻임. ‘老’ 와 짝을 이룸.
*係 ... 관련되다, 연결되다.
*一 ... 모든.
*一化 ... 모든 변화.
*待 ... 의지하다, 기대다.
*‘所係’, ‘所待’는 모두 ‘道’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장자는 모든 사물, 모든 변화는 모두 ‘道’를 떠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사람은 마땅히 ‘道’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 각했다. ‘道’야말로 존경하며 높이 우러러야 할 ‘師’라는 것이다.
도道란 무엇인가?
16. 무릇 도道란 진실하고 확실히 믿을 만하지만, 무위무형無爲無形하다.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는 없으며,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근본이 되고 스스로 뿌리가 되어 하늘과 땅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본래 있었다. 귀신과 제왕을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았다. 태극太極보다 높으나 높다고 하지 않고, 육극 六極보다 낮으나 깊다고 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에 앞서 생겼으나 오래 되었다 하지 않고, 먼 옛날보다 오래되었지만 늙었다고 하지 않는다.
夫道,有情有信,無為無形;可傳而不可受,可得而不可見;自本自根,未有天地,自古以固存;神鬼神帝,生天生地;在太極之先而不為高,在六極之下而不為深;先天地生而不為久,長於上古而不為老。
*情, 信 ... 진실, 확실히 믿을 만하다.
*傳 ... 전하다.
*得 ... 여기서는 깨닫다, 체득하다.
*太極 ... 만물을 파생시키는 근원, 즉 우주의 시초.
*先 ... 앞뒤 문맥이나 낱말의 대응 상황으로 보면, ‘先’은 ‘上’으로 봐야 한다. ‘太極之上’은 ‘六極之下’와 대응한다.
도를 터득한 사람들
17. 희위씨豨韋氏는 도道를 터득하여 천지를 통솔하였고, 복희씨伏犧氏는 도를 터득하여 기氣의 근원으로 들어갔고, 북두칠성은 도를 터득하여 영원히 어그러짐이 없고, 해와 달은 도를 터득하여 영원히 쉼이 없고, 감배堪坏는 도를 터득하여 곤륜산에 들어갔고, 풍이馮夷는 도를 터득하여 황하에서 노닐었고, 견오肩吾는 도를 터득하여
태산에서 살았고, 황제黃帝는 도를 터득하여 구름 타고 하늘에 올랐고, 전욱顓頊은 도를 터득하여 현궁玄宮에 거처했고, 우강禺强은 도를 터득하여 북극에 섰고, 서왕모西王母는 도를 터득하여 소광산少廣山에 자리했는데, 그 처음도 알지 못하고 그 끝도 알지 못한다. 팽조彭祖는 도를 터득하여 위로는 순舜 임금 때부터 아래로는 오패五霸에 이르도록 살았다. 부열傅說은 도를 터득하여 무정武丁의 재상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다가 죽어서는 동유성東維星을 타고 기수箕宿와 미수尾宿 사이에 앉아서 여러 별들과 나란히 자리잡았다.
豨韋氏得之,以挈天地;伏犧氏得之,以襲氣母;維斗得之,終古不忒;日月得之,終古不息;堪坏得之,以襲崑崙;馮夷得之,以遊大川;肩吾得之,以處太山;黃帝得之,以登雲天;顓頊得之,以處玄宮;禺強得之,立乎北極;西王母得之,坐乎少廣,莫知其始,莫知其終;彭祖得之,上及有虞,下及五伯;傅說得之,以相武丁,奄有天下,乘東維,騎箕尾,而比於列星。
*豨韋氏... 전설 속 아득한 옛적 제왕.
*挈 ... 통솔하다, 統領하다.
*伏犧氏 ... 전설 속의 고대 제왕.
*襲 ... 들어가다.
*氣母 ... 원기의 어머니, 기의 근본.
*維斗 ... 북두성.
*忒 ... 어그러지다.
*勘坏 ... 전설 속 인면수신의 곤륜산의 신.
*馮夷 ... 하백, 황하의 신.
*肩吾 ... 전설 속 태산의 신.
*黃帝 ... 軒轅氏>전설 속의 고대 제왕, 중원 각 민족의 시조.
*顓頊 ... 전설 속 黃帝의 손자.
*禺强 ... 전설 속 人面鳥身의 北海의 신.
*西王母 ... 고대 신화 속의 女神. 소광산에 살았다고 함.
*傅說 ... 殷商 시대의 재덕을 겸비한 인재. 高宗 武丁의 재상이 됨.
*奄 ... 덮다, 포괄하다.
*東維 ... 별 이름. 箕星과 尾星 사이에 있음.
*箕, 尾 ... 별 이름. 28수 가운데 두 星座.
여우女偊가 가르치는 득도得道의 단계
18. 남백자규南伯子葵가 여우女偊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가 많은데, 얼굴빛은 어린아이 같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여우가 대답했다.
“도道를 터득했기 때문이오.”
남백자규가 다시 물었다.
“저도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여우가 대답했다.
“안 되오, 어찌 되겠소? 그대는 도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 복량의卜梁倚라는 이는 성인의 명민한 재기는 있으나 성인의 청정한 도가 없었고, 나는 성인의 청정한 도는 있으나 성인의 명민한 재기가 없소. 내가 청정한 마음으로 그를 가르치고 싶지만, 그가 과연 성인이 될 수 있을런지요?”
南伯子葵問乎女偊曰:「子之年長矣,而色若孺子,何也?」曰:「吾聞道矣。」南伯子葵曰:「道可得學邪?」曰:「惡!惡可!子非其人也。夫卜梁倚有聖人之才,而無聖人之道,我有聖人之道,而無聖人之才,吾欲以教之,庶幾其果為聖人乎!
*南伯自葵, 女偊 ... 둘 다 사람 이름. ‘南伯自葵’가 ‘南郭子綦’로 주해한 이도 있음.
*孺子 ... 어린아이, 갓난아기.
*惡 ...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는 말, 의미는 ‘不’과 같음.
*卜梁倚 ... 인명.
*庶幾 ... 대개, 어쩌면.
19. “그렇지 않소. 성인의 청정한 도道를 성인의 명민한 재기를 가진 이에게 전하기는 역시 쉬운 일이오. 나는 그래도 신중하게 그에게 알려주었더니, 사흘이 지나자 천하를 잊어버리더군요. 천하를 잊어버리기에, 난 또 신중하게 지켜보았더니, 이레가 지나자 사물을 잊어버리더군요. 사물을 잊어버리기에, 난 또 신중하게 지켜보았더니, 아흐레가 지나자 삶을 잊어버리더군요. 삶을 잊어버리기에, 난 또 신중하게 지켜보았더니, 이제는 명철明徹해지더군요. 명철해지더니, 이제는 어떤 사물의 영향도 받지 않더군요. 어떤 사물의 영향도 받지 않더니, 예와 이제를 초월하더군요. 예와 이제를 초월하더니, 죽음도 삶도 초월한 경지에 들어가더군요.”
不然,以聖人之道告聖人之才,亦易矣。吾猶守而告之,參日而後能外天下;已外天下矣,吾又守之,七日而後能外物;已外物矣,吾又守之,九日而後能外生;已外生矣,而後能朝徹;朝徹,而後能見獨;見獨,而後能無古今;無古今,而後能入於不死不生。
*守 ... 절조를 지키다.>여기서는 마음이 극히 고요하여 스스로 절제하며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데 뛰어난 상태를 가리킴.
*外 ... 잊어버리다.
*朝徹 ... ‘朝’는 ‘떠오르는 해’를, ‘徹’은 ‘明徹함’을 가리킴.>비유하여 物我를 모두 잊은 고요 한 마음의 상태.
*獨 ... 장자 철학 체계에서 중요한 개념의 하나임. 어떤 사물의 영향도 받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어떤 사물에 의지함도 없는 상태. 독립할 수 있어서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는 상태는 오로지 ‘道’뿐임. 따라서 여기서 쓰인 ‘獨’이 실제 가리키는 바른 바로 ‘道’이다.
20. “삶을 죽이는 이는 죽지 않고, 삶을 살리는 이는 살지 못하오. 그는 만물에 대하여 보내지 않는 것이 없고, 맞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으며,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없고, 이루지 않는 것이 없소. 이를 일러 ‘어지러움 속의 평온’이라고 하오. ‘어지러움 속의 평온’이라는 말은 어지러움이 지난 뒤에 이룸이 있다는 뜻이오.”
殺生者不死,生生者不生。其為物,無不將也,無不迎也;無不毀也,無不成也。其名為攖寧。攖寧也者,攖而後成者也。」
*殺 ... 퇴치하다, 없애다. 버리다, 포기하다, 망각하다는 의미가 있다.
*‘殺生者’와 ‘生生者 ’는 짝을 이룬다. 생존을 망각한 자와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둔 이를 각각 가리킨다.
*將 ... 보내다.
*攖 ... 어지럽히다. 방해하다.
*攖寧 ... 외계 사물의 혼란이나 소란에 흔들림 없이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유지함. 이는 장자 가 제창한 가장 높은 수양의 경지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서 ‘道’를 얻었다고 본다.
21. 남백자규가 또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이런 것을 들었습니까?”
여우가 또 대답했다.
“부묵副墨의 아들에게 들었소. 부묵의 아들은 낙송洛誦의 손자에게 들었고, 낙송이 손자는 첨명瞻明에게 들었고, 첨명은 섭허聶許에게 들었고, 섭허는 수역需役에게 들었고, 수역은 오구於謳에게 들었고, 오구는 현명玄冥에게 들었고, 현명은 삼료參廖에게 들었고, 삼료는 의시疑始에게 들었소.”
南伯子葵曰:「子獨惡乎聞之?」曰:「聞諸副墨之子,副墨之子聞諸洛誦之孫,洛誦之孫聞之瞻明,瞻明聞之聶許,聶許聞之需役,需役聞之於謳,於謳聞之玄冥,玄冥聞之參寥,參寥聞之疑始。」
*이 단락에 등장하는 副墨에서부터 ‘疑始’까지는 모두 가탁한 우언 인물이다.
*副墨 ... 문자, 글자.
*洛誦 ... 읊는 이.
*瞻明 ... 잘 보는 이.
*聶許 ... 잘 듣는 이.
*需役 ... 일 잘하는 이.
*於謳 ... 노래 잘하는 이.
*玄冥 ... 그윽한 이.
*參廖 ... 빈 이.
*疑始 ... 처음 같은 이.
사생존망이 일체임을 터득한 네 벗
22. 자사子祀, 자여子輿, 자려子犁, 자래子來, 이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없음을 머리로 삼고, 삶을 척추로 삼고, 죽음을 꽁무니로 삼을 수 있을까? 또 누가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이 일체一體임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이와 벗하려네.”
네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이들은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기에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子祀、子輿、子犁、子來四人相與語曰:「孰能以無為首,以生為脊,以死為尻,孰知生死存亡之一體者,吾與之友矣。」四人相視而笑,莫逆於心,遂相與為友。
*子祀、子輿、子犁、子來는 모두 가탁한 허구의 인물임.
*尻 ... 꽁무니, 등뼈 맨 아래쪽, 둔부를 가리킴.
23. 얼마 뒤, 자여子輿가 병이 나자, 자사子祀가 문병을 가서 말했다.
“위대하도다, 저 조물자여! 어찌 나를 이처럼 오그라들게 하는가! 등뼈는 밖으로 튀어나오고, 오장五臟은 위로 올라가고, 턱은 배꼽 아래 묻히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고, 목뼈는 흡사 혹덩이처럼 불룩 하늘로 가리킨다.”
음과 양의 기氣가 화합하지 못하여 뒤죽박죽이지만 그 마음은 여유로워 아무 일 없는 듯했다. 비틀거리며 걸어서 우물에 제 모습 비춰보고 말했다.
“아, 저 조물자여, 또 어찌 나를 이렇게 오그라들게 하였는가!”
俄而子輿有病,子祀往問之。曰:「偉哉!夫造物者,將以予為此拘拘也!曲僂發背,上有五管,頤隱於齊,肩高於頂,句贅指天。」陰陽之氣有沴,其心閒而無事,跰足+鮮而鑑於井,曰:「嗟乎!夫造物者,又將以予為此拘拘也!」
*問 ... 예를 갖추어 방문하다, 문안 드리다.
*拘拘 ... 오그라져 펴지지 않는 모습.
*曲僂 ... 등뼈가 밖으로 튀어나오다.
*頤 ... 턱.
*齊 ... 배꼽, ‘臍’.
*句贅 ... 목뼈가 불룩 뛰어나온 모습이 흡사 혹과 같다.
*沴 ... 음양의 기가 화합하지 못하여 재난이 발생하다.
*跰足+鮮 ... 비틀거리며 걷다.
24. 자사가 물었다.
“자네는 그게 싫은가?”
자여가 대답했다.
“아니, 내가 어떻게 싫어하겠는가! 가령 조물주가 내 왼팔을 점점 변화시켜 닭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새벽을 알리겠네. 내 오른팔을 점점 변화시켜 탄환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산비둘기를 잡아 구워 먹겠네. 내 꽁무니를 점점 변화시켜 바퀴가 되고 내 정신은 말이 된다면, 나는 그것을 탈 텐데, 어찌 더 탈 것이 필요하랴. 게다가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잃는 것도 순리를 따랐기 때문일세. 편안하게 때를 받아들이고, 순리를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들어올 수 없다네. 이것이 예부터 이르는 ‘현해懸解’일세. 그런데도 스스로 풀릴 수 없는 자는 외물에 옭아매였기 때문이지. 또한 외물이 하늘을 이기지 못한 지 오래되었는데, 내 어찌 이를 싫어하겠는가?”
子祀曰:「汝惡之乎?」曰:「亡,予何惡!浸假而化予之左臂以為雞,予因以求時夜;浸假而化予之右臂以為彈,予因以求鴞炙;浸假而化予之尻以為輪,以神為馬,予因以乘之,豈更駕哉!且夫得者時也,失者順也,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此古之所謂縣解也,而不能自解者,物有結之。且夫物不勝天久矣,吾又何惡焉?」
*惡 ... 미워하다, 싫어하다, 혐오하다.
*亡 ... ‘無’, 없다.
*浸 ... 점점.
*假 ... 가령.
*鴞 ... 산비둘기.
*灸 ... 고기를 불에 구워 익히다.
*順 ... 규율에 순응하다.
*縣 ... ‘懸’, 매달다.
*縣解 ...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벗어나다. 장자는 사람이 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거꾸 로 매달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고통이 심할 것인즉, 외물에서 초탈하여 속 박을 벗어버리면 七情六欲도 이제는 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5. 얼마 뒤, 자래가 병이 들어 숨을 헐떡이며 곧 죽을 것 같았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이 둘러앉아 울었다. 자려가 문병을 가서 이렇게 말했다.
“에이, 저리 비키소! 돌아가실 분을 놀라게 하지 마소!”
자려는 문에 기대어 자래에게 말했다.
“위대하도다, 조물자여! 자네를 어떻게 변화시키려나, 또 자네를 어디로 데려가려나? 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 버러지의 팔뚝으로 만들려나?”
俄而子來有病,喘喘然將死,其妻子環而泣之。子犁往問之曰:「叱!避!無怛化!」倚其戶與之語曰:「偉哉造物!又將奚以汝為?將奚以汝適?以汝為鼠肝乎?以汝為蟲臂乎?」
*喘喘然 ... 숨이 가쁜 모습.
*妻子 ... 부인과 자녀.
*環 ... 둘러 앉다.
*叱 ... 큰 소리로 꾸짖는 소리.
*怛 ... 놀라 소란을 피우다.
*化 ... 변화하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장차 죽다는 뜻임.
*爲 ... 변하다, 바꾸다.
26. 자래가 말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를 가리키든, 자식은 오로지 그 명을 따라야 하네. 자연의 변화와 사람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와 같네. 그가 나를 죽음에 가까이 가게 하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그럼 내가 무지막지하지, 그가 무슨 죄가 있으랴! 대저 대지는 내게 몸뚱이를 주어 탑재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하네. 그러기에 내 삶이 좋은 일이라면, 내 죽음도 좋은 일이라네.”
子來曰:「父母於子,東西南北,唯命之從。陰陽於人,不翅於父母,彼近吾死而我不聽,我則悍矣,彼何罪焉!夫大塊載我以形,勞我以生,佚我以老,息我以死。故善吾生者,乃所以善吾死也。
*陰陽 ... 여기서는 모든 자연의 변화를 가리킨다.
*翅 ... ‘啻’, ‘不翅’는 곧 ‘不啻’이다.
27. “지금 뛰어난 대장장이가 쇠를 녹여 그릇을 만드는데, 쇠가 펄떡 뛰면서, ‘나는 막야鏌鎁가 되어야겠소.’라고 말한다면, 뛰어난 대장장이는 분명 상서롭지 못한 쇠라고 여길 것이오. 지금 사람의 몸뚱이를 받은 이가, ‘사람으로만, 사람으로만.’하고 외친다면, 조화자造化者은 분명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오. 지금 온 세상이 큰 용광로요 조화자가 뛰어난 대장장이라면, 무엇이 되든 좋지 않겠는가! 편안히 잠들 듯이 세상을 떠났다가 화들짝 기쁨으로 놀라듯이 인간 세상에 돌아오리라.”
今之大冶鑄金,金踊躍曰『我且必為鏌鋣』,大冶必以為不祥之金。今一犯人之形,而曰『人耳人耳』,夫造化者必以為不祥之人。今一以天地為大鑪,以造化為大冶,惡乎往而不可哉!成然寐,蘧然覺。」
*冶 ... 뛰어난 대장장이.
*金 ... 金屬, 쇠.
*鏌鎁 ... 춘추시대 干將과 莫邪 두 부부가 楚王의 요구로 주조한 검. 세 해에 걸쳐 검을 완 성하여 雄劍은 ‘干將’, 雌劍은 ‘莫耶’로 명명함.
*祥 ... 상서롭다.
*犯 ... 받다, 이어받다.
*成然 ... 편안하게 푹 자는 모습.
*寐 ... 잠자다. 여기서는 죽음을 가리킴.
*籧然 ... 놀라며 기뻐하는 모습.
*覺 ... 잠에서 깨어나다. 여기서는 살아서 돌아옴을 비유함.
세상 밖에서 노니는 세 벗
28. 자상호子桑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 이 세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서로 사귄다는 마음이 없는 데서 서로 사귈 수 있고, 서로 돕는다는 마음조차 없는 데서 서로 도울 수 있을까? 누가 하늘에 올라 안개 속을 노닐고, 무극無極에서 얽매임 없이 순환 왕복하며, 서로 삶을 잊어버리고 끝없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세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子桑戶、孟子反、子琴張三人相與友,曰:「孰能相與於無相與,相為於無相為?孰能登天遊霧,撓挑無極,相忘以生,無所終窮?」三人相視而笑,莫逆於心,遂相與友。
*子桑戶, 孟子反, 子琴張은 모두 장자가 가탁한 인물. 이 구절의 ‘友’는 ‘語’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
*撓挑 ... 순환하며 오르다.
*無極 ... 여기서는 ‘끝이 없이 높고 넓은 하늘, 우주’를 가리킴.
29. 얼마 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자상호가 죽었지만, 아직 장사를 지내지는 않았다. 공자孔子가 이 소식을 듣고, 자공子貢을 보내 장례에 관한 일을 돕게 하였다. (자공이 가서 보니) 어떤 이는 노래를 짓고, 어떤 이는 거문고를 타면서, 서로 어울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아, 자상호여! 아, 자상호여! 그대는 이미 참됨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구나, 아!”
자공이 종종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감히 묻습니다. 주검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것이 예禮입니까?”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예의 뜻을 안단 말인가?”
莫然有閒,而子桑戶死,未葬。孔子聞之,使子貢往侍事焉。或編曲,或鼓琴,相和而歌曰:「嗟來桑戶乎!嗟來桑戶乎!而已反其真,而我猶為人猗!」子貢趨而進曰:「敢問臨尸而歌,禮乎?」二人相視而笑,曰:「是惡知禮意!」
*莫然有間 ... 잠시 동안. ‘漠然’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侍事 ... 장례 절차를 돕다.
*嗟來 ... 감탄사 ‘아’.
*而 ... 너, 당신, 그대.
*反 ... 돌아오다.
*眞 ... 참 모습.
*反其眞 ... 자연으로 돌아가다.
*猗 ... 감탄의 어기를 표시함.
30. 자공이 돌아와서 공자에게 아뢰었다.
“저들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덕행을 중요시하지도 않고 자기들 외모도 도외시하고 주검을 앞에 두고 노래하면서 얼굴빛 변함없으니 저들을 뭐라 불러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저들은 세상 밖에서 노니는 이들이지만, 나는 세상 안에서 노니는 이네. 세상 밖과 세상 안은 서로 미치지 않거늘, 내가 너를 보내 문상하게 했으니, 내 생각이 얕고 좁았구나.”
子貢反,以告孔子曰:「彼何人者邪?修行無有,而外其形骸,臨尸而歌,顏色不變,無以命之。彼何人者邪?」孔子曰:「彼遊方之外者也,而丘游方之內者也。外內不相及,而丘使女往弔之,丘則陋矣。
*修行 ... 자기의 덕행을 배양하다.
*外其形骸 ... 자신의 몸뚱이를 도외시하다.>죽음을 큰일로 여기지 않다.
*命 ... 이름하다. 명명하다.
*方 ...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
*陋 ... 식견이 얕고 좁다.
31. “저들은 조물자와 짝이 되어 하늘과 땅의 원기元氣에서 노닐고 있다. 저들은 삶을 쓸데없이 매달린 혹덩이로 여기고, 죽음을 부스럼을 없애거나 종기를 터뜨려 버리는 것으로 여긴다. 대저 이와 같은 이들이 어떻게 죽음과 삶의 우열을 셈하겠는가! 다른 것에 기대어 같은 몸에 의탁하니, 간이나 쓸개를 잊으며, 눈이나 귀를 놓아둔 채, 끝이나 처음을 반복할 뿐,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한다. 망연히 세상 밖에서 방황하며 무위無爲의 일에서 노니나니, 저들이 어떻게 번잡한 세속의 예를 지키며, 여러 사람의 귀와 눈에 돋나려 하겠는가!”
彼方且與造物者為人,而遊乎天地之一氣。彼以生為附贅縣疣,以死為決𤴯潰癰。夫若然者,又惡知死生先後之所在!假於異物,託於同體,忘其肝膽,遺其耳目,反覆終始,不知端倪,芒然彷徨乎塵垢之外,逍遙乎無為之業。彼又惡能憒憒然為世俗之禮,以觀眾人之耳目哉!」
*人 ... 짝.
*爲人 ... 서로 짝이 되다, 서로 반려가 되다.
*一氣 ... 元氣.
*縣 ... 懸
*疣 ... 사마귀, 피부에 돋은 혹.> ‘瘤’와 같음.
*假 ... 기대다.
*芒然 ... 茫然.
*塵垢 ... 여기서는 사람 사는 세상을 가리킨다.
*無爲之業 ... 作爲하는 바가 없는 경지
*憒憒然 ... 마음이 산란한 모습, 번잡한 모습.
*觀 ... 현시하다, 과시하다.
32. 자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의지하고 계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하늘의 벌을 받은 사람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지고至高한 도道를 추구할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감히 그 도를 추구하는 방법을 묻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물고기는 서로 다투며 물속으로 뛰어들고, 사람은 서로 다투며 도의 세계로 나아간다. 서로 다투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연못을 파면, 거기서 영양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서로 다투며 도의 세계로 나아가면, 일을 벌이지 않고도 삶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사람은 도에서 서로를 잊는다.’고 했다.”
자공이 물었다.
“감히 기인畸人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기인이란 보통 사람에 견주면 기이하지만, 하늘에 견주면 다를 바가 없다. 그러기에 ‘하늘의 소인은 인간 세상에서는 군자요, 인간 세상의 군자는 하늘의 소인이다.’고 했다.”
子貢曰:「然則夫子何方之依?」孔子曰:「丘,天之戮民也。雖然,吾與汝共之。」子貢曰:「敢問其方。」孔子曰:「魚相造乎水,人相造乎道。相造乎水者,穿池而養給;相造乎道者,無事而生定。故曰:魚相忘乎江湖,人相忘乎道術。」子貢曰:「敢問畸人。」曰:「畸人者,畸於人而侔於天。故曰:天之小人,人之君子;人之君子,天之小人也。」
*方 ... 기술, 재간, 준칙.
*戮 ... 형벌을 주다.
*天之戮民은 하늘의 징별을 받은 사람, 곧 이 때문에 속박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을 뜻함.
*造 ... 나아가다.
*給 ... 넉넉하다.
*畸人 ... 기이한 사람, 여기서는 세속에 맞지 않는 사람.
*侔 ... 가지런하다, 일치하다.
맹손재孟孫才
34. 안회顔回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孟孫才는 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곡을 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슬퍼하지도 않았고, 상喪을 치르면서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없었지만, 상을 잘 치렀다는 소문이 노魯 나라에 두루 퍼졌습니다. 진실로 그렇지 않은데도 그의 이름이 날릴 수 있습니까? 저는 정말 그게 이상합니다.”
顏回問仲尼曰:「孟孫才,其母死,哭泣無涕,中心不戚,居喪不哀。無是三者,以善處喪蓋魯國。固有無其實而得其名者乎?回壹怪之。」
*孟孫才 ... 인명, 복성으로 성은 맹손, 이름은 재.
*涕 ... 눈물을 흘리다.
*中心 ... 마음속.
*戚 ... 슬퍼하다, 비통하다.
*蓋 ... 덮다.
*壹 ... 실제로, 확실히
34. 공자가 말했다.
“저 맹손씨는 제 할 일을 다했으니, 보통 사람의 앎보다 앞선 이다. 사람들은 장례를 간략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 했지만 그는 이미 간략하게 했다. 맹손씨는 왜 살아야 하는지도,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삶을 좇을 줄도 몰랐고, 죽음에 다가갈 줄도 몰랐다. 앞서가야 할 까닭도, 뒤따라야 할 까닭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변화해야 할 사물이 되어, 그가 알지 못하는 변화를 기다릴 따름이다. 게다가 곧 변화하려는데 어떻게 변화하지 않은 것을 알겠는가? 또 변화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미 변화한 것을 알겠는가? 너와 나는 말이다,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仲尼曰:「夫孟孫氏盡之矣,進於知矣。唯簡之而不得,夫已有所簡矣。孟孫氏不知所以生,不知所以死,不知就先,不知就後,若化為物,以待其所不知之化已乎!且方將化,惡知不化哉?方將不化,惡知已化哉?吾特與汝其夢未始覺者邪!
*進 ... 낫다, 초과하다.
*夫 ... 여기서는 맹손재를 가리킨다.
*就 ... 다가가다, 추구하다.
*先 ... 여기서는 실제로 ‘삶’을 가리킨다. 따라서 ‘後’를 ‘죽음’으로 보아야 한다.
*若 ... ‘順’, 그러니까 ‘若化’는 자연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35. “게다가 세상을 떠난 이는 몸뚱이는 변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손상을 입지 않는다. 마음이 머무는 곳은 아침저녁으로 바뀌지만, 마음이 참으로 죽은 것은 아니다. 오로지 맹손재만이 깨닫고 사람들이 곡을 하니까 자기도 곡을 하는 것은 바로 그가 이와 같이 상을 치르는 원인이다. 더구나 서로 나일 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내가 말하는 내가 꼭 나라는 것을 어떻게 있겠는가? 또 너는 꿈에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어 물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지. 지금 말하는 나라는 자체가 깨어 있는 상태인지, 꿈꾸는 상태인지, 알 수 없지. 마음은 유쾌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고, 유쾌하여 웃음은 나왔지만 울분이 풀리지 않지만, 자연적 추이에 편안하여 죽음을 잊어버린다. 이리하여 텅 빈 하늘에 들어가서 하나가 되리라.”
且彼有駭形而無損心,有旦宅而無情死。孟孫氏特覺,人哭亦哭,是自其所以乃。且也,相與吾之耳矣,庸詎知吾所謂吾之乎?且汝夢為鳥而厲乎天,夢為魚而沒於淵,不識今之言者,其覺者乎,夢者乎?造適不及笑,獻笑不及排,安排而去化,乃入於寥天一。」
*駭形 ...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몸뚱이는 사람들이 놀란 만한 변화가 있다는 뜻임.
*旦 ... 아침저녁으로 변하다.
*宅 ... 정신(마음)이 머무는 곳, 사람의 몸뚱이를 비유하여 가리킴.
*情死 ... 참 죽음.
*乃 ... 이러하다, 이럴 뿐이다.
*厲 ... 여기서는 새의 비상을 가리킴.
*造 ... 도달하다.
*適 ... 유쾌하다, 쾌적하다, 마음에 들다.
*獻 ... ‘戱’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따라서 ‘獻笑’도 ‘웃다, 조소하다’로 볼 수 있다.
*排 ... 해결하다, 울분을 풀다.
*廖 ... 적적하고 쓸쓸하다, 허공.
아! 내 스승
36. 의이자意而子가 허유許由를 뵈러 갔다. 허유가 물었다.
“요堯 임금이 자네에게 뭘 가르쳐 주든?”
의이자가 대답했다.
“요 임금이 ‘너는 반드시 인의仁義를 힘써 실천하고, 시비是非를 분명히 가려 말해야 한다.’라고 일렀습니다.”
허유가 말했다.
“그런데 자넨 무엇 때문에 날 찾아왔는가? 요 임금이 이미 자네 이마에 인의로써 먹물을 새겼고, 시비로써 자네 코를 베었는데, 자넨 어찌 저 자유분방하고 얽매임 없는 세계에서 노닐며 변화의 길을 가겠는가?”
의이자가 대답했다.
“그렇더라도 저는 그 언저리에서라도 노닐고 싶습니다.”
허유가 말했다.
“그렇지 않네. 눈먼 이는 용모의 아름다움을 칭찬할 수 없고, 수놓은 의복의 갖가지 무늬를 칭찬할 수 없다네.”
意而子見許由,許由曰:「堯何以資汝?」意而子曰:「堯謂我:『汝必躬服仁義,而明言是非。』」許由曰:「而奚為來軹?夫堯既已黥汝以仁義,而劓汝以是非矣,汝將何以遊夫遙蕩、恣睢、轉徙之途乎?」意而子曰:「雖然,吾願遊於其藩。」許由曰:「不然。夫盲者無以與乎眉目顏色之好,瞽者無以與乎青黃黼黻之觀。」
*意而子 ... 허구의 인물.
*資 ... 주다.
*躬服 ... 몸소 실천하다, 힘써 행하다.
*而 ... 너, 자네, 당신.
*軹 ... ‘只’>어말에 어기를 돋우는 말 조각.
*黥 ... 옛적, 이마에 먹물로 刺字했던 형벌.
*劓 ... 옛적, 코를 베어 냈던 형벌.
*遙蕩 ...자유롭게 노닐다.
*恣睢 ... 구속됨 없이 自得한 모습.
*藩 ... 울타리. 여기서는 일정하게 속박을 받는 경지.
*與 ... 찬동하다, 지지하다, 칭찬하다.
*瞽 ... 눈이 멀다, 맹인.
*黼黻 ... 옛적, 예복 위에 수놓은 꽃무늬.
37. 의이자가 말했다.
“미녀 무장無莊이 그 아름다움을 잊고, 장사 거량據梁이 그 힘을 잊고, 황제黃帝가 그 지혜를 잊는 것은 모두 용광로 속에서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저 조물자가 내 얼굴의 먹물을 없애고 베어낸 코를 되살려 저를 온전하게 만든 뒤, 선생님을 따르게 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허유가 말했다.
“아, 그건 알 수 없지. 내가 자네에게 그 대략을 말해 줌세. 내 스승이여, 내 스승이여! 만물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지만 의롭다고 하지 않고, 은택을 만세에 베풀지만 인仁하다고 하지 않고, 아득한 옛날보다 오래되었지만 늙지 않고, 천지를 싣고 덮으며 온갖 형상을 새기고 조각해도 솜씨 있다 하지 않으니, 여기가 바로 노닐 곳이라네.”
意而子曰:「夫無莊之失其美,據梁之失其力,黃帝之亡其知,皆在鑪捶之間耳。庸詎知夫造物者之不息我黥而補我劓,使我乘成以隨先生邪?」許由曰:「噫!未可知也。我為汝言其大略。吾師乎!吾師乎!齏萬物而不為義,澤及萬世而不為仁,長於上古而不為老,覆載天地、刻彫眾形而不為巧。此所遊已。」
*無莊 ... 허구의 옛적 미인.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도를 얻은 뒤 다시는 화장을 하지 않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잊어다고 함.
*據梁 ... 허구의 옛적 용사.
*亡 ... 잃어버리다, 망각하다.
*鑪捶 ... 단련하다. ‘道’의 훈도를 받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감을 비유함.
*息 ... 양생하다.
*師 ... 사실상 ‘道’를 가리킨다.
*澤 ... 은택.
좌망坐忘
38. 안회顔回가 말했다.
“저는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슨 말인가?”
안회가 대답했다.
“저는 인의仁義를 잊어버렸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않네.”
얼마 뒤, 안회가 공자를 다시 뵙고 말했다.
“저는 좀 나아진 것 같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슨 말인가?”
안회가 대답했다.
“저는 좌망坐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공자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좌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안회가 대답했다.
“손발이나 몸뚱이도 무너뜨리고, 총명도 물리치고, 몸뚱이를 떠나고 앎을 없애고, 그러면 도道와 크게 통하여 하나가 됩니다. 이것을 일러 ‘좌망坐忘’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같아졌다면 좋을 게 없네. 변화에 순응해야 당연한 이치에 구속되지 않지. 자네는 과연 현인賢人일세. 나도 자네 뒤를 따르게 해 주게.”
顏回曰:「回益矣。」仲尼曰:「何謂也?」曰:「回忘仁義矣。」曰:「可矣,猶未也。」他日復見,曰:「回益矣。」曰:「何謂也?」曰:「回忘禮樂矣。」曰:「可矣,猶未也。」他日復見,曰:「回益矣。」曰:「何謂也?」曰:「回坐忘矣。」仲尼蹴然曰:「何謂坐忘?」顏回曰:「墮肢體,黜聰明,離形去知,同於大通,此謂坐忘。」仲尼曰:「同則無好也,化則無常也。而果其賢乎!丘也請從而後也。」
*益 ... 늘다, 진보하다.
*坐忘 ... 고요한 마음으로 단정하게 앉아 物과 我를 모두 잊음.
*蹴然 ... 깜짝 놀라 불안한 모습.
*墮 ... 무너뜨리다.
*黜 ... 물리치다, 없애다.
*去 ... 버리다.
*無常 ... 당연한 이치에 구속되지 않다.
운명일 따름이지
39. 자여子輿와 자상子桑이 좋은 벗이다. 열흘이나 장맛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자여가 말했다.
“자상이 곤궁하여 의욕을 잃었을지도 몰라.”
자여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그에게 먹이려고 찾아갔다. 자상의 문앞에 이르렀는데,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는 듯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이실까, 아니면 어머님이실까. 하늘이실까, 아니면 사람들일까.”
겨우 나오는 목소리지만 속마음을 막지 못한 듯 급히 노랫말을 내놓았다. 자여는 안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물었다.
“자네 노랫말이 어찌 이와 같은가?”
자상이 대답했다.
“나는 나를 이처럼 곤궁에 빠뜨린 이를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찾지 못했네. 부모가 어찌 내가 이토록 가난하길 바랐겠는가? 하늘이 사사로이 모두를 덮어줌이 없고, 땅이 사사로이 모두를 실어줌이 없으니, 하늘과 땅이 어찌 사사로이 나만을 가난하게 하였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네. 그런데도 이토록 대단한 곤궁에 이르렀으니, 운명일 따름이지!”
子輿與子桑友,而霖雨十日。子輿曰:「子桑殆病矣!」裹飯而往食之。至子桑之門,則若歌若哭,鼓琴曰:「父邪母邪!天乎人乎!」有不任其聲,而趨舉其詩焉。子輿入,曰:「子之歌詩,何故若是?」曰:「吾思乎使我至此極者而弗得也。父母豈欲吾貧哉?天無私覆,地無私載,天地豈私貧我哉?求其為之者而不得也。然而至此極者,命也夫!」
*霖 ... 사흘 이상 내리는 비. 그러니까 ‘霖雨’는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비가 내리다.
*殆 ... 대개, 대체로, 아마~일 것이다.
*病 ... 곤궁하여 매우 초라하게 되다.
*裹飯 ... 도시락을 싸다.
*食之 ... 그에게 먹이다. ‘食’ > 먹이다 사.
*鼓琴 ... 거문고를 타다.
*任 ... ‘堪’
*不任其聲 ... 목소리는 쇠미하여 가라앉았지만, 속마음 표현을 금할 수 없다.
*趨 ... 다급하다, 촉박하다, 빠르다.
*趨擧其詩 ... 급히 노랫말을 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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