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응제왕應帝王
‘응제왕應帝王’은 <장자莊子> 내편 가운데 마지막 편이다. 이 편에서 장자는 자신의 정치에 대한 사상을 표현했다. 장자의 우주 만물에 대한 인식은 ‘도道’에 바탕을 두었다. 그는 온 우주 만물은 하나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분별할 수도,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하였으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도 자연에서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인위적인 요소는 모두 외재적이고 부가적이라고 보았다. 이러했기에, 장자의 정치적 주장은 바로 ‘불치위치 不治爲治’요 ‘무위이치無爲而治’였다. 이 둘은 이 편의 핵심이다. 어떤 사람이 ‘마땅히’ ‘제왕帝王’이 되어야 하는가? 당연히 자연에 맡길 수 있는 사람, 백성의 마음에 순응하는 사람, 그리고 ‘불언지교不言之敎’를 행하는 사람이다.
전문은 대체로 일곱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而未始入于非人’까지이다. 포의자蒲衣子의 입을 빌려 이상적인 위정자는 ‘사람이 하는 바’에 따를 뿐이지 물아物我를 양분하는 곤경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번째 부분은 ‘而曾二蟲之無知!’까지이다. 갖가지 행위의 규범을 만드는 일은 일종의 기만이며, 위정자는 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며, 만약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을 강요한다면 이는 ‘바다를 맨발로 건너 강을 파라’거나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세 번째 부분은 ‘而天下治矣’까지이다.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위지치無爲之治’를 힘써 제창한다. 즉 ‘사물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순응하며 개인적인 사심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네 번째 부분은 ‘而游于無有者也’까지이다. 이 부분에서는 이른바 ‘명왕明王’의 치治를 제기한다. 즉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만드는, 이른바 ‘사물자희使物自喜’와 만물을 교화하고 은혜를 베푸는, 이른바 ‘화대만물化貸萬物’의 ‘무위지치無爲之治’를 제창한다.
다섯 번째 부분은 ‘一以是終’까지이다. 영험한 무당이 도道를 터득한 호자壺子의 관상을 본 고사를 통하여 오로지 ‘허虛’하지만 ‘감춤藏’이 있어야 다른 이에게 짚이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위정자도 자신을 비우고 순응해야 함을 은근히 보여준다.
여섯 번째 부분은 ‘故能胜物而不伤’까지이다. 정치는 맑고 깨끗해야 함을 강조한다. 거울처럼 맑고 깨끗해야 오는 자는 비춰보고 가는 자는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것이라도 이겨내면서도’, 또 ‘상처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부분은 그 나머지가 된다. 혼돈이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본래의 참모습을 잃으며 죽어가는 이야기를 서술한다. 유위有爲의 정치가 주는 재앙이 무궁함을 우의적으로 나타낸다.
전문에 걸친 일곱 개의 이야기를 통하여, 장자는 ‘무위이치無爲而治’라는 정치적 주장을 기탁한다.
순舜 임금과 태씨泰氏
1. 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네 번 물었지만 네 번 다 모른다고 했다. 설결은 뛰듯이 기뻐하며 포의자蒲衣子를 찾아가서 이를 알렸다.
포의자가 말했다.
“자네는 이제야 그것을 알았는가? 순舜 임금은 복희伏羲 씨보다 못하네. 순 임금은 인仁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했기에 사람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아직 인위적인 물아物我 양분의 곤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복희 씨는 잠잘 때 편안하고 느긋하고, 깨어 있을 때는 여유가 있고 차분하여, 때로는 자기가 말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자기가 소가 되기도 했다. 그의 앎은 실로 믿음직스러웠으며, 그 덕德은 자못 진실했다. 게다가 일찍이 물아 양분의 곤경에 빠진 적이 없었다.”
齧缺問於王倪,四問而四不知。齧缺因躍而大喜,行以告蒲衣子。蒲衣子曰:「而乃今知之乎?有虞氏不及泰氏。有虞氏,其猶藏仁以要人,亦得人矣,而未始出於非人。泰氏,其臥徐徐,其覺于于,一以己為馬,一以己為牛,其知情信,其德甚真,而未始入於非人。」
*齧缺, 王倪 ... 인명.
*蒲衣子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옛적 賢人.
*有虞氏 ... 순 임금.
*泰氏 ... 복희 씨.
*非人 ... 자못 난해한 구절로 알려짐. ‘남을 비난하는 자리’라고 푸는 이도 있고, ‘인간을 넘 어선 경지’라고 푸는 이도 있다.
‘入于非人’을 외물과 자아가 구분되는 경지에 이르다로 풀이할 수 있다.
*徐徐 ...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
*于于 ... 여유가 있고 느긋한 모습.
*一 ... 혹은, 때로는.
*情 ... 진실로, 실재로.
2. 견오見吾가 미친 사람 접여接輿를 만났는데, 접여가 이렇게 물었다.
“예전에 중시中始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던가?”
견오가 대답했다.
“사람을 다스리는 이가 자기의 의지로 법도를 행하기만 하면, 어느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변화하지 않을 것인가, 라고 제게 일렀습니다.”
접여가 말했다.
“그건 거짓으로 속이는 덕德이다. 그렇게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걸어서 바다로 들어가서 강을 파고,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 성인의 다스림이 어디 밖을 다스리는 것이겠는가? 자신을 바르게 한 뒤에 교화를 행하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바를 확인할 따름이다. 새는 높이 날아야만 화살의 해를 피하고, 생쥐는 신단神壇 아래 굴속에 깊이 숨어야만 구멍에 피운 연기에,또는 파헤쳐져 잡힐 우환을 벗어난다. 자네는 결국 이 두 가지 동물이 본능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는 모습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肩吾見狂接輿。狂接輿曰:「日中始何以語女?」肩吾曰:「告我:君人者,以己出經式義度,人孰敢不聽而化諸!」狂接輿曰:「是欺德也。其於治天下也,猶涉海鑿河,而使蚉負山也。夫聖人之治也,治外乎?正而後行,確乎能其事者而已矣。且鳥高飛以避矰弋之害,鼷鼠深穴乎神丘之下,以避熏鑿之患,而曾二蟲之無知!」
*見吾 ... 인명.
*接輿 ... 楚 나라의 隱士 陸通의 字.
*日中始 .... 장자가 가탁한 우언 인물로서 견오의 스승. 일설에는 ‘日’은 시간을 나타내는 낱 말로서 ‘지난 날’의 의미가 있고, ‘中始’가 견오의 스승이라고 함.
*化諸 ... 이에 따라 변화하다.
*欺德 ... 속임수의 방법,
*正 ... 본성에 순응함을 가리킴.
*行 ... 교화를 널리 펼치다.
*曾 ... 결국, 마침내.
3. 천근天根이 은산殷山의 남쪽에서 한가로이 노닐다가 요수蓼水 가로 왔다. 마침 무명인無名人을 만나 이렇게 가르침을 청했다.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가르침을 바랍니다.”
무명인이 대답했다.
“물렀거라! 식견이 얕은 사람. 어찌 그런 물음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가! 나는 이제 조물자와 벗하려 하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저 까마득히 높이 나는 새를 타고 육극六極 밖으로 나가 ‘아무것도 없는 곳’[無何有之鄕]에서 노닐고, ‘넓고 먼 들’[壙埌之野]에서 살려고 하네. 자네는 어찌 느닷없이 천하를 다스리는 일로 내 마음을 건드리는가?”
천근이 다시 묻자, 무명인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마음을 담박한 세계에서 노닐게 하고, 기氣를 적막한 곳에 합하게. 모든 일을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사심을 들이지 않으면, 천하는 잘 다스려질 것이네.”
天根遊於殷陽,至蓼水之上,適遭無名人而問焉,曰:「請問為天下。」無名人曰:「去!汝鄙人也,何問之不豫也!予方將與造物者為人,厭則又乘夫莽眇之鳥,以出六極之外,而遊無何有之鄉,以處壙埌之野。汝又何帠以治天下感予之心為?」又復問。無名人曰:「汝遊心於淡,合氣於漠,順物自然,而無容私焉,而天下治矣。」
*天根 ... 허구의 인물.
*殷 ... 산 이름. ‘殷陽’은 은산의 남쪽.
*蓼水 ... 강 이름.
*遭 ... 만나다,
*無名人 ... 꾸며낸 인물.
*爲 ... 여기서는 ‘다스리다’는 뜻임.
*去 ... 떠나다, 물러나다. 꾸짖는 뜻이 있음.
*豫 ... 즐겁다, 유쾌하다.
*人 ... 짝.
*爲人 ... 짝이 되다, 반려자가 되다.
*莽眇之鳥 ...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은 모양의 청허한 기운.
*無何有之鄕 ...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
*壙埌 ... 끝없이 넓은 모습.
*帠 ... 잠꼬대. 무명인은 천근이 묻는 말이 잠꼬대 같다고 생각했다.
*淡 ... 자연에 따르되 본성을 유지하는 꾸밈없는 심경.
*漠 ... 적막한 곳에 처하다.
4. 양자거陽子居가 노담老聃을 뵙고 말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다 강건하고 유능하며 결단력이 있고,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 정확하고 이해도 투철합니다. 그러면서도 도道를 배우는 데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가히 ‘명철한 왕’[明王]에 견줄 만합니까?”
노담이 대답했다.
“성인과 견준다면, 이런 이는 재지才智가 있어 남에게 부림을 받을 만한 관리로서 기능에 얽매여 몸은 수고롭게 하고 마음은 졸일 사람에 불과하네. 더구나 호랑이나 표범은 무늬 때문에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원숭이는 민첩함 때문에, 개는 사냥감 낚아채는 데 빠르고 맹렬하기 때문에 밧줄의 속박을 자초하네. 이와 같은 자를 ‘명철한 왕’에 견줄 수 있겠는가?”
양자거가 당황하여 얼굴빛을 바꾸며 다시 물었다.
“명철한 왕의 다스림은 어떠한지 감히 여쭙고 싶습니다.”
노담이 대답했다.
“명철한 왕의 다스림이란, 그가 세운 공적이 천하를 덮어도 자신이 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교화하는 힘이 만물에 미쳐도 백성들은 그에게 기대려고 하지 않고, 일을 해도 그 이름을 들먹이지 않으니, 만사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함이네. 이런 사람은 헤아릴 길 없는 신묘한 경지에 서서 없음의 세계에서 노닌다네.”
陽子居見老聃曰:「有人於此,嚮疾強梁,物徹疏明,學道不倦。如是者,可比明王乎?」老聃曰:「是於聖人也,勞形怵心者也。且也虎豹之文來田,猿狙之便、執嫠之狗來藉。如是者,可比明王乎?」陽子居蹴然曰:「敢問明王之治。」老聃曰:「明王之治,功蓋天下而似不自己,化貸萬物而民弗恃,有莫舉名,使物自喜,立乎不測,而遊於無有者也。」
*陽子居 ... 전국시대 철학자 陽朱.
*嚮 ... ‘響 ’, 메아리, 반응. ‘嚮疾’은 메아리처럼 신속하고 민첩함을 뜻함.
*强梁 ... 실행력과 결단력이 있다.
*徹 ... 통찰력이 있다.
*胥 ... ‘諝’, 슬기, 지혜. 여기서는 일정한 才智를 갖춘 말단 관리.
*易 ... 고치다, 바로잡다. 여기서는 직무를 맡아 일을 처리하다.
*勞形 ... 몸을 힘들게 하다.
*怵心 ... 마음에 두렵다. 마음을 조리다.
*文 ... 紋. 무늬.
*田 ... 사냥하다.
*蹴然 ... 당황하고 불안하여 얼굴빛을 바꾸는 모양.
*自己 ... 자기에게서 나오다.
*化 ... 교화하다.
*貸 ... 미치다.
*擧 ... 말하다, 칭찬하다.
무당 계함季咸과 열자列子와 그의 스승 호자壺子
5. 정鄭 나라에 계함季咸이라는 용한 무당이 있었다. 그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살아 남고 죽게 되는 것, 화나 복을 받는 것, 그리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 따위를 다 알았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까지 알아맞히는 것이 바로 귀신 같았다. 정 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가진 것 모두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러나 열자列子는 계함을 만나 보고 심취하여, 돌아와서 호자壺子에게 이렇게 아뢨다.
“제가 처음에는 선생님의 도道가 지극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보다 더 지극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내가 네게 껍데기만 주고 알맹이는 주지 않았는데, 너는 도道를 터득했다고 생각했느냐? 암컷이 여럿이라도 수컷이 없으면 어떻게 수정된 알을 낳을 수 있겠느냐? 네가 껍데기뿐인 도道로써 세상과 맞서며 다른 이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더냐? 그러니 그런 사람이 너의 관상을 보게 되었지. 그 무당을 한번 데리고 와서 내게 보이도록 하여라.”
鄭有神巫曰季咸,知人之生死存亡,禍福壽夭,期以歲月旬日,若神。鄭人見之,皆棄而走。列子見之而心醉,歸以告壺子,曰:「始吾以夫子之道為至矣,則又有至焉者矣。」壺子曰:「吾與汝既其文,未既其實,而固得道與?」眾雌而無雄,而又奚卵焉!而以道與世亢必信,夫故使人得而相女。嘗試與來,以予示之。」
*巫 ...점치고 관상보는 사람.
*列子 ... 鄭 나라 사람 列禦寇.
*壺子 ... 전설 속의 인물, 열자의 스승이었다고 함.
*卵 ... 알을 낳다.>동사로 쓰였다.
6. 이튿날, 열자가 무당과 함께 호자를 뵀다. 무당이 문밖으로 나와서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당신 스승이 곧 세상을 떠나겠소, 살 수가 없소, 열흘을 못 넘기겠소! 내가 당신 스승 몸에 이상한 것이 붙은 것을 보았소, 바로 젖은 재의 모습이오.”
열자가 방을 들어가서 옷깃에 눈물을 적시며 호자에게 방금 들은 말을 아뢨다.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내가 땅의 모습을 그에게 보였네. 흔들리지도 멈추지도 않는 싹의 모습이지. 그는 나에게서 지극한 덕德의 생기가 막히는 것을 보았겠지. 또 한번 데리고 와 봐라.”
明日,列子與之見壺子。出而謂列子曰:「嘻!子之先生死矣,弗活矣,不以旬數矣!吾見怪焉,見溼灰焉。」列子入,泣涕沾襟,以告壺子。壺子曰:「鄉吾示之以地文,萌乎不震不正。是殆見吾杜德機也。嘗又與來。」
*旬 ... 열흘.
*濕灰 ... 젖은 재. 다시는 불씨를 살릴 수 없는 재> 틀림없이 죽을 것임을 비유함.
*鄕 ... 지난 때, 아까.
*地文 ... 대지 상의 무늬.
*杜 ... 막다, 막히다, 닫다, 닫히다.
*德機 ... 지극한 덕이 갖춘 생기.
7. 이튿날, 열자가 또 무당 계함과 함께 호자를 뵀다. 문밖으로 나온 무당이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오! 당신 스승이 나를 만나 병을 고쳤소. 아주 생기가 넘치고 있소. 내가 막혔던 생기가 뚫리는 걸 보았소.”
열자가 안으로 들어가서 이 말을 호자에게 아뢨다.
호자가 말했다.
“방금 내가 하늘과 땅의 모양을 그에게 보였네. 명성과 실리가 마음속에 들어설 틈이 없고, 생기가 발뒤꿈치에서 발생하는 것. 그는 내가 좋아지는 기운을 분명 보았을 것이다. 또 한번 데리고 와 봐라.”
明日,又與之見壺子。出而謂列子曰:「幸矣!子之先生遇我也。有瘳矣,全然有生矣。吾見其杜權矣。」列子入,以告壺子。壺子曰:「鄉吾示之以天壤,名實不入,而機發於踵。是殆見吾善者機也。嘗又與來。」
*瘳 ... 병이 낫다.
*生 ... 생기. 여기서는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임을 가리킨다.
*權 ... 기운. ‘杜權’은 막힌 생기가 활동을 한다는 뜻이 있음.
*天壤 ... 天地>여기서는 하늘과 땅처럼 서로 감응한다는 뜻이 있음.
*名實 ... 명성과 실리
*踵 ... 발꿈치.
*者 ... ‘之’, ‘善者機’는 한가닥 삶의 희망.
8. 이튿날, 열자는 다시 무당 계함과 함께 호자를 뵀다. 문밖으로 나온 무당이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스승은 일정하지 않은지라 내가 관상을 볼 수가 없소. 일정해지거든 다시 보기로 하겠소.”
열자가 안으로 들어가서 이 말을 호자에게 아뢨다.
호자가 말했다.
“방금 내가 더할 수 없을 만큼 ‘큰 빔’[太虛]을 그에게 보였네. 그는 내게서 균형 잡힌 생기生氣를 보았겠지. 고래가 배회하듯이 물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들어도 못[淵]이고, 고요한 물이 휘돌며 모여들어도 못이 되고, 흐르는 물이 휘돌아 모여들어도 못이 되네. 못에는 아홉 가지가 있지만, 이들은 이 가운데 셋을 차지하지. 또 한번 데리고 와 봐라.”
明日,又與之見壺子。出而謂列子曰:「子之先生不齊,吾無得而相焉。試齊,且復相之。」列子入,以告壺子。壺子曰:「吾鄉示之以太沖莫勝。是殆見吾衡氣機也。鯢桓之審為淵,止水之審為淵,流水之審為淵。淵有九名,此處三焉。嘗又與來。」
*齊 ... 고르다, 일정하다. ‘齋’로 봐야 한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不齊’는 ‘재계함이 없다’ 로 옮길 수 있겠다.
*太冲 ... 太虛.
*太冲莫勝 ... 虛心하고 고요하여 움직임과 고요함의 구별이 없으며, 음양의 기운이 균형을 이룰 뿐만 아니라 조화를 이룸.
*鯢 ... 고래. 여기서는 큰 물고기를 헐하게 이르는말로 쓰임.
*桓 ... 머물다, 배회하다.
*審 ... 물이 돌아 흘러 모이는 곳. ‘瀋’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음. 이 경우 ‘물 이 깊다’는 의미로 해석함.
*此處三焉 ... 여기서 말한 ‘淵’의 세 가지 모습. 이른 바 세 종류의 ‘淵’은 앞서 제기한 ‘杜德 機’, ‘善者機’, ‘衡氣機’의 세 가지 풍모를 비유한다. ‘三’은 ‘九’에 비하면 작은 수 이다. 따라서 ‘道’는 심오하여 헤아릴 길 없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무당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피상적인 모습일 뿐이다.
9. 이튿날, 열자는 다시 무당 계함과 함께 호자를 뵀다. 무당은 채 자리에 서기도 전에 혼이 빠져 달아나 버렸다. 호자가 말했다.
“잡아 오너라!”
열자가 따라갔지만 잡지 못하고 돌아와서 호자에게 이렇게 아뢨다.
“벌써 사라졌습니다, 그만 놓쳤습니다.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근원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네. 나는 그 근원 가운데에서 나를 비우고 사물의 변화에 순응했지.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순순히 따르고 물결 따라 흘렀지. 그래서 달아난 것이지.”
明日,又與之見壺子。立未定,自失而走。壺子曰:「追之!」列子追之不及,反以報壺子,曰:「已滅矣,已失矣,吾弗及也。」壺子曰:「鄉吾示之以未始出吾宗。吾與之虛而委蛇,不知其誰何,因以為弟靡,因以為波流,故逃也。」
*自失 ... 자제할 수 없다.
*滅 ... 사라지다, 자취를 감추다.
*宗 ... 근원, 근본.
*波流 ... 물결따라 흘러가다.
10. 그 뒤, 열자는 자신이 배움을 시작하지도 못 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서 세 해 동안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내를 위해 밥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받들 듯이 하였다. 세상일을 함에 사적인 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깎고 다듬기를 버리고 원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갔다. 흙덩이처럼 홀로 그 형체만으로 서서,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원래의 모습을 지켰다. 이렇게 한결같이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然後列子自以為未始學而歸,三年不出。為其妻爨,食豕如食人。於事無與親,彫琢復朴,塊然獨以其形立。紛而封哉,一以是終。
*未始學 ... 이제껏 배움을 시작하지 못 하다.
*爨 ... 불 때다, 밥을 짓다.
*食 ... 먹이다. 먹여 기르다.
*無與親 ... 친소의 구별이 없다. 사적인 정에 치우침이 없다.
*紛 ... 세간의 번거로움, 혼란스러움.
*封 ... 지키다.>원래의 모습을 지키다.
*一 ... 한결같이.
거울 같은 마음
11. 명예의 주인공이 되지 말고, 모략으로 획책하는 장소가 되지 말고, 세상일 나서서 떠맡지 말고, 지식의 주인이 되지 말라. 무궁한 도道를 체득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경지에서 노닐어라. 하늘에서 받은 바를 다하고, 터득한 바를 드러내지 말라. 역시 ‘비움’[虛]뿐이니라. 지인至人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은지라, 보내지도 않고 맞아들이지도 않으며, 응하기는 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느니라. 그러기에 어떤 것도 이겨내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느니라.
無為名尸,無為謀府,無為事任,無為知主。體盡無窮,而遊無朕,盡其所受於天,而無見得,亦虛而已。至人之用心若鏡,不將不迎,應而不藏,故能勝物而不傷。
*名 ... 명예.
*尸 ... 주인, 주인공.
*謀府 ... 모략을 내고 획책하는 곳.
*任 ... 부담.
*體 ... 체험하다, 이해하다, 체득하다.
*朕 ... 흔적. >‘無朕’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다.
*見 ... 드러내다.
*虛 ... 마음이 깨끗하고 담백하여 자신마저 잊은 상태.
*將 ... 보내다.
*勝物 ... 사물을 이기다, 어떤 것이라도 이기다.
혼돈에 일곱 구멍
12. 남쪽 바다의 제왕은 숙儵이라 하고, 북쪽 바다의 제왕은 홀忽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은 혼돈混沌이라 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서로 함께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이들은 참으로 잘 대접했다. 숙과 홀이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법을 의논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유독 혼돈에게는 이런 구멍이 없으니, 뚫어 줍시다.”
하루에 구멍 하나씩을 뚫어 주었는데, 이레가 되는 날, 혼돈은 죽고 말았다.
南海之帝為儵,北海之帝為忽,中央之帝為渾沌。儵與忽時相與遇於渾沌之地,渾沌待之甚善。儵與忽謀報渾沌之德,曰:「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此獨無有,嘗試鑿之。」日鑿一竅,七日而渾沌死。
*儵, 忽, 混沌 ... 모두 지어낸 허구의 인물. 하지만 글자는 비유나 풍자의 뜻을 담고 있다.
‘儵’과 ‘忽’은 매우 서두르는 모양, 매우 바쁜 모습을, ‘混沌’은 한데 모여 분 리될 수 없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앞쪽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뒤쪽 은 자연적인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儵’과 ‘忽’은 ‘有爲’, ‘混沌’은 ‘無 爲’를 비유한다 하겠다.
*七竅 ... 눈 둘, 귀 둘, 콧구멍 둘, 그리고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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