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 실상實像과 허상虛像
요堯 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넘겨주어 맡기려고 이렇게 말했다.
“해와 달이 떠올랐는데, 자그마한 횃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타고 있으니, 이걸 햇빛이나 달빛에 견주면 정말 헛된 일 아니겠습니까? 때맞추어 비가 내렸는데, 아직도 쉬지 않고 물을 대고 있으니, 온 땅이 받은 혜택으로 본다면 정말 부질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선생께서 임금의 자리에 앉으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텐데, 내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나는 정말 부족하오니, 바라옵건대 부디 천하를 맡아주십시오.”
허유가 대답했다.
“그대는 이미 천하를 잘 다스리고 있소. 그런데 내가 그대를 대신하다니, 임금이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란 말이오? ‘명성[名]’이란 ‘실질[實]’의 ‘손[賓]’에 불과한데, 나더러 그런 ‘손’이 되란 말이오? 굴뚝새가 숲속에 둥지를 짓는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큰 강에 이르러 물을 마셔도 제 배 하나 채우면 그만이오. 그대는 돌아가 쉬시오. 내게 천하란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게 없소. 요리사가 음식 잘못 만든다고 제사를 주관하는 이가 술단지와 고기 담은 그릇 들고 대신할 수야 없지 않소.”
堯讓天下於許由,曰:「日月出矣,而爝火不息,其於光也,不亦難乎!時雨降矣,而猶浸灌,其於澤也,不亦勞乎!夫子立而天下治,而我猶尸之,吾自視缺然,請致天下。」許由曰:「子治天下,天下既已治也。而我猶代子,吾將為名乎?名者,實之賓也,吾將為賓乎?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偃鼠飲河,不過滿腹。歸休乎君!予無所用天下為。庖人雖不治庖,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기원전 318년, 전국시대 칠웅 가운데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연燕의 도성 계薊(지금의 중국 수도 베이징)의 궁궐에서 연왕 쾌噲가 자신의 자리를 재상 자지子之에게 넘겨주겠노라 선언했습니다. 자지의 심복 녹모수鹿毛壽 등이 연왕 쾌에게 이렇게 부추겼던 것입니다.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이 지금껏 성현으로 존경받는 까닭은 바로 현명하고 능력 있는 신하를 가려 뽑아서 선양禪讓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자기 자식에게 천하를 물려주었더라면 성현으로 존경받지 못했을 게 분명합니다.”
녹모수 곁에 있던 또 다른 심복이 여기에 다시 부채를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연은 만승의 나라로 임금께서는 주변의 모범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제 임금의 자리를 어질고 덕이 넘치는 이에게 양위한다면 요순처럼 먼 훗날까지 성인으로 우러름을 받으며 칭송될 것입니다.”
연왕 쾌도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몇몇 신하들의 진언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선양할 것인가, 고심 끝에 자신의 충직한 재상 자기에게 양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주변에서 거의 모두 자지를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인간 본성의 약점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 커다란 욕망을 떨쳐 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연왕 쾌는 헛된 욕망을 버리기로 마음먹습니다. 참으로 보기 좋은 풍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칠 수 없는 진실을 읽어야 합니다. 연왕 쾌는 권력에 대한 헛된 욕망을 버리면서 또 다른 욕망으로 자신을 채우려고 작정합니다. 바로 요순처럼 성현으로 칭송받으려는 허영심이 그것입니다. 허명으로 허명을 사려는 허영심이 실상을 버리고 허상을 좇게 만듭니다. 결국 연왕 쾌는 호인好人이긴 하지만 호왕好王은 아니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습니다.
장자가「소요유」에 데려온, 요 임금이 허유에게 선양하려는 이 이야기는 하마 오래전부터 중국 땅에 널리 알려지며 내려온 전설입니다. 이를 장자는「소요유」에 하나의 문단으로 배치합니다. 그런데 이 문단에서 몇 개의 문장 가운데, 허유가 애써 힘주어 강조한 구절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성[名]’이란 ‘실질[實]’의 ‘손[賓]’에 불과한데, 나더러 그런 ‘손’이 되란 말이오?’, 이것입니다. ‘명성’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실상’의 ‘손’일 뿐이다는 말이지요.
연보를 놓고 보면, 장자와 연왕 쾌는 생존 기간이 상당 부분 겹칩니다. 연왕 쾌가 임금의 자리에 올랐을 때, 장자는 사십 대 후반입니다. 그리고 연왕 쾌가 임금의 자리를 선양하며 나라를 한창 혼란에 때, 장자는 오십 대 초반이 됩니다. 때는 장자가「소요유」를 집필했을 가능성이 높은 시기입니다. 때는 장자의 사상이 무게를 더하며 그 깊이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을 시기입니다.
연의 도성 계薊에서 장자의 고향 몽읍蒙邑까지는 육백 킬로미터쯤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천 몇 백 년 전이라고 하지만, 장자는 칠웅 가운데 하나인 연에서 일어나는 이런 큰 사건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무기無己’나 ‘무명無名’해야 절대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장자는 욕망으로써 욕망하려는 연왕 쾌를 보며 요 임금과 허유의 이야기를 “그대는 이미 천하를 잘 다스리고 있소. 그런데 내가 그대를 대신하다니, 임금이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란 말이오? ‘명성[名]’이란 ‘실질[實]’의 ‘손[賓]’에 불과한데, 나더러 그런 ‘손’이 되란 말이오? 굴뚝새가 숲속에 둥지를 짓는다 해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두더지가 큰 강에 이르러 물을 마셔도 제 배 하나 채우면 그만이오. 그대는 돌아가 쉬시오. 내게 천하란 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게 없소. 요리사가 음식 잘못 만든다고 제사를 주관하는 이가 술단지와 고기 담은 그릇 들고 대신할 수야 없지 않소.”, 이렇게 일갈합니다. 장자의 눈에는 욕망으로 또 다른 욕망을 이루려는 연왕을 ‘남녘 바다’, 곧 ‘천지天池’로 향하는 붕을 비웃는 매미나 산비둘기와 같은 졸보로 보았을 것입니다.
요 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넘겨주려는 이 우화에서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 철학 사상을 짚을 수 있습니다.
먼저 개인의 생명과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 무게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요 임금이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요 임금은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는 생명과 자유를 유지하고 누리는 데 걸림돌임을 깨닫습니다.
또 천하에 자유로운 질서를 이루는 데 명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무명無名으로 참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 임금은 선양의 방식으로 이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우화는 공명功名을 멀리하라고 이릅니다. 지극히 소박한 생활을 할지언정 헛된 명성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와 평온을 버리지 않으려는 허유의 태도가 이를 웅변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우화는 도가道家의 ‘무위지치無爲之治’ 사상을 은연 중 내포하고 있습니다. 요 임금은 선양을 통하여 간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의 도를 강구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장자』「소요유」에서 비롯된 ‘명성[名]’이란 ‘실질[實]’의 ‘손[賓]’, 이를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고대 철학의 중요한 명제로 제기됩니다. ‘명名’은 ‘명성’이나 ‘명예’를 가리킵니다. ‘실實’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실체를 가리킵니다. ‘빈賓’은 실제에서 파생된 종속물을 말합니다. 결국 명성이나 명예 따위의 허상을 지나치게 붙좇다가는 실질적인 내용, 곧 본질을 잃으며 실상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요와 허유의 대화는 나중에 또 다른 버전으로 발전됩니다. 허유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세상을 피해 은거하며 밭 일궈 농사지어 살아갔다는 소부巢父까지 등장합니다. 허유가 요 임금의 선양 제의에 쓸데없는 소리 들었다며 영천潁川 흐르는 내에 귀를 씻자, 아래쪽에서 소 몰고 지나던 소부가 더러워진 물이라며 소에게 물을 먹이지 않았다는 데까지 발전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중국 옛적부터 노래로 불리며 전해오던 민요『격양가擊壤歌』까지 이 이야기와 연결하여 엮습니다. 장자가 세상을 떠난 지 일천 년도 좀 지나 성당의 시인 이백은『산인권주山人勸酒』에서 “잔을 들어 소부와 허유에게 술을 따르노라.”고 노래합니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꼬리를 좇다보면 나도 모르게 깊은 재미에 빠집니다.
이제 중국 옛적 민요『격양가擊壤歌』를 여기에 데려옵니다. 함께 감상하며 요 임금과 허유, 여기에 더하여 소부까지 머릿속에 떠올리며 잠시 행복에 잠기시기 바랍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돌아와 쉬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먹을 것 얻네.
이런 날들 이렇게 편안한데, 임금의 권력 무에 선망하랴!
사람들은 이 민요에서 ‘제력帝力’을 ‘요 임금의 권력’이라고 애써 끌어 붙입니다. 상상은 끝이 없습니다. 끝없는 상상의 힘은 우리를 전혀 엉뚱한 데로 이끌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행복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몇 천 년 전도 가까운 오늘이고 몇 천 년 뒤도 먼 미래가 아닌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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