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재물에 눈먼 사나이 석숭石崇의 끝장

촛불횃불 2021. 10. 4. 13:00

 석숭石崇의 자는 계륜季倫으로 청주靑州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제노齊奴였다. 어려서부터 기민하고 총명했으며 담력에다 지혜까지 갖추었다. 그 아비 석포石苞가 죽을 때가 되어 재산을 나누어 여러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오직 석숭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곁에 있던 석숭의 어미가 불평을 하자 아비인 석포는 이렇게 일렀다.

“이 아이가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없지만 뒷날 제 힘으로 뜻을 이룰 거외다.”

 

崇字季倫, 生于靑州, 故小名齊奴, 少敏惠, 勇而有謀. 苞臨終, 分財物與諸子, 獨不及崇. 其母以爲言, 苞曰 : “此兒雖小, 後自能得.                                                                                              <진서晉書> '열전3列傳三'

 

진서晉書

 

화려했던 옛 일은 향이 남긴 재 따라 사라지고,

흐르는 물은 무정해도 풀은 절로 봄일세.

해질녘 봄바람에 새소리 애처롭게 들리는데,

흩날리는 꽃잎은 누대에서 몸을 날린 여인인 듯.

 

繁華事散逐香塵,

流水無情草自春.

日暮東風怨啼鳥,

洛花猶似墜樓人.

 

 당나라 때 시인 두목杜牧이 <금곡원金谷園>이란 제목으로 노래한 이 시 속에 등장하는 여인이 서진西晉의 대부호 석숭石崇의 몸종 녹주綠珠이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이 있어 그녀는 높은 누각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을까? 이야기는 당시 큰 부자였던 석숭부터 시작해야 한다.

 

석숭의 모습

 석숭의 아버지 석포石苞는 서진 개국에 큰 공을 세우며 사도 벼슬을 받은 높은 벼슬아치였다. 그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석숭은 여섯째였다. 석포는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재산을 여러 아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지만 유독 석숭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니, 여섯째도 줘야지요!”

 깜짝 놀란 부인의 채근에 죽음을 눈앞에 둔 석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 녀석은 나중에 크게 이룰 터이니 부인은 걱정 마시오.”

 어린 석숭의 어떤 모습이 아비로 하여금 앞날을 예측하게 만들었는지 역사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의 극에 달한 부패와 사치가 영원토록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가만히 추측해 본다.

 그 뒤, 석숭이 관계에 나아가 차지한 벼슬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이 형주 지방의 자사刺史이다. 이곳의 행정과 군사를 관장하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그는 어느 왕조에서나 부패한 관리가 다 그러했듯이 백성의 부모 역할에 충실해야 할 관리로서의 태도를 아예 버리고 오히려 강도나 다름없는 행각을 벌였다. 당시 그가 형주자사로 있을 때, ‘외국 사신이나 상인을 습격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진서晉書> '석숭전石崇傳'은 기록하고 있다.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그 높이도 깊이도 헤아릴 길 없고 그 넓이도 길이도 재어서 가늠할 수 없는 게 바로 인간의 탐욕이다. 그런데 탐욕은 언제나 밖으로부터 샘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넘볼 수 없을 만큼 큰 키를 가진 이를 난쟁이는 아예 쳐다볼 생각도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키를 가진 이는 그렇지 않다. 다리를 걸어 기어코 넘어뜨려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이 기를 쓰고 악을 쓰며 재산을 가지고 겨룬다. 최고 부자가 된 석숭을 아니꼽게 여기며 싸움을 건 이는 당시 황제 진무제의 외삼촌이었던 왕개王愷였다.

 

진무제 사마염司馬炎의 모습

 부패와 사치에 푹 빠졌던 당시 귀족들은 산호수를 장만하여 집안에 두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던 모양이다. 누가 더 크고 더 멋진 산호수를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부의 키를 겨루는 잣대의 하나였다. 왕개는 자기 집으로 초대한 석숭의 눈앞에 두 자 남짓한 산호수를 내놓았다.

 “황제께서 내게 내린 산호수요. 자, 어떻소? 볼만하지 않소?”

 함께 초대받은 고관대작들이 깜짝 놀라며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석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지고 있던 철여의鐵如意를 들더니 그대로 산호수를 향해 내려쳤다. 황제가 내린 산호수는 산산조각이 났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서 이보다 큰 산호수 열 개만 가져오너라.”

 석숭이 그 자리에서 부하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말 달려 급히 몸을 날린 부하가 가져온 산호수는 크기도 어마어마했지만 벌어진 가지도 대단했다.

 

산호수

 “자, 이 가운데 맘에 드는 놈 하나만 골라 가지시오.”

 이번에도 부를 두고 어깨를 겨룬 싸움에서 석숭이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렇게 부를 두고 다툰 싸움이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마다 석숭이 늘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승리를 거둔 자는 기쁨에 춤을 추며 우쭐했겠지만 패배한 자는 이를 갈며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인간 세상이다. 이를 갈며 가슴에 멍이 들도록 새기고 새긴 분노가 거룩하게 승화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더구나 재물을 두고 키를 다투다가 생긴 분노가 어찌 거룩하게 승화될 여지를 가질 수 있겠는가?

 스물다섯 해나 서진을 오로지하던 진무제가 세상을 뜨고 뒤를 이어 진혜제가 자리에 올랐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머리가 좀 모자랐던 둘째아들을 황제의 자리에 오르도록 만든 진무제의 속셈을 이리저리 헤아리느라 바쁘다. 그러나 한 나라가 마지막 황제만의 잘못으로 멸망의 길에 이르는 일은 없다. 멸망의 징조는 여름날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듯이 천천히 진행되는 법이다. 가만 살펴보면 어둠이 내리고 촛불이 꺼질 때면 악역을 맡은 이들도 무대 가득이다.

 무대가 혼란스러울 때 힘을 가진 자는 이를 갈며 분노하게 만든 자의 목을 내릴 기회로 활용한다. 세상에 길 아닌 길로 어깨 으스대며 오가는 이 많을 때 여기 저기 번득이는 눈빛에는 표독스러운 기운이 넘친다. 그런데도 가진 자들은 욕망의 키를 낮추며 스스로 아래쪽으로 향하기를 끝내 거부한다. 아니 그럴 마음조차 아예 가지지 아니한다.

 석숭을 미워하며 칼날을 갈고 있는 이는 왕개 하나만이 아니었다. 석숭의 큰 저택에는 그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재물로 불러들인 몸종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가운데 석숭의 굄을 한 몸에 받은 여인이 바로 ‘누대에서 몸을 날린’ 녹주였다. 기원후 300년, 석숭의 나이 쉰하나, 가지고 있는 벼슬은 하나 없었지만 한없이 높이 쌓아놓은 재물은 그의 늘그막을 넉넉히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또 다른 권력이 그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바로 서진의 여덟 왕자가 더 많은 권력을 위해 일으킨 이른바 ‘팔왕의 난’이 여러 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석숭이라는 부자 한 사람의 목을 내리는 일이야 별것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까지 겹쳐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진혜제晉惠帝 때 중앙 정권을 넘본 여덟 황족이 일으킨 내란은 열여섯 해 동안 계속되었다. 손수가 섬긴 사마륜은 당시 제후국 조趙의 군주였다. 역사에서는 이 내란을 '팔왕의 난'이라 이른다. 

석숭의 목에 칼을 들이댄 이는 왕개가 아니라 손수孫秀였다. 벼슬길에서 물러난 석숭이 머문 곳은 일찍이 그가 장만해 두었던 별장 금곡원이었다. 당시 대권을 손아귀에 넣고 오로지하던 이는 조왕 사마륜이었다. 손수는 사마륜이 신임하고 총애하던 부하였다. 손수은 하늘을 나는 새도 멈추게 할 만큼 대단한 권력을 가졌던 사마륜을 머리로 두었으니 그 기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권력이 무엇인가? 제 생각대로 남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이때, 제 생각의 옳고 그름은 권력을 행사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의 생각은 항상 옳았고 그가 권력으로 치른 행위도 언제나 정당했던 게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경극京劇 <녹주가 누각에서 몸을 던지다[綠珠墜樓]>의 상연을 알리는 광고물

 손수는 석숭의 몸종 녹주가 재주는 물론 아름다운 용모까지 아울러 갖추었다는 정보를 손에 넣었다. 석숭이 일찍이 진주 100되를 담아 건네고 얻었다는 녹주는 피리 불기에 능한데다 춤까지 잘 추었다. 손안에 권력을 가진 자는 이 권력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하기야 쓰지 않는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닌 법, 손수는 녹주가 탐났다. 탐난 것으로 끝났다면 혼란했던 시기에 권력을 손에 쥔 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부하를 금곡원으로 보내 녹주를 자기 손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석숭은 사태가 이미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권력을 맘껏 휘두른 경험이 있었던 석숭이 권력의 속살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손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내의 오기였을까?

손수가 보낸 부하가 기세도 등등하게 밀어닥쳤을 때, 석숭은 금곡원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집안 가득 찾아온 손님들이 누각에 올라 이미 불콰하게 취하여 기녀들의 가무를 즐기는 중이었다. 석숭은 기녀 열 명을 불러 한 줄로 세운 뒤 이렇게 말했다.

“자, 이 가운데 제일 나은 놈 하나를 뽑아 가시구려.”

손수가 보낸 부하가 눈을 부라렸다. 권력을 가진 자의 부하는 제 윗사람이 가진 권력이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착각하며 행세하기 마련이다.

“우리 어르신께서 필요한 미녀는 오직 녹주 하나외다. 잘 생각하기 바랄 뿐이오.”

“더 생각할 것도 없소, 녹주는 절대 안 되오.”

석숭은 집안 가득 찾아온 손님들 앞에서 무릎 꿇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사내의 자존심이 그에게 무릎 꿇기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석숭은 이 말을 내뱉은 뒤 곧장 후회했다.

‘아차!’

하지만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대 살리려다 내 목숨 날아가게 되었소.”

석숭이 나지막이 건넨 이 말에 녹주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어르신 앞에서 죽어야 할 이 몸이옵니다.”

 

누각 아래로 몸을 던지는 녹주의 모습

 녹주는 금곡원 누각 아래로 몸을 던졌다. 떨어지는 꽃잎이었다. 이로부터 50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이미 황폐해진 이곳을 들른 두목이 옛일을 생각하며 감개하여 칠언절구를 읊었다.

 손수가 보낸 부하는 발길을 돌렸다. 이 부하는 손수에게 돌아가서 사실보다 더 부풀려서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윗사람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과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손수는 사마륜을 부추겼다. 사마륜은 이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서진 최고 부자의 목을 내릴 수 있는 이라면 그 앞에 모든 이들이 벌벌 떨며 무릎 꿇을 게 분명하지.’

 “당장 목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석숭을 꺾을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눈치를 챈 석숭이 오히려 먼저 사마륜을 꺾으려고 했지만 그에게는 이제 그만한 힘이 없었다.

 석숭의 목을 내리기 위하여 사마륜이 군사를 보냈다. 그들은 석숭을 동쪽 저잣거리로 끌고 나왔다. 동쪽 저잣거리는 형을 집행하는 곳이었다. 목을 내놓기 전에 석숭은 한마디 내뱉었다.

 “내 재물을 차지하려고 못된 짓을 하는구려.”

 그러자 그를 압송했던 형리가 차갑게 되받았다.

 “재물이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왜 진즉 깨닫지 못했소?”

 석숭은 서진 최고 부자였지만 그가 가진 그 많은 재물도 그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지켜주기는커녕 이 재물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주어야 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녹주를 손수에게 내어줬더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도 잠시 동안 부지하는 데 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도둑질에 강도질까지 벌이며 긁어모은 재물 아닌가? 게다가 내놓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누리려고 기를 쓴 그를 당시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꼽게 보았을 게 분명하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탐욕의 끝은 언제나 이럴 수밖에 없다. 이제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한 구절을 보인다.

 ‘탐욕이 재앙을 불러 온다.’(患生于多欲, 禍生于多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