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위왕이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자에게 두둑한 예물을 들려 보내며 그를 맞아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장주는 웃으면서 초나라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은 굉장히 큰돈이외다. 또 재상은 정말 높은 자리외다. 그런데 그대는 제사지낼 때 쓰이는 소를 아예 못 보았단 말이오?”
(楚威王聞莊周賢, 使使厚幣迎之, 許以爲相. 莊周笑謂楚使者曰 : “千金, 重利 ; 卿相, 尊位也.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가운데 한 부분이다.
한 가지 더 가져온다. 이번엔 <장자莊子> '추수秋水' 의 마지막 단락이다.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濠水의 다리 위를 노닐다가 입을 열었다.
“저 물고기가 참으로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으니, 이게 바로 저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그러자 혜자가 맞받았다.
“그대가 물고기가 아니거늘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안단 말이오?”
(莊子與惠子游于濠梁之上. 莊子曰 : “儵魚出游從容, 是魚之樂也.” 惠子曰 : “子非魚, 安知魚之樂?”)
《장자莊子》는 장주莊周와 그의 후학들이 지은 도가의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장자莊子는 장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공구孔丘를 높여 공자孔子라 일컫고 맹가孟軻를 높여 맹자孟子라고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 공자의 평소 언행을 중심으로 삼고 그 밖의 이름난 인물들의 언행을 모은 책이 《논어論語》이고, 맹자의 평소 언행을 중심으로 삼고 그 밖의 이름난 인물들의 언행을 모은 책이 《맹자孟子》이듯이, 장자가 저술한 책이 바로 《장자莊子》이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로 자못 머리가 지끈거릴 때가 있다. 이때,『장자』를 펼치게 되는데, 참으로 신통하게도 멋진 치료약 구실을 단단히 해내는 게 바로 이 책이다. 그 가운데 압권은 역시 장자와 그의 친구 혜시惠施 사이에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이다.
공자가 춘추시대의 인물이라면 맹자나 장자는 전국시대의 인물이다. 서로 다른 숫자가 각기 다른 서적에 보이지만, 춘추시대에는 서로 다른 제후국이 14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시대에 들어오면 크게 힘센 일곱 나라로 재편되고, 이들 일곱 나라가 서로 패자가 되기 위하여 창이 번쩍이고 피가 튀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논어》에 드러난 공자의 말씨는 마음씨 너그러운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조곤조곤 은근하고도 부드럽게 타이르는 목소리이지만, 《맹자》에 드러난 맹자의 말씨는 기개 넘치는 젊은이가 앞을 막아선 큰 물결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우렁차게 내지르는 목소리이다.
그런데 《장자》를 보면, 장자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눈에는 공자도 맹자도, 그리고 그의 앞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선생’들도 하나같이 하찮은 인물이었다. 장자는 전국시대 중기에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송宋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한 세월 살다가 바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혜시라는 공명심에 들뜬 인물도 이 시대 송이라는 나라에 태어났기에 장자와는 크게 대비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들이 함께 만든 이야기는 뒷사람들에게 때로는 여름날의 한 바가지 시원한 냉수요, 때로는 스트레스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시원하게 만드는 청량제이다.
혜시는 송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불타는 공명심으로 위魏 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렸다. 당시 위나라는 전국시대 칠웅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위나라에서 모신 왕은 혜왕惠王이었다. 우리는 이 혜왕의 인물됨을 《맹자》의 첫 장구 ‘양혜왕梁惠王' 앞 장에서 만날 수 있다. 어떻든 혜시는 재상의 자리에 오르자 모든 것을 초월한 친구 장자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자기의 모습을 자랑하며 으스대고 싶었던 것이다. 혜시는 네 마리 말이 이끄는 화려한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자기가 탄 수레 앞뒤로 여러 대의 수레에 호위 무사를 태워 행렬을 요란하게 만들었다.
마침 장자는 이때 길가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의 행렬이 그의 곁에 멈추고 그 가운데쯤에서 혜시가 내려 장자 앞으로 다가왔다. 혜시가 멈추어 서자 장자는 멀뚱한 눈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살림망을 들어 물고기 한 마리만 남겨놓고 모두 물속으로 내보낸 뒤 낚싯대를 메고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말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물고기 한 마리면 족하지 여러 마리가 무어 소용 있단 말인가? 이렇게 장자는 친구 혜시를 한 방에 날렸다.
네 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가 고급 승용차로 바뀌었을 뿐, 거들먹거리며 으스대야 세상사는 맛이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은 몇 천 년의 역사가 흘렀어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경찰 오토바이가 요란하게 길을 열어주고 경적을 울리는 몇 대의 차량까지 뒤따라야 사는 맛을 느끼는 무리는 중국 땅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도 비일비재한 것을 보면, 역사가 발전한다는 말은 헛말이요 역사는 오직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한다는 말이 진실인 듯하다.
장자와 혜시는 친구이지만 가는 길은 서로 달랐다. 그랬지만 이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했기에 친구일 수 있었다. 혜시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장자는 쟁론을 벌일 상대를 잃은 허전함을 어쩌지 못했다. 살아생전 이들 두 사람이 회하淮河 남쪽 기슭을 끼고 흐르는 지류 호수濠水 다리 위에서 벌인 논쟁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입은 장자가 먼저 열었지만 싸움을 건 쪽은 혜시가 먼저였다.
“물고기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으니, 이는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일세.”
다리 아래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보며 장자가 한 말이었다. 그러자 혜시가 대뜸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내뱉었다.
“자네는 물고기도 아니면서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혜시는 장자가 한 말의 맹점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자의 머리는 재빠르게 회전했다.
“자네는 내가 아니면서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하는가?”
혜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자네가 아니기 때문에 참으로 자네를 알지 못하네. 자네도 물고기가 아닌지라 당연히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리 없지.”
장자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처음에 자네가 뭐라고 했는가? 자네는 내가 아니면서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전제로 입을 열지 않았는가? 내가 알고 있다는 전제로 물은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이번에도 장자가 이겼다. 그러나 이것은 내 판단일 뿐, 나의 이 판단과 다르다는 이가 있다면, 그것도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생각과 다를 뿐이다.
어떻든 이 둘의 말싸움은 뜨겁지만 참으로 우아하다. 몇 번이고 거듭 읽어도 맛이 난다. 맛이 깊어 멋이 넘친다.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던 장자는 꿈에서 깨어나자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나비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내가 되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자아自我와 외물外物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본디 하나라는 이들의 철학을 이야기한 우화 한 도막이다.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가에서 자배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 장자의 모습은 꽤 널리 알려졌다. 두 다리 뻗고 앉아 자배기 두드리는 그 모습에 문상 온 혜시는 깜짝 놀랐지만, 장자는 아랑곳 않고 자배기 장단 맞추어 노래만 했다. 삶과 죽음까지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 본시 없음이었지만 숨결과 육신을 얻어 있음이 되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으니, 봄 여름 갈 겨울, 이 네 계절이 되풀이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살이에 아옹다옹 다투다가도 욕심의 울타리를 벗어나 잠시라도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할 때도 있어야겠다. 꽃밭을 지나며 이 꽃이 더 아름답다, 아니 저 꽃이 더 아름답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지만, 사실 꽃들은 서로 잘났다며 어깨를 겨루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그 자체일 뿐이다. 빨강이 더 좋아, 파랑이 더 좋아, 아니야, 노랑이 더 좋아, 이는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언어일 뿐, 색깔 자체는 서로 잘났다며 앞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그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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