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산책

생명을 얻은 숫자 -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卓文君

촛불횃불 2021. 12. 8. 20:30

 이때, 탁왕손의, 과부가 된 지 얼마 안 된 딸 문군文君은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마상여는 짐짓 현령과 서로 높이고 존중하는 체하며 거문고로 그녀의 마음을 은근히 기울이기로 했다. (是时卓王孙有女文君新寡. 好音. 故相如缪与令相重,而以琴心挑之.)

<사기史記>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가만히 살펴보면 숫자도 생명이 있어 움직이는 듯하다. 고대 인도인이 만들고 아라비아 상인의 큰 공으로 세상에 널리 퍼진 아라비아 숫자도 그러하지만 중국인의 한자 숫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숫자가 가진 차례와 분량을 셈하는 기능을 십분 활용한 숫자 놀이는 단순한 놀이의 기능을 넘어 문학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와 사람들을 자못 감동시킨다.

 

숫자 놀이&nbsp;

 이런 점에서, 중국 서한 시대, 사마상여와 탁문군이 엮어낸 이야기는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먼저, 사마상여. 아버지로부터 받은 본명은 장경이었으나 전국시대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를 앙모한 나머지 ‘상여’로 개명했다. 그는 운문과 산문이 교묘하게 결합된 이 시대의 독특한 문학 양식인 ‘부賦’에서 다른 이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천재를 발휘했다. 그의 천재를 아끼던 제후왕 유무劉武의 사랑을 한껏 받았으나, 유무가 세상을 뜨자 지금의 스촨 지방 임공으로 돌아온다. 임공은 그의 고향 마을과 가까운 자그마한 성읍이었다. 이때, 가진 것 하나 없던 그를 이곳으로 이끈 이는 임공 지방의 행정 장관으로서 그의 친구였던 왕길이었다. 왕길은 사마상여를 짐짓 귀빈으로 받들어 모셨다.

 

사마상여의 모습

 당시 이곳에는 철광으로 이룩한 부를 바탕으로 행세하던 탁왕손이라는 부호가 있었다. 그는 지방 행정 장관이 그토록 정성껏 받들어 모시는 사마상여와 함께하기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요양을 구실로 짐짓 초청을 마다하던 사마상여는 몇 번이나 그를 찾아온 왕길을 따라 이 잔치에 참여했다. 사마상여는 온갖 예를 다 갖추어 권하는 술 몇 잔을 마시고 이제 얼굴까지 불콰해지자 그 자리에서 칠현금을 탈 기회를 얻었다. 아니 왕길과 함께 이 집 딸 탁문군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작전이었으니 기회를 얻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칠현금 타는 사마상여와 이를 엿보는 탁문군

 사마상여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지만 칠현금 연주에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연주한 곡이 바로 그 유명한 『봉구황鳳求凰』이었다. ‘봉’은 봉황새의 수컷, ‘황’은 봉황새의 암컷을 가리킨다. 출가한 지 한 해도 안 되어 청상이 되어 친정에 돌아와 있던 탁문군을 겨냥한 곡이었다. 모든 게 그야말로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었다. 문틈으로 이 모습을 가만히 엿보던 탁문군은 그대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제 발로 담 밖으로 나온 탁문군은 사마상여의 품에 안겨 성도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였다. 가진 것 하나 없었던 알거지 사마상여가 대부호의 딸을 낚아챘으니, 그야말로 시루째 안겨진 떡이었다. 그러나 탁왕손은 노여움과 부끄러움으로 두문불출하며 이들에게 한 푼의 도움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 둘은 성도에서 술을 파는 가게를 열어야 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었던 것이다. 이때, 친구들의 간절한 권유로 탁왕손은 노여운 감정을 간신히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흔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새로 자리에 오른 황제의 부름으로 사마상여가 벼슬과 명예를 한껏 얻은 뒤에야 탁왕손은 비로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서한의 재녀 탁문군

 

 ‘부’라는 문학 형식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경제가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무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사마상여는 당장 서울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돈과 명예와 권력까지 한 손에 쥔 사마상여는 다른 많은 남성들처럼 재색을 함께 갖춘 탁문군을 버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덟 줄의 붉은 선이 그어진 편지지를 펼친 뒤 붓을 든 사마상여는 단 한 줄 열석 자의 숫자만을 차례로 늘어놓았다. 멀리 사천 지방에서 앉으나 서나 그를 그리워하던 탁문군에게 쓴 편지였다.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百千萬

 편지를 받아든 탁문군의 손이 순간 파르르 떨렸다. 이어서 그녀의 손에 쥐어졌던 이 편지가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사마상여의 사랑이 이미 식었음을 금세 알아차렸다. ‘만萬’ 다음에 반드시 와야 할 ‘억億’이 없었던 것이다. ‘억億’은 곧 ‘억憶’과 같은 음이 아닌가? 사마상여의 마음속에 탁문군은 이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여덟 행 편지지

 음악의 소리와 가락에 뛰어난 탁문군이었다. 게다가 시문에도 남다른 재능을 가졌던 탁문군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붓을 들었다. 숫자가 단순히 차례나 분량을 셈하는 기능을 넘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문학으로 또 다른 생명을 얻는 순간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시를 일러 <원랑시怨郞詩>라 한다. 

 

한 번 헤어지고 나서,

두 곳으로 서로 떨어지게 되었어요.

서너 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대여섯 해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칠현금도 뜯을 마음 없고,

여덟 줄 편지도 전할 길 없으니,

구련환은 가운데를 끊어 버리고,

십 리마다 설치된 정자에 올라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백 가지 생각,

천 가지 그리움,

만 가지로 그대를 원망하기 시작했소.

만 가지 천 가지 온갖 말로도 내 마음 다하지 못하고,

백 가지도 넘는 무료함으로

열 번도 넘게 난간에 기댔지요.

구월 구일 높은 곳에 올라 외로운 기러기 바라보았지만,

팔월 추석에도 우리 만나지 못하는군요.

칠월 중순엔 촛불 들고 향 사르며 하늘에 빌었고,

유월 삼복엔 부채질에도 내 마음 시렸답니다.

오월 석류는 불처럼 붉은데, 어쩌다 한바탕 찬비 꽃잎을 치는군요.

사월 비파는 아직 푸른데 거울 마주하고 싶어도 마음 어지럽습니다.

삼월 복사꽃은 바쁘게도 물 따라 흘러가는데,

이월 연은 줄 끊어져 하늘하늘 날아갑니다.

아, 그대여, 그대여, 다음 한 세상에서는 그대 여자 되고 나 남자 되어요.

 

一朝別後, 二地相懸.

只說是三四月, 又誰知五六年?

七弦琴無心彈, 八行書無可傳.

九連環從中折斷, 十裏長亭望眼欲穿.

百思想, 千系念, 萬般無奈把郎怨.

萬語千言說不完, 百無聊賴, 十依欄杆.

九重九登高看孤雁, 八月仲秋月圓人不圓.

七月半, 秉燭燒香問蒼天.

六月三伏天, 人人搖扇我心寒.

五月石榴紅似火, 偏遇陣陣冷雨澆花端.

四月枇杷未黃, 我欲對鏡心意亂.

忽匆匆, 三月桃花隨水轉.

飄零零, 二月風箏線兒斷.

, 郎呀郎, 巴不得下一世, 你爲女來我做男.

 

&nbsp;<원랑시>는 숫자가 있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이 편지를 받은 사마상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넘치는 재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자기를 향한 그토록 깊은 사랑은 가슴을 흔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사마상여는 그녀와 헤어지려는 생각을 당장 거두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손 맞잡고 장안으로 올라온 두 사람은 늘그막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숫자를 희롱하며 헤어지려던 사마상여의 마음을 돌이킨 것 또한 탁문군의 숫자였다. 숫자는 감정이 배제된 기호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감정이 한껏 넘치는 언어로 바꾸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