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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모습-열 시 십 분과 열 시 열 분

우리말에서 시각을 나타낼 때, 시는 고유어로, 분은 한자어로 말하게 된다. 왜 그런가?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그렇다. 이것을 언어가 가진 특징 중 자의성(恣意性)이라고 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우리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쓰고 있으며 틀리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이들에게는 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십 시 십 분이나 열 시 열 분이 속을 썩인다고 한다. 아! 나에겐 아름다운 우리 한국어! 나의 모국어!

산문 마당 2022.05.19

시대가 몰라본 천재 음악가-만보상萬寶常

만보상이 어느 곳 출신인지 알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 만대통萬大通은 양梁의 장군 왕림 王琳을 따라 북제北齊로 귀순했다. 뒷날 강남의 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피살되었다. 이 때문에 만보상은 주악을 관장하는 악호樂戶로 유배되었다. 그가 음률에 정통한데다 갖가지 악기를 능속하게 다루었던 것이다. 그는 일찍이 옥경玉磬을 만들어 북제의 황제에게 바치기까지 했다. 萬寶常, 不知何許人也. 父大通, 從梁將王琳歸于齊. 後復謀還江南, 事泄, 伏誅. 由是寶常被配爲樂戶, 因而妙達鍾律, 遍工八音. 造玉磬以獻于齊. 『수서隋書』「만보상열전萬寶常列傳」 사수泗水 돌 잘라 경쇠를 만드니, 옛 음악 소박하다 듣는 이 적었다네. 악공이 천시 받아 백아伯牙 사광師曠 드물어지니, 사악한 소리 가리지 못하고 바른 소리 싫어했..

하느님과 하나님

기독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을 로마 가톨릭교(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의 세력이 가톨릭교의 세력보다 더 큰 터라,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하느님을 점차 밀어내고 있는 듯하며, 이것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문법에 관계없이 사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말할 나위 없이 둘 가운데 옳은 말은 하느님이다. 우리말의 수사 ‘하나’에 존칭 접미사 ‘님’을 덧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애국가 중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부를 때는 주의할 일이다. 물론 개신교에서 저희들끼리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산문 마당 2022.05.18

피를 토하고 죽은 참장군 - 주아부周亞夫

1. 관상 한나라 초기, 허부許負는 나라 안에 이름을 날리던 관상쟁이였다. 관상에 관한 저서까지 남길 정도였던 그녀는 사마천이「유협열전游俠列傳」에 데려온 협객 곽해郭解의 외할머니였다. 주아부周亞夫가 그녀를 불러 자기 관상을 맡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에 명성이 자자한 그녀에게 자기 얼굴을 보이며 앞날을 알고 싶은 이는 이미 주아부 혼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 해 뒤 후에 봉해지고, 다시 여덟 해가 지나 장군과 승상이 되어 큰 권력을 잡을 것이라는 허부의 말에 주아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 주발周勃에게 주아부는 맏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맏아들이 작위를 이어받을 것이며 맏아들이 죽더라도 그의 아들이 작위를 이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부가 내어놓은 그 다..

사마천의 외딸-사마영司馬英

『사기』는 우리를 한껏 압도하는 엄청나고 굉장한 무대이다. 등장인물의 숫자만 해도 4천여 명, 이들이 종횡무진 활동하는 범위도 그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원을 넘어 동서남북 주변 국가까지 포섭한다. 지난 네 해 동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00도서관’에서 학인들과 함께 사마천의 『사기』를 강독하면서 서로 많은 것들을 주고받으며 당시의 역사 인물을 되살리느라 자못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모임을 이끌면서 특별히 여인들의 삶에 눈길을 주었고, 그 결과 오늘 ‘00필 선생이 『사기』에서 만난 여인’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곁에 있었던 여인들이 궁금했지만 『사기』에서는 정작 찾을 수 없었다. ‘열전’ 마지막 편「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도 그의 가계와 아버지의 모습은..

항우를 파국으로 이끈 사나이-나이 지긋한 농부

사마천이 붓 들어 슬쩍 지나치듯이 한 차례 언급한 인물을 책장 덮고 다시 곰곰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인물이 바로 그 순간에 바로 저런 행동을 했기에 바로 이런 결과로 나타났구나, 이렇게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인물이 바로 그 순간에 바로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생각하며 나름대로 정리하기도 한다. 지난 날 일어났던 수도 없이 많은 사건은 모두 역사가 될 수 있지만 그 많은 사건이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다 기록되는 일은 없다. 그 많은 사건 가운데 기록으로 남으려면 선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선택하는가?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선택한다. 어떻게 선택할까? 선택하는 이의 기준에 맞갖아야 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은 모..

전쟁의 도화선이 된 웃음-소동숙자蕭桐叔子

제齊 나라에 사신으로 온 각극卻克은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그는 당시 진晉 나라의 집정 대신으로서 군사상 최고지휘관을 겸하고 있었다. 사달은 제나라 군주 경공頃公의 잘못된 판단과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터뜨린 그의 어머니의 경솔함이 합하여 크게 번지고 말았다. 선왕 혜공惠公의 정실 소씨蕭氏는 제나라에 예속된 자그마한 나라 소국蕭國의 군주 동숙桐叔의 딸이었다. 역사는 그녀를 ‘소동숙蕭桐叔의 딸’이라 일컫는다. 그녀는 혜공에게 시집온 뒤 아들 무야無野를 낳았다. 혜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십 년째 되는 해 세상을 떠나자 무야가 자리를 이었다. 이 곧 경공이다. 소부인은 남편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경공은 홀로된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밖에서 들은 ..

세 치 혀가 살린 목숨-괴통蒯通

고조 유방의 반응 기원전 191년, 이 해는 한나라 고조 11년, 나라를 연 지 이제 겨우 10년을 넘겼지만 나라 안팎의 형세는 태평성세가 아니었다. 스스로 ‘대왕代王’을 자처하던 진희陳豨가 지금의 허베이河北 땅에서 획책한 모반도 이때였다. 당시 그는 꽤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휘하에는 뛰어난 인재들도 여럿이었다. 진희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며 모반했다는 소식을 들은 고조 유방은 치솟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유방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진희를 평정하는 길에 나섰다. 바로 이때, 한신은 병을 핑계로 고조 유방의 출정에 따르지 않고 도성에 남아 진희의 모반에 호응할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을 진희에게 은근한 방법으로 알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한신은 먼저 도성 안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풀어 이..

거열車裂된 밑돌-상앙商鞅

재능이 넘치는 젊은이 위衛 나라 서얼 공자 상앙商鞅이 위魏 나라로 가서 그 나라 재상 공숙좌公叔痤를 섬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품은 욕망이 남달랐던 그에게 위魏 나라는 그의 뜻을 널리 펼치는 데 더없이 좋은 나라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위나라는 전국시대 여러 나라 가운데 강국이었다. 이 나라 재상 공숙좌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관장하는 집사의 자리에 상앙을 앉혔다. 이는 그의 능력에 대한 큰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처사였다. 당시 위나라 군주는 혜왕, 도읍을 대량大梁으로 옮겼기에 흔히 양혜왕梁惠王으로 불리는 그는 춘추시대 군주처럼 패자를 꿈꾸는 야심만만한 임금이었다. 어느 날, 혜왕은 깊은 병으로 일어날 가망이 없는 재상 공숙좌를 찾아 이 나라를 이끌 재상으로 적합한 인물의 천거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