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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화살 맞아 쓰러진 개혁-오기吳起

인정 없고 모진 사나이 오기吳起 기원전 440년, 전국시대 초엽, 위衛 나라에서 태어난 오기는 부잣집 도령으로 세상물정 모르고 호강스럽게 자랐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큰 벼슬을 얻으려고 유세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려버렸다. 마을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자 그는 자기를 비웃으며 헐뜯은 이웃을 서른 명이나 죽이고 위나라 동쪽 성문을 빠져나와 몸을 피했다. 이때, 그가 어머니에게 하직하며 맹세한 장면이「손자·오기열전」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오기는) 자기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제 팔을 물어뜯으며 맹세하여 아뢨다. “저는 공경이나 재상이 되지 않으면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與其母訣, 齧臂而盟曰 : “起不爲卿相, 不復入衛.”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위나라 동..

장군이 된 장마당 관리인-전단田單

열기 기원전 284년, 악의樂毅가 이끄는 연燕 나라 군대가 제나라 국경을 넘어 도성 임치臨淄까지 손에 넣었다. 당시 연나라 군주는 소왕昭王. 그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날부터 이웃 제나라를 무릎 꿇릴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요 선왕인 연왕쾌燕王噲가 제나라의 침공으로 당한 아픔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전국시대 다른 어떤 제후국과 마찬가지로 계획의 출발은 인재 영입이었다. 아경亞卿으로 발탁된 위魏 나라 출신 악의가 연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선 데에는 소왕이 기울인 인재 영입이 열매를 맺은 결과였다. 당시 제나라 군주는 민왕湣王, 자리에 오른 지 열일곱 해 되는 해였다. 그도 어질고 착한 신하를 멀리하고 달콤한 말로 꾀는 간신을 가까이 둠으로써 불행한 끝장을 맞은 여느 군..

굶어죽은 군주-제환공齊桓公

환공, 관중을 받아들이다 사실 관중은 환공桓公 편이 아니었다. 환공이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 그는 공자 소백小白이었다. 곁에는 배다른 형 공자 규糾가 있었다. 군주는 양공襄公, 이들의 형이었다. 함께 살려면 자기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해 품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양공은 그러하지 않았다. 이웃 노나라 환공을 술에 취하게 만든 뒤 주살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부인과 가만히 정을 통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행동거지가 수시로 변하는 양공을 지켜보던 소백과 규, 이들 둘은 각각 거莒 나라와 노魯 나라로 몸을 피했다. 아무런 까닭 없이 사람을 마구 죽이는 양공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곁에서 소백 편에 섰던 이가 포숙아였고 규 편에 섰던 이가 관중이었다. 양공을 시해하고 제나라 군주의 자리..

떠나야 할 때 떠난 사람-범려范蠡②

-문 열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를 펼치면 범려范蠡를 만날 수 있다. 중학 시절이었을까, 춘추시대 미녀로 이름난 서시西施가 범려의 곁에 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기에, 사마천을 만나면서『사기』곳곳을 훑었지만 서시라는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민간에 떠도는 밑도 없는 이야기를 모은 야사에나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사실도 늦게야 알았다. 그러다가 중국정법대학 리샤오李曉 교수의『상고지혜商賈智慧』를 만나며「화식열전」을 새로이 또 펼쳤고, 이제 범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부자라면……’, 역사의 무대에 영광스럽게 부활시켜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상고지혜商賈智慧』...리샤오, 商賈智慧, 廣西師範大學出版社, 『중국 옛 상인의 지혜』로 인간사랑에서 출판. 옮긴이 이기흥. 이로부터..

셈 빠른 장사꾼의 끝장-여불위呂不韋

-정도를 넘은 욕망 전국시대 말엽에 조나라 도성 한단에 온 여불위는 이미 부자였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가진 재물만으로도 한평생 넉넉히 호사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은 그를 바라보는 보통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잠시 사마천을 벗어나서『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다섯 번째 편을 펼친다. 여불위의 욕망이 사뭇 진득하여 앞으로 그가 살아갈 모습을 미루어 알기에 넉넉하다. 복양濮陽 사람 여불위가 한단邯鄲에 장사하러 왔다가 진나라의 인질 이인異人을 만난 뒤 돌아와 그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여쭸다. “농사를 하면 몇 배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의 아버지가 대답했다. “열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니라.” “보석 장사를 하면 몇 배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백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니라...

욕망이 만든 비극-이사李斯

-씨앗 한 알 먼저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가운데 '한비자韓非子' 부분 첫 번째 단락을 가져온다. 한비韓非는 한韓나라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형명과 법술에 관한 학문을 좋아했다. 그의 학설의 이론적 바탕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에 있다. 한비는 말을 더듬는다는 결점 때문에 유세에 능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장으로 이론을 세우는 데는 뛰어났다. 그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경荀卿을 스승으로 모시고 섬겼는데, 이사는 자신이 한비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韓非者, 韓之諸公子也. 喜刑名法術之學, 而其歸本於黃老. 非爲人口吃, 不能道說, 而善著書. 與李斯俱事荀卿, 斯自以爲不如非.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이사李斯는 자신이 한비만 못하다고 생각했다.’에 얼른 밑줄을 그었다. 귀곡자를 함께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

갈등과 화해-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

-앞 이야기 전국시대 말엽, 서쪽 변방의 진나라가 함부로 넘보기에는 버거운 상대가하나 있었으니 바로 조나라였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철저히 무릎 꿇리기엔 자기가 입을 상처도 만만치 않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조나라에는 염파廉頗, 인상여藺相如, 그리고 조사趙奢 같은 영명하고 지혜 넘치는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279년,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옥덩어리 하나가 조나라 조정에 풀기 힘든 문제를 던졌다. 당시 조나라의 군주는 혜문왕惠文王, 진나라의 군주는 소양왕昭襄王이었다. 소양왕이 던진 말 한 마디, 그것도 계산된 말 한 마디에 조나라 혜문왕은 조정 대신들에게 지혜를 구했다. 진나라 소양왕의 요구는 이러했다. “성읍 열다섯을 드릴 테니 화씨벽을 우리 진나라에 넘기시오.” 이쯤..

이런 복수-손빈孫臏과 방연龐涓

사마천이『사기』라는 무대에 올린 인물은 수도 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는 갈등을 풀고 화해함으로써 함께 산 인물이 있는가 하면, 갈등으로 깊어진 원한을 피로써 풂으로써 함께 죽은 인물도 있다. 상대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 권력에 빌붙어 영원히 살 것처럼 으스대던 인물은 역사의 무대에서 바짓단 걷고 매를 맞으며 죽음보다 더 큰 치욕을 당하는가 하면, 당시 역사의 무대에서 죽임을 당하며 사라졌던 인물은 오늘 영광스럽게 부활하기도 한다. 모자라면 채워야 한다. 힘써 채워도 모자람을 기울 수 없다면 자기 곁에 있는 인물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 있다. 재능 넘치는 인물이 곁에 없으면 멀리서라도 모셔야 한다. 모자람을 채우기보다 재능 넘치는 인물을 제거함으로써 홀로 권력을 오로지하며 우뚝 서려다가 추물이 된 인물을 ..

재치와 해학으로 승리한 사나이-순우곤淳于髡

1. 데릴사위 그리고 작은 키 사마천은 「맹자·순경열전」과「골계열전」두 편에서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순우곤淳于髡을 등장시킨다. 먼저 「골계열전」부터 펼친다.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그는 키가 일곱 자가 채 되지 않아도 익살스러운데다 말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제후 나라에 사신으로 갔지만 굴욕을 당한 일이 일찍이 없었다. 淳于髡者, 齊之贅婿也. 長不滿七尺, 滑稽多辯, 數使諸侯, 未嘗屈辱. 순우곤 ‘열전’의 첫 번째 단락이다. 데릴사위와 작은 키, 그리고 뛰어난 말재주, 이 세 가지이다. 데릴사위. 이는 그의 이름자 가운데 ‘곤髡’과 더불어 출신이 매우 비천했음을 드러낸다. ‘데릴사위’는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시작된 풍속이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맏딸이 출가할 수 없으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해야 ..

황후의 몸종에서 숙비淑妃가 된 여인-풍소련馮小憐

후주가 총애하는 풍소련은 총명한데다 비파까지 잘 탔다. 게다가 노래와 춤에도 남달리 뛰어났다. 후주는 그녀에게 빠져 숙비로 올려 앉혔다. 齊後主有寵姬馮小憐, 慧而有色, 能彈琵琶, 尤工歌儛, 後主惑之, 拜爲淑妃. -『수서隋書』 미색에 빠지니 나라 곧 망하고, 가시나무 가득하자 슬픔이 비롯되네. 소련小憐의 아름다운 몸 가로누운 밤, 북주의 군사가 진양에 들어왔다네. 一笑相傾國便亡, 何勞荊棘始堪傷. 小憐玉體橫陳夜, 已報周師入晋陽.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북제2수北齊二首』 가운데 앞부분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련小憐’이 바로 북제의 후주 고위의 후궁 풍소련馮小憐이다. 그녀는 원래 황후 목야리의 몸종이었다. 목야리가 고위에게 버림을 받은 뒤, 그녀의 신분은 한꺼번에 껑충 뛰어오르며 숙비淑妃에 봉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