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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루靑樓의 여인이 된 황후②-목야리穆邪利

후주의 황후 목씨穆氏의 이름은 야리邪利이다. 본시 (북제 후주의 첫 번째 황후) 곡률후斛律后의 여종이었다. 後主皇后穆氏, 名邪利, 本斛律后從婢也. 『북제서北齊書』 「열전제일列傳第一」 남북조 시대 북제의 역사를 보면, 그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잇달아 자리에 오른 여섯 황제가 스물여덟 해나 통치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다. 여섯 황제가 거의 하나같이 잔혹한데다 황음무도했으며 변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형인 고징高澄의 정실부인을 간음까지 한 데다 술을 마시면 입었던 옷을 몽땅 벗어버리고 알몸 달리기를 했던 문선제 고양은 북제의 첫 번째 황제였으며, 열여섯 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제법 민생에 관심을 두고 국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던 두 번째 황제 고은高殷은 이태도 채우지 못하고 열일곱 살 한창 나..

보석처럼 빛난 여인-우맹優孟의 아내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공자가 초楚 나라 장왕莊王을 가리켜 ‘어질고 착하구나, 초왕이여! 천승千乘의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한 마디 말을 소중히 여겼구나.’, 이렇게 찬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왕은 자그마한 제후국 진陳 나라 군주 영공을 시해한 하징서夏徵舒를 죽이고 이 나라를 초나라의 일개 현으로 만들었다. 그 뒤, 그는 신숙시申叔時의 ‘하징서가 그의 임금을 시해했다고 해서 여러 제후들의 군대를 모아 정의라는 이름으로 징벌하고 또 얼마 뒤에 그 땅까지 차지한다면 어떻게 천하를 호령할 수 있겠느냐?’는 간언에 귀를 기울여 진나라를 후손에 돌려주었다. 공자가 한 말은 바로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이렇게 초나라 장왕은 신하의 간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 초나라 장왕이 처음부터 이렇게 귀를 너그럽게 열지..

분수를 안 사나이-도양열屠羊說과 범려范蠡

초나라 소왕이 나라를 잃어버리자 도양열은 소왕을 따라 나라 밖으로 몸을 피했다. 소왕이 초나라로 돌아와 자기를 따른 이들에게 상을 내리려고 했다. 도양열에게도 상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도양열은 이렇게 아뢨다. “당시 대왕께서 나라를 잃으셨을 때, 저는 짐승 잡는 직업을 잃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나라를 찾으시고 저 또한 제 직업을 되찾았는데 무슨 상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楚昭王失國, 屠羊說走而從于昭王. 昭王反國, 將賞從者, 及屠羊說. 屠羊說曰 : “大王失國, 說失屠羊 ; 大王反國, 說亦反屠羊. 臣之爵祿已復矣, 又何賞之有!” 『장자莊子』「양왕편讓王篇」 범려가 간언하여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제가 듣기로 무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덕을 거스르는 것이며, 다툼은 일 가운데 제일 못난 것입니다. 남몰래 ..

포악한 군주에게 희생된 장인-간장干將과 막야莫邪

간장과 막야가 진晉 나라 군주에게 올릴 검을 세 해 만에 만들었다. 자웅 한 쌍의 이 검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진귀한 기물이었다. 이 한 쌍의 검 가운데 자검雌劍은 군주에게 올리고 웅검雄劍은 남겨 두었다. 간장은 아내 막야에게 이렇게 일렀다. “내가 남은 검 하나를 남쪽 산의 북쪽이며 북쪽 산의 남쪽 돌 위에 소나무가 있는 곳에 감추어 두었소. 임금께서 이제 나를 죽일 것인즉, 그대가 사내를 낳으면 내 말을 들려주시구려.” 干將莫耶爲晉君作劍, 三年而成, 劍有雌雄, 天下名器也. 乃以雌劍獻君, 留其雄者. 謂其妻曰 : “吾藏劍南山之陰, 北山之陽, 松生石上, 劍在其中矣. 君若覺, 殺我. 爾生男以告之.” -유향劉向의『열사전列士傳』 간장과 막야 없애버리면, 이 세상 어둠 누가 물리치나. 요괴 다 베고 나니 온갖 귀..

난세가 만든 불행-채문희蔡文姬

한낮엔 울면서 걸음 옮겼고, 밤이면 슬픔으로 눈물 흘렸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고, 살려고 해도 한 점 희망 없었네. 하늘이여, 무슨 잘못 했기에, 이런 재앙 만나게 했나. 변경 거친 땅은 중원과 같지 않고, 인성은 거칠어 예의를 따지지 않네. 旦則號泣行, 夜則悲吟坐. 欲死不能得, 欲生無一可. 彼蒼者何辜, 乃遭此厄禍. 邊荒與華異, 人俗少義理. 채문희의 부분이다. 이런 고통을 견뎌야 했던 그녀의 피맺힌 한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역사가 만든 '소용돌이'는 재능 넘치는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던 것이다. 소용돌이. 국어사전은 이 낱말을 '바닥이 팬 자리에서 물이 빙빙 돌면서 흐르는 현상, 또는 그런 곳.'이라고 풀이했다. 그리고 '힘이 뒤엉켜 요란스러운 상태'를 비유한다고 덧붙였다. 동한 말엽에 태어나 삼국..

재상이 된 개백정-번쾌樊噲

1. 패현 땅의 개백정 무양후舞陽侯 번쾌樊噲는 패현沛縣 사람이다. 그는 개 잡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고조와 함께 숨어 살기도 했다. 舞陽侯樊噲者, 沛人也. 以屠狗爲事, 與高祖俱隱. 「번·역·등·관열전樊酈滕灌列傳」의 첫 번째 단락 두 문장을 몽땅 가져왔다. 이 편은 고조 유방의 충성스러운 장수 번쾌, 역상酈商, 하후영夏侯嬰, 그리고 관영灌嬰, 이 네 사람의 합전으로서 초한전쟁을 거쳐 한나라를 여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들의 전기이다. 이들은 모두 미천한 출신이었다. 신분으로 따지자면 철저히 ‘지체가 한껏 낮은 사람들’이었지만 난세가 만들어 낸 시대 변화 속에서 신분 상승을 스스로 이뤄낸 영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번쾌의 고향 패현은 곧 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이들 두 사람은 진나라 말엽에 재앙을 피하기..

세 치 혀의 해학-동방삭東方朔

한나라 무제 유철은 황제에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질고 착한 인재를 불러 쓰겠다고 널리 알렸다. 이때, 제나라 사람 동방삭東方朔이 장안으로 올라와서 자신을 스스로 천거하는 글을 올렸다. 그것도 황제에게 상주할 때 쓰는 죽간 3천 장에 이르는 긴 글이었기에 한무제 유철이 이를 읽는 데만 두 달이 꼬박 걸렸다고 하니, 동방삭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성격이 익살스럽고 언사가 민첩한데다 재치까지 넘쳐서 무제 유철도 늘 그와 자리를 함께하며 담소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무제 유철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방삭을 익살과 재치 넘치는 광대로 취급하며 높여 쓰지 않았다. 사마천은 ‘열전’ 70편 가운데「골계열전滑稽列傳」의 여러 인물 가운데 동방삭을 넣어 그의 언행을 기록했다..

양수청풍兩袖淸風-왕이열王爾烈

맑은 개울 사슴이 건넜어도 이끼는 차분하네. 幽溪鹿過還苔靜. 어려서부터 어른들 곁에 기웃거리길 좋아하던 왕이열王爾烈이었다. 지방의 풍토와 특색을 이야깃거리로 삼았지만 마침내 나라의 큰일에 이르러 설왕설래할 때면 어린 왕이열은 귀를 쫑긋 세우고 온 마음을 다 기울였다. 어른들도 그의 비범함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시구 한 구절을 던지며 짝이 되는 구절을 읊도록 채근하는 일이 잦았다. 앞에 든 시구는 탁월한 안목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던 승려 한 분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마침 명사들을 초대하여 시회를 벌이던 이 집에 들러 왕이열을 특별히 지명하며 내놓은 시구이다. 여러 사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왕이열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 시구에 짝이 될 대련을 내놓아야 했던 것이다. 깊은 산에 구름이 덮였어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진만년陳萬年과 진함陳咸

진만년은 조정의 중신이었다. 일찍이 병이 들어 그 아들 진함을 침상 곁으로 불러 훈계했다. 삼경에 이르자 아들 진함이 잠이 들어 머리를 병풍에 부딪쳤다. 진만년은 크게 화를 내며 막대기로 치려고 했다. “아비가 지금 너를 훈계하고 있거늘, 너는 오히려 잠을 자며 아비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고?” 진함은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며 이렇게 아뢰었다. “다 듣고 있습니다. 요지는 그저 아첨하면 된다는 말씀이지요.” 진만년은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陳萬年乃朝中重臣也, 嘗病, 召其子咸戒于床下. 語至三更, 咸睡, 頭觸屛風. 萬年大怒, 欲杖之, 曰 : “乃公戒汝, 汝反睡, 不聽吾言, 何也?” 咸叩頭謝曰 : “具曉所言, 大要敎咸諂也.” 萬年乃不敢復言. 『한서漢書』 「진만년전陳萬年傳」 관아 곡식..

중국 고대 10대 음악가

1. 백아伯牙 춘추시대 현악기 연주가. 편에 '백아가 칠현금을 연주하면 말도 머리 들고 귀기울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로써 그의 연주 수준이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전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와 등이 있다. 2. 사광師曠 춘추시대 진晉의 연주가. 두 눈이 모두 멀었으나 청각이 대단히 예민하여 음률을 정확하게 판별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과 이 있다. 3. 이연년 서한 때의 궁정 음악가. 일찍이 음악을 관장하는 악부樂府에서 협률도위協律都尉를 지냈다. 대표작품으로는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가지고 온 을 바탕으로 28수의 새로은 곡조를 만들어서 의장대의 군악으로 사용했다. 4. 혜강嵇康 삼국시기 위魏 나라 말엽의 거문고 연주가, 문학가, 사상가. 깊은 학식에 시부에도 능했다. 음악을 그야말로 뜨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