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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평화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인물-경보慶父

중손仲孫이 돌아와서 아뢰었다. “경보를 없애지 않으면 노魯 나라에 재난이 그칠 날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제환공齊桓公이 물었다. “어찌해야 그 양반을 없앨 수 있겠소?” 중손이 대답했다. “재난이 그치지 않으면 장차 스스로 무너질 것이오니, 왕께서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소서.” 仲孫歸曰 : “不去慶父, 魯難未已.” 公曰 : “若之何而去之?” 對曰 “難不已, 將自斃, 君其待之!” -『좌전左傳』 「민공원년閔公元年」 탐관오리 백성 괴롭히면서도 거리낌 없고, 간신들 임금 속이면서도 두려움 없네. 貪吏害民無所忌, 奸臣蔽君無所畏.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의『채시관采詩官』가운데 한 부분이다. 백성 괴롭히고 임금 속이면서도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었던 간사한 신하는 어느 왕조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는 이들..

재상이 된 노예-부열傅說

어느 날 밤, 무정武丁은 꿈에 성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열說이라고 했다. 날이 밝자 무정은 꿈에서 만났던 성인의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여러 신하와 많은 관리들을 두루 살폈다. 그러나 이 성인을 닮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리하여 여러 관리들을 민간으로 보내 두루두루 찾게 했다. 마침내 부험傅險에서 열을 찾아냈다. 당시 열은 공교롭게도 징역을 사느라 부험에서 길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파견되었던 관리가 열을 데리고 무정 앞에 나타났다. 무정은 바로 이 사람이 열이라고 말했다. 열을 찾고 나서, 무정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성인임을 안 무정은 열을 가까이 두고 재상의 자리에 앉혔다. 은나라에는 멋진 정치가 펼쳐졌다. 이리하여 부험이라는 지명을 써서 열의 성으로 삼고 부열傅說이라..

오손烏孫에서 눈물 흘리며 시를 읊은 공주-세군細君

오손烏孫이 말 1천 필을 건네고 한나라 딸을 맞이하려고 하자, 한나라는 종실의 딸인 강도옹주江都翁主를 오손왕의 아내로 보냈고, 오손왕 곤모昆莫는 (그녀를) 우부인으로 삼았다. 烏孫以千匹馬聘漢女, 漢遣宗室女江都翁主往妻烏孫, 烏孫王昆莫以爲右夫人. 『사기史記』「대원열전大宛列傳」 한고조 유방 흉노를 치다가 포위되었는데, 어느 날 곤경에서 벗어나려 화친을 도모했네. 그때에도 날카로운 검 있었는데, 어찌하여 봉춘군을 죽일 이 없었던고. 漢帝西征陷虜塵, 一朝圍解議和親. 當時已有吹毛劍, 何事無人殺奉春. 서한의 개국 황제 고조 유방이 백등산에서 흉노의 선우單于 묵돌冒頓에게 밤낮 이레 동안 포위되었다가 겨우 빠져나와 조정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강대한 묵돌의 군대가 북쪽 변경을 걸핏하면 넘보는 상황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는 힘..

토번吐蕃으로 간 당나라의 화친공주-문성공주文成公主

나라의 기운이 한창 번성하던 시대에는 최고 통치자의 위세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그랬다. 그가 나라를 이끄는 힘이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우렁찼다. 당의 북쪽에 동서로 제법 큰 세력을 펼치던 동돌궐과 서돌궐도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네 해만에 무릎 꿇렸고, 십 년도 채 안 된 정관 9년(AD 635년)에는 당의 왼쪽 옆구리를 집적거리던 토욕혼土谷渾을 물리쳤다. 몇 해 뒤, 정관 12년(AD 638년)에는 송주松州(지금의 스촨성四川省 쑹판현松潘縣)에서 벌어진 큰 싸움에서 토번에게 큰 패배를 안겼다. 당시 송주를 미리 점령했던 토번의 군주는 쑹짼감뽀松贊干布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칭장고원靑藏高原에 여기저기 흩어진 부족들의 잦은 내란을 잠재우고 이들을 하나로 모아 왕국을 건설..

음악으로 평화 이룬 연주가-종의鍾儀

진晉 나라 군주 경공景公이 군대 안의 곳집을 시찰하다가 종의를 보자 곁에 있던 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쪽 지방의 모자를 쓴 저 죄수는 어떤 이인가?” 이 물음에 곁에 있던 관리가 대답했다. “정鄭 나라에서 바친 초楚 나라 죄인이옵니다.” 경공이 그를 풀어주며 곁으로 불러 위로했다. 종의는 머리를 조아리며 두 번 절을 올렸다. 경공이 초나라에 있는 그의 겨레붙이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악관이었습니다. 그러자 경공이 다시 물었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구려?” 晉侯觀于軍府, 見鍾儀, 問之曰 : “南冠而縶者, 誰也?” 有司對曰 : “鄭人所獻楚囚也.” 使稅之, 召而弔之. 再拜稽首. 問其族, 對曰 : “泠人也.” 公曰 : “能樂乎” 『좌전左傳』「성공9년成公九年」 옛적에 공자께서 진陳에 계실 때, 고..

광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으로 일어선 사나이-이연년李延年

이연년은 중산국中山國 사람이다. 그는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모두 다 광대였다. 이연년은 법을 어겨 부형腐刑을 받은 뒤 구감狗監 일을 맡았다. ……이연년은 노래에 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도 만들었다. 당시 황제는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음악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작정이었다. 이연년은 황제의 뜻을 잘 받들어 새로운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그의 누이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에 이연년은 2천 석의 인수를 차고 협성률로 불렸다. 李延年, 中山人也. 父母及身兄弟及女, 皆故倡也. 延年坐法腐, 給事狗中. …… 延年善歌, 爲變新聲, 而上方興天地祠, 欲造樂詩歌弦之. 延年善承意, 弦次初詩. 其女弟亦幸, 有子男. 延年佩二千石印, 號協聲律. 『사기史記』「영..

세상의 소리를 알았던 장님-사광師曠

진晉 나라 군주 평공平公이 대종을 주조한 뒤 악공들에게 그 소리를 듣게 하니 모두 음률이 고르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사광은 이렇게 아뢨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주조해야겠습니다.” 평공이 말했다. “다들 음률이 고르다고 하지 않소?” 사광이 다시 아뢨다. “훗날 음률을 아는 이가 있어 이 대종의 음률이 고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저는 임금께서 이 때문에 치욕스러울세라 염려합니다.” 晉平公鑄爲大鐘, 使工聽之, 皆以爲調矣. 師曠曰 : “不調, 請更鑄之.” 平公曰 : “工皆以爲調矣.” 師曠曰 “後世有知音者, 將知鐘之不調, 臣竊爲君耻之.” -『여씨춘추呂氏春秋』「중동기仲冬紀」 종자기 갑자기 세상을 뜨니, 유백아 역시 끝이로다. 거문고 줄 끊고 세상 사람과 멀리했네, 지음이 이로부터 사라졌다며. 호파가 줄..

하늘 오르려는 황제의 꿈을 이루어 준 황두랑黃頭郞-등통鄧通

서한의 문제가 꿈에 하늘로 오르려고 했지만 오를 수 없었다. 이때, 황두랑이 그를 뒤에서 밀어 하늘로 오르도록 해 주었다. 문제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살피니 옷의 등 뒤로 띠를 맨 곳의 솔기가 터져 있었다. 꿈에서 깬 문제가 점대漸臺로 가서 꿈속에서 자기를 하늘로 밀어올린 이를 남몰래 찾았다. 그런데 등통의 옷 뒤 솔기가 터졌는데,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孝文帝夢欲上天, 不能, 有一黃頭郞從後推之上天, 顧見其衣裻帶後穿. 覺而之漸臺, 以夢中陰目求推者郞, 卽見鄧通, 其衣後穿, 夢中所見也. -『사기史記』「영행열전佞幸列傳」 엄릉의 가난뱅이 등통이 굶어죽었네, 황제께서 어찌 도울 힘이 없었으랴. 대장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내치지 말게, 권세에 빌붙기 굳센 기상 버리네. 鄧通餓死嚴陵貧, 帝王豈是無人力. 丈夫未達莫..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위부인魏夫人과 정수鄭袖

회왕懷王이 화를 내며 명령을 내렸다. “코를 베어라.” 정수鄭袖는 앞서서 시종들에게 이렇게 일러두었다. “대왕께서 말씀이 있으면 반드시 그 뜻을 따라야 하오.” 시종이 칼을 뽑아 이 여인의 코를 베었다. 王怒曰 : “劓之.” 夫人先誡御者曰 : “王適有言, 必可從命.” 御者因揄刀而劓美人.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하內儲說下」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초회왕의 명령은 서슬이 퍼랬다. 군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쥐었던 그 시절에 감히 앞을 막아서는 자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그렇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한 여인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내린 명령이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초회왕은 전국시대 일곱 개의 강국 가운데 하나였던 초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