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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살기

나이 아흔 되니 지난 여든아홉 해를 잘못 살았음을 알았네. (年九十而知八十九非.) 한 세상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오로지하던 어떤 이가 세상 떠나기 즈음하여 스스로 지은 묘비명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 사람, 나이 여든에는 지난 날 되돌아보지 않았을라? 그렇다면 지난 일흔아홉 해를 깊이 뉘우쳤을 터이다. 하기야, 이 사람, 스스로 지었다는 이 말을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생각에 찾아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거백옥은 나이 쉰 되니 지난 마흔아홉 해를 잘못 살았음을 알았네. (蘧伯玉五十而知四十九非.) 춘추시대 거백옥蘧伯玉의 이야기로 '원도훈原道訓'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세상 온전히 잘 사는 이는 언제나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궤도 수정을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온전한 인격에 도달하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한 사랑-설도薛濤

마당에 오래된 오동나무 한 그루, 줄기가 구름 속까지 솟았네. 庭除一古桐, 聳干入雲中. 정원 오동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던 설운薛鄖이 문득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이제 겨우 여덟 살 난 그의 딸 설도薛濤가 아버지의 시에 금세 대구를 내놓았다. 가지는 이곳저곳 새 다 맞아들이고, 나뭇잎은 오가는 바람 다 배웅하네.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설운은 몹시 기뻤다. 어린 딸의 타고난 천재가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운은 자못 걱정스러웠다. 대구로 내놓은 시의 내용이 딸의 앞날을 스스로 예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사람됨이 강직하여 바른말을 마다 않던 설운이 조정 대신들의 미움을 받으며 사천 지방으로 폄적되었다. 집안 식구들은 번성하고 화려한 도성 장안을 떠나 산 넘고 물 ..

돈 세다 잠드소서

영주永州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수영을 익숙하고 능란하게 한다. 어느 날, 물이 갑자기 불어났는데도 대여섯 사람이 자그마한 배를 타고 상강湘江을 가로 건너고 있었다. 중간쯤 이르렀을 때, 그만 배가 파손되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건너편 기슭을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헤엄을 쳐도 평상시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를 본 그의 또래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 헤엄 솜씨는 알아주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뒤처지는가?” “엽전을 천 냥이나 허리에 찼더니 무거워서 뒤처지네.” “왜 버리지 않는가?” 그는 대답 대신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제 기슭에 닿은 또래가 그를 향해 목소리를 한껏 높여 내질렀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 손가락만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는 돌덩어리를 황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여 재물에 대한 탐욕이 적은 이를 찾아 신선으로 만들려고 했다. 골골샅샅 찾았지만 이런 이는 없었다. 커다란 바위를 황금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지만 모두 너무 작다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에게 신선은 돌덩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이 돌을 황금으로 만들어 네게 줄 것이니라.” 하지만 이 사람은 고개를 흔들며 필요 없다고 했다. 신선은 이 양반이 돌덩이가 작아서 그러는 줄 알고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저 바위를 황금으로 만들어 네게 줄 것이니라.” 그래도 이 양반은 고개를 흔들며 필요 없다고 일렀다. 신선은 재물에 대한 탐욕이 전혀 없는 이런 양반을 만나..

우아한 말싸움-장자莊子와 혜시惠施

초나라 위왕이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자에게 두둑한 예물을 들려 보내며 그를 맞아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장주는 웃으면서 초나라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은 굉장히 큰돈이외다. 또 재상은 정말 높은 자리외다. 그런데 그대는 제사지낼 때 쓰이는 소를 아예 못 보았단 말이오?” (楚威王聞莊周賢, 使使厚幣迎之, 許以爲相. 莊周笑謂楚使者曰 : “千金, 重利 ; 卿相, 尊位也.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가운데 한 부분이다. 한 가지 더 가져온다. 이번엔 '추수秋水' 의 마지막 단락이다.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濠水의 다리 위를 노닐다가 입을 열었다. “저 물고기가 참으로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으니, 이게 바로 저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그러자 혜자가 맞받았다. ..

알과녁을 맞힌 한 발의 화살과 훌륭한 말

자금子禽이 물었다.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까?" 묵자墨子가 대답했다. "두꺼비와 개구리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도 귀 기울이는 이 없네. 하지만 수탉은 날 샐 무렵 때 맞춰 울어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며 온갖 만상을 깨우네. 말 많은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때맞춰 하는 말이 중요하지." 춘추시대 말엽에서 전국시대 초엽에 걸쳐 살았던 농민 출신 사상가 묵자의 언행을 뒷날 제자들이 편찬한 저서 '부록' 가운데 한 부분이다. 말 많은 이와 함께하면 불안하다.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온누리에 가득한 듯하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입을 온전히 제대로 간직하며 침묵할 줄도 안다. 그러나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은 제 거짓을 참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입을 혹..

자객 섭정의 윗누이 섭영

전국시대 초기, 한韓 나라는 칠웅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소한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따르면 한나라도 신불해申不害가 펼친 개혁이 성공을 거두며 다른 제후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불해는) 학술로써 한나라 소후昭侯에게 유세하여 재상이 되었다. 그는 안으로는 정치와 교육을 바로 닦고 밖으로는 제후들을 상대하기를 열다섯 해 동안 했다. 결국 그가 자리에 있을 때 나라는 다스려지고 군대는 강하여 한나라를 쳐들어오는 자가 없었다. 속의 위 원문을 이어 붙인다. 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內修正敎, 外應諸侯, 十五年. 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칠웅의 자리에는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한나라도 제 몸 하나 간수하며 제법 어깨를 폈던 시기가 있..

부부의 기도

위衛 나라의 어떤 부부가 함께 기도를 했다. 먼저 아내가 간절히 바라며 빌었다. “저에게 시련을 거두어 주시고 그저 삼베 일백 필만 손에 쥐게 하소서.”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왜 겨우 그것뿐이오?” 이 물음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작은마누라 들일 테니까요.” '내저설하內儲說下'에서 가져왔다. 본성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그 일이 자기에게 미칠 이해관계부터 셈한다. 더구나 재물은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요물이다. 이 요물은 소망을 욕망으로 재빨리 바꾼다. 아니 욕망을 건너뛰어 탐욕의 키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키운다. 다른 한편, 참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재빨리 짚어내는 이 여인의 지혜를 지나칠 수 없다. 사랑 없는 ‘함께’..

참 용기

25년 봄, 제나라 최저崔杼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노魯 나라 북쪽 변경을 공격했다.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양공25년襄公二十五年'에서 앞 부분 두 문장만 가져왔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 장공莊公이 대부 최저의 아내와 남몰래 정을 통했다. 이를 안 최저는 계책을 세워 장공을 죽이고 그의 배다른 동생 저구杵臼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고 최저 자신은 스스로 재상 자리를 차지하고 제멋대로 조정을 오로지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임금을 죽였기에 자못 두렵고 불안했다. 이 사실을 사관이 그대로 역사에 기록하면 천고에 오명을 남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태사太史를 가만히 불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매하고 무능한 임금이 세상을 떠났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

우리말의 속살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힌 우리는 시각을 나타낼 때, '시'는 고유어와 짝을 이루고, '분'은 한자어와 짝을 짓는 데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한, 두, 세, 네, 다섯...열'은 '시'와 결합하고 '일, 이, 삼, 사, 오...십'은 '분'과 결합한다. 우리말에는 수를 나타내는 말에도 고유어와 한자어가 서로 짝을 이룬다. '한, 두, 세, 네...'는 고유어이며 '일, 이, 삼, 사...'는 한자어이다. 양을 셈하든 차례를 나타내든 고유어와 한자어가 함께한다. 대체로 '한, 두, 세, 네...'와 만나는 의존명사는 고유어인 경우에, '일, 이 삼, 사...'와 만나는 의존명사는 한자어인 경우에 결합한다. 예컨대,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로, '일 세, 이 세, 삼 세, 사 ..

산문 마당 2021.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