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33

스물넷에 사형당한 여류 시인 어현기魚玄機

서경의 도교 사원 함의관의 여도사 어현기는 장안의 광대 집안 딸로서 자는 유미이다. 그녀의 아리따운 용모는 임금이 혹할 만큼 뛰어났으며, 생각은 절묘하였다. (西京咸宜觀女道士魚玄機, 字幼微, 長安倡家女也. 色旣傾國, 思乃入神.) 당唐 나라 말엽 황보매黃甫枚가 편찬한 가운데 '어현기가 녹교綠翹를 매질로 죽이다' 꼭지에서 맨앞 두 문장을 가져왔다. 버들 푸른 빛 쓸쓸한 물가까지 이어지고,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는 멀리 누각 보이네. 물위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그림자, 꽃잎은 어옹의 머리 위로 떨어지네. 버드나무 뿌리는 물고기 숨는 곳, 나무밑동에는 객선이 묶였네. 비바람 소슬한 밤, 놀라 깨어나니 시름 더욱 깊어라. 翠色連荒岸, 烟姿入遠樓. 影鋪春水面, 花落釣人頭. 根老藏魚窟, 枝底繫客舟. 蕭蕭風雨夜, 驚夢復..

군주가 지켜야 할 도리

진晋 나라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어떻게 왕도를 펼쳐야 할까요?” 사광의 대답은 이러했다. “왕도를 펼치려면 청정 무위해야 하고 백성을 두루 아끼는 데 힘써야 하며 인재를 뽑아 써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널리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살펴야 합니다. 게다가 세상의 비속함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홀려서도 안 됩니다. 고요한 상태에서 멀리 바라보면 여러 사람 가운데 분명 돋보일 것입니다. 이어서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자주 살피면서 이로써 신하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주가 왕도를 펼치는 데 갖추어야 할 몸가짐입니다.“ 사광의 말을 다 들은 평공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훌륭하오!” 서한시대 문학가 유향劉向이 펼친 '군도君道'..

귀 둘 입 하나

송宋 나라에 사는 정 아무개는 집 안에 우물이 없어서 언제나 사람 하나를 두어 밖으로 나가서 물을 떠와야 했다. 그는 집 안에 우물을 파고서야 동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물을 파서 사람 하나 얻게 되었소." 이 말을 들은 이가 다른 사람 귀에 이렇게 전했다. "정 아무개가 우물을 파다가 사람 하나를 얻었대." 송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수군거렸다. 결국 나라님도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정 아무개 집으로 보내 사실을 알아보았다. 정 아무개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제 말은 우물을 파고 나니 밖으로 나가서 오로지 물만 길어 오던 사람에게 집안일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지, 우물 안에서 사람을 파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여불위呂不韋가 자신의 문객들과 함..

굶어 죽을 관상-허부許負의 예언

'당신은 세 해 뒤에 후侯에 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봉해진 지 여덟 해 뒤엔 장군과 승상에 임명되어 나라의 큰 권력을 오로지할 만큼 높은 자리에 앉을 터인즉, 대신들 가운데 당신과 겨눌 자가 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뒤 다시 아홉 해가 지나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서한의 개국 공신 주발周勃의 둘째아들 주아부周亞夫가 후로 봉해지지 않고 한낱 군수의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이 내린 관상쟁이로 널리 알려진 허부許負가 그의 관상을 보며 한 말이다. 위에 단 세 줄로 인용한 글은 '강후 주발 세가' 가운데 한 부분이다. 후작에 봉해지며 귀하게 될 인물이 굶어 죽다니.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그 까닭을 자세히 알려달라는 주아부의 요청에 허부는 그의 입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 얼굴 코..

포원蒲元의 지혜

에 이렇게 일렀다. 포원은 보통사람과는 달리 생각이 유달리 뛰어나고 재치가 있었다. 그가 사곡斜谷에 있을 때, 제갈량을 위하여 3천 자루나 되는 군도軍刀를 만들었다. 칼이 다 완성된 뒤에 이렇게 말했다. "한중漢中 지방의 물은 단물이기 때문에 담금질에 쓸 수 없고, 촉강蜀江의 물은 센물이기 때문에 쇠붙이의 정기를 모을 수 있소이다. 이런 구별은 하늘이 만든 것이오." 이리하여 그는 사람을 성도成都로 보내 그곳 촉강의 물을 떠오도록 했다. (이 사람이 돌아온 뒤) 그는 이 물로 담금질을 해 보고 이렇게 말했다. "부강涪江'의 물이 섞여서 담금질하는 데 쓸 수 없구려." 이 물을 떠온 이가 부강의 물이 섞였을 리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포원은 칼을 들어 물을 한 번 휘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강의 물이 여..

인화人和

군대를 부려 전투를 벌이려면 사람의 마음을 한데 뭉쳐 화합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한데 뭉쳐 화합하면 동원력을 내리지 않아도 뜻을 모아 작전에 참여한다. 만약 고급 장교들이 근거 없이 서로 의심한다면 사병들이 온 힘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계책도 받아들이지 않고 부하들은 불만을 터뜨리며 서로 상대방을 헐뜯게 된다. 이렇게 되면 탕湯이나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지혜와 계략으로도 보잘것없는 이 하나를 부너뜨릴 수 없는데 여러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제갈량諸葛亮이 펴낸 두 번째 권에서 '화인和人'을 몽땅 옮겨왔다. 어디 군대를 부려 전투를 벌이는 일만 그러하겠는가? 여러 사람이 마음으로 서로 뭉쳐 화합하지 못하면 제대로 될 일 어디 있겠는가? 화합하지 못하면 앞을 막아선 자그마한 언덕도 태산보다 높..

'장님'의 높임말이 '시각 장애인'?

춘추시대 진晉 나라 악사 사광師曠은 날 때부터 앞을 못 보았다. 그는 앞을 못 보았지만 당시 이 나라 군주 평공平公 앞에서도 거침없이 시비를 따지며 바른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한 편의 글을 쓰기에 넉넉한 글감이었다. 그런데 나는 첫 문장부터 속앓이를 해야 했다. "사광은 앞 못 보는 장님이었다." 한 편의 글을 위해 맨 앞에 내세운 이 문장에서 낱말 하나가 옹근 하루 내 속을 태웠다. '장님' 때문이었다. '장님'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게 속앓이의 머리였다. 먼저 국립국어원에서 인터넷에 올린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았다.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올림말 '장님'에 대한 풀이였다. '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세상에!', 가볍게 몸이 떨렸다. '소경'이나 '봉사'라는 낱말과 똑같..

산문 마당 2021.09.23

향기 넘치는 부부

밥상을 물리고 나면 (남편과 함께) 귀래당歸來堂에 앉아 차를 우렸다. 그러면서 가득 쌓인 책을 가리키며 어떤 전고典故가 어느 책 몇 권 몇 쪽 몇째 줄에 있는지 알아맞히기로 승부를 결정하여 차를 마시는 순서를 정했다. 맞히면 찻잔을 들고 크게 웃다가 가슴에 찻물을 쏟아 한 모급도 마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환경에서 한 평생을 지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비록 환난과 곤궁 속에 살지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북송과 남송 어름에 살았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의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청조는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사대부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열여덟 살에 스물한 살 난 태학생 조명성趙明誠과 북송의 도성 변경汴京에서 결혼했다. 때는 휘..

정사초鄭思肖의 지절

"어떤 놈이 흙을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는가?" "흙도 뿌리도 그리지 않고 잎과 꽃만 그렸으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떤 이의 이 물음에 정사초가 버럭 목소리를 높인 되물음이다. "아니, 어떤 놈이 흙을 다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호통이었다. 이 호통 속에는 원元에 나라를 내어준 송宋의 유민으로서의 애절하고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라가 망하자 그는 자기 이름까지 '사초思肖'로 바꾸었다. '초肖'는 '조趙'의 오른편을 취한 글자이다. 조씨가 세운 자기 조국 송宋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송을 세운 황제가 바로 '조광윤趙匡胤' 아닌가. 정사초의 지조와 절개가 서릿발이다. 그가 그린 국화 제시에도 무릎 꿇지 않으려는 그의 기개가 자못 오롯하다. 꽃이 피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