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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득호도難得糊塗

총명하기 어렵고 어리석기 어렵네. 총명함에서 어리석음으로 넘어가기는 더욱 어렵네. 한 수 내려놓고 한 발자국 물러나면, 그 자리에서 마음 편안하니, 훗날의 복 보답을 바라서가 아니라네. 聰明難, 糊塗難.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非圖後來福報也. 보고도 못 본 체해야 어른다울 때가 있다. 웬만하면 침묵이 금이다. 시청 뒷산에 올라 저 멀리 소백산 이어진 봉우리들이 이루는 느린 곡선을 바라보노라면 어른스러움은 ‘짐짓 어리석어지기’라는 믿음이 굳어진다. ‘컹!’, 기침 한 번이 백 마디 웅변보다 힘 있을 때도 있지 않은가. 이 경우 총명함과 어리석음의 차이는 백 지 한 장. 위 글은 18세기 청나라 때 서화가 정판교鄭板橋의 서화작품에서 데려왔다. 총명한 자가 어리석은 체할 수밖에 없었..

산문 마당 2022.09.25

사진 한 장

서태후 중국 쪽 사이트를 헤매다가 청淸 나라의 끝자락을 붙안고 권세를 오로지했던 서태후西太后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만난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이들도 함께 만난다. 안전을 지키는 이들이었을까, 아니면 외로움을 눅여주는 이들이었을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내 사진첩을 펼친다. 한 학급뿐인 시골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사진관으로 달려간 친구들이 어깨 겯고 찍은 사진에 눈길을 멈춘다. 누군들 외롭지 않았으랴만, 우리는 외롭지 않으려고 함께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이제 곧 십대를 끝내고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헤어지지 않으려고 함께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상품으로 받은 몇 권의 책을 탁자 위에 훈장처럼 펼쳐놓고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의 꿈까지 함께 꾸었다. 지금 이 사진을 펼치면, 사춘기를 막..

산문 마당 2022.09.25

우공이산愚公移山

태항太行과 왕옥王屋, 이 두 산은 둘레만 해도 7백 리요 높이는 8천 장丈이라, 본래부터 기주冀州 남쪽에서 하양河陽 북쪽 사이에 있다. 이곳 북쪽 산기슭에 큰 산을 마주하여 이제 아흔 살이 다 된 우공愚公이 살았다. 높은 산이 산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을 막아섰기에 나들이를 하려면 큰 산을 돌아서 가야했다. 이리하여 우공은 온 가족을 불러 의논했다. “이제 우리가 온 힘을 다 기울여 험한 산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면 예주豫州 남쪽으로 직통하고 한수漢水 남쪽에 다다를 수 있는데, 어떤가?” 모든 가족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찬성했는데 그의 아내는 의문을 제기했다. “당신 힘으로는 자그마한 언덕 괴보魁父도 어쩌지 못했는데, 태항산과 왕옥산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 수 있겠어요? 게다가 파낸 돌이랑 흙은 또 어떻..

산문 마당 2022.09.24

귀적의貴適意

장계응張季鷹이 제왕齊王의 동조속관東曹屬官으로 전임되었다. 그는 서울 낙양에서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자 고향 오중吳中의 나물 요리와 농어회가 먹고 싶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인즉, 내 어찌 고향에서 천리 밖 먼 곳까지 와서 벼슬을 하며 명성과 감투를 탐한단 말인가!” 이리하여 그는 수레에 올라 남쪽 고향 땅으로 돌아갔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식감識鑒」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 책에는 자기의 마음과 뜻에 맞는 생활을 추구한 위진 시대 선비들의 언행과 일화가 가득하다. ‘귀적의貴適意’, 곧 ‘제 뜻에 맞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개성적인 생활관을 이 시대 선비들은 힘써 좇는다. 하늘이 준 바탕에 따라 내 모습 그대로 사는 삶이야말로 정말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

산문 마당 2022.09.22

얼간이

송宋 나라의 어떤 이가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부동산 계약서를 주웠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것을 숨겨두고 여기에 기록된 부동산의 가치를 남몰래 셈해 보고는 이웃에게 이렇게 일렀다. “나도 부자 될 날이 머지않았네.” 『열자列子』「설부說符」에서 가져왔다. 이런 얼간이는 예나 이제나 저쪽이나 이쪽이나 두루 존재한다. 그러기에 선인들은 바른 길이 아니면 아예 갈 생각도 말라고 따끔하게 경계한다. 공자孔子도 ‘부귀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으면 가지지 않는다.’라고 우리에게 이른다. 지나친 욕망은 인간을 얼간이로 만든다. 욕망의 키가 절제의 키보다 높아지는 순간, 얼은 제 자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뱁새가 황새 되려고 마음먹지 않고, 황새가 뱁새에게 으스대는 일 없다. ..

산문 마당 2022.09.22

영광과 치욕

영광과 치욕의 주요한 차이, 그리고 안위安危와 이해利害의 일반적인 모습은 이러하다. 도의道義를 먼저 생각하고 이익을 나중에 헤아리면 영광을 얻고, 이익을 먼저 헤아리고 도의를 나중에 생각하면 치욕을 당한다. 영광을 얻은 이는 언제나 막힘이 없으며, 치욕을 당한 자는 언제나 떳떳하지 못하다. 막힘이 없는 이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떳떳하지 못한 이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영광과 치욕의 주요한 차이이다. 재능이 있고 신중한 이는 언제나 안전하게 이익을 얻지만 방탕하고 흉악한 이는 언제나 위험에 처하고 손해를 당한다. 안전하게 이익을 얻은 이는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지만 위험에 처하여 손해를 당하는 이는 언제나 우울한데다 위기까지 느낀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는 언제나 장수하지..

산문 마당 2022.09.21

전쟁 중에도 지켜진 예의-유방과 항우

영웅호걸이 천하를 두고 패권을 다툰 역사적 사건을 세 가지만 들라면, 중국인은 서슴없이 이렇게 손꼽는다.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초한전쟁, 조조 曹操, 유비劉備, 손권孫權의 대접전, 그리고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제스蔣介石의 이른바 국공내전. 역사는 미래를 내다볼 수는 있지만 기록은 지나간 시대와 역사가가 당면한 당대가 대상일 수밖에 없다. 사마천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 군주 영정贏政이 전국시대를 마무리하고 천하를 통일하며 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이른바 진시황제秦始皇帝.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군주의 자리에 올라 서른아홉 장년의 나이에 통일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된 그는 기원전 210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대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업적을 역사에 남겼다. 그러나 이런 업적이 통일 제국의 백성들..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 여인-마부의 아내

지금으로부터 2천 5백여 년 전, 남편의 잘못을 당당하게 지적하며 이혼을 요구한 여성이 있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성마저 알 수 없다. 마차를 몰았던 그녀의 남편 이름도 알려진 바 없다. 단지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관안열전管晏列傳」에 기록으로 남아 전할 뿐이다. 이 열전은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첫 번째 패자의 자리로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관중管仲과 역시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며 나라를 중흥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안영晏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열전의 두 중심인물 가운데 한쪽인 안영의 마부 이야기는 큰 물건에 끼워 파는 껌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만, 이름도 성도 알려지지 않은 수레 몰이꾼 부부의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다. 이 부분을 몽땅 가져온다..

묘서동처猫鼠同處

.猫 - 고양이 묘 .鼠 - 쥐 서 .同 - 함께(...하다) 동 .處 - 함께 지낼 처 -고양이와 쥐가 함께 지내다.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다는 뜻으로 쓰임. *전고 -에 '용삭龍朔 원년 11월에 낙양에 고양이와 쥐가 함께 지냈다. 쥐는 도적질할 때처럼 가만히 숨어지내고 고양이는 이놈을 잡아서 씹어먹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 둘이 함께 지냈으니, 도둑 잡는 직책을 가진 자가 자기 직분을 팽개치고 사악한 무리와 함께하는 꼴이었다.(龍朔元年十一月, 洛州猫鼠同處. 鼠隱伏象盜竊, 猫職捕嚙, 而反與鼠同, 象司盜者廢職容奸.) -말의 말 .고양이가 제 구실 못하면, 쥐는 제멋대로 설칠 수 있다. >아니 쥐가 오히려 고양이를 몰아세워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다. >쥐 잡으라는 직분을 저버린 고양이 ..

사자성어 & 말 2022.09.18

소이부답笑而不答

.笑 - 웃을 소 .而 - 말 이을 이(여기서는 '......면서'로 이어준다.) .不 - 아니 불/부 .答 - 대답할 답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을 뿐, 똑바로 마주보고 대답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난처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슬며시 피함을 이른다'고 덧붙임. *전고 -에, '노후魯侯는 자못 기뻤다. 뒷날 이를 공자께 말씀드렸더니, 공자께서는 빙긋이 웃을 뿐 대답하지는 않으셨다.'는 구절이 있으며, (魯侯大悅, 他日以告仲尼, 仲尼笑而不答.) -이백李白의 가운데,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느냐 묻기에/말없이 빙긋 웃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라는 구절이 있음(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말의 말 -이백의 경우, '난처한 질문'이라 대답 않고 슬며시 피한 것이 아닌 듯하다. >이 ..

사자성어 & 말 2022.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