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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둘 입 하나

송宋 나라에 사는 정 아무개는 집 안에 우물이 없어서 언제나 사람 하나를 두어 밖으로 나가서 물을 떠와야 했다. 그는 집 안에 우물을 파고서야 동네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물을 파서 사람 하나 얻게 되었소." 이 말을 들은 이가 다른 사람 귀에 이렇게 전했다. "정 아무개가 우물을 파다가 사람 하나를 얻었대." 송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수군거렸다. 결국 나라님도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정 아무개 집으로 보내 사실을 알아보았다. 정 아무개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제 말은 우물을 파고 나니 밖으로 나가서 오로지 물만 길어 오던 사람에게 집안일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지, 우물 안에서 사람을 파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여불위呂不韋가 자신의 문객들과 함..

굶어 죽을 관상-허부許負의 예언

'당신은 세 해 뒤에 후侯에 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봉해진 지 여덟 해 뒤엔 장군과 승상에 임명되어 나라의 큰 권력을 오로지할 만큼 높은 자리에 앉을 터인즉, 대신들 가운데 당신과 겨눌 자가 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뒤 다시 아홉 해가 지나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서한의 개국 공신 주발周勃의 둘째아들 주아부周亞夫가 후로 봉해지지 않고 한낱 군수의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이 내린 관상쟁이로 널리 알려진 허부許負가 그의 관상을 보며 한 말이다. 위에 단 세 줄로 인용한 글은 '강후 주발 세가' 가운데 한 부분이다. 후작에 봉해지며 귀하게 될 인물이 굶어 죽다니.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그 까닭을 자세히 알려달라는 주아부의 요청에 허부는 그의 입을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 얼굴 코..

포원蒲元의 지혜

에 이렇게 일렀다. 포원은 보통사람과는 달리 생각이 유달리 뛰어나고 재치가 있었다. 그가 사곡斜谷에 있을 때, 제갈량을 위하여 3천 자루나 되는 군도軍刀를 만들었다. 칼이 다 완성된 뒤에 이렇게 말했다. "한중漢中 지방의 물은 단물이기 때문에 담금질에 쓸 수 없고, 촉강蜀江의 물은 센물이기 때문에 쇠붙이의 정기를 모을 수 있소이다. 이런 구별은 하늘이 만든 것이오." 이리하여 그는 사람을 성도成都로 보내 그곳 촉강의 물을 떠오도록 했다. (이 사람이 돌아온 뒤) 그는 이 물로 담금질을 해 보고 이렇게 말했다. "부강涪江'의 물이 섞여서 담금질하는 데 쓸 수 없구려." 이 물을 떠온 이가 부강의 물이 섞였을 리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포원은 칼을 들어 물을 한 번 휘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강의 물이 여..

인화人和

군대를 부려 전투를 벌이려면 사람의 마음을 한데 뭉쳐 화합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한데 뭉쳐 화합하면 동원력을 내리지 않아도 뜻을 모아 작전에 참여한다. 만약 고급 장교들이 근거 없이 서로 의심한다면 사병들이 온 힘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계책도 받아들이지 않고 부하들은 불만을 터뜨리며 서로 상대방을 헐뜯게 된다. 이렇게 되면 탕湯이나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지혜와 계략으로도 보잘것없는 이 하나를 부너뜨릴 수 없는데 여러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제갈량諸葛亮이 펴낸 두 번째 권에서 '화인和人'을 몽땅 옮겨왔다. 어디 군대를 부려 전투를 벌이는 일만 그러하겠는가? 여러 사람이 마음으로 서로 뭉쳐 화합하지 못하면 제대로 될 일 어디 있겠는가? 화합하지 못하면 앞을 막아선 자그마한 언덕도 태산보다 높..

'장님'의 높임말이 '시각 장애인'?

춘추시대 진晉 나라 악사 사광師曠은 날 때부터 앞을 못 보았다. 그는 앞을 못 보았지만 당시 이 나라 군주 평공平公 앞에서도 거침없이 시비를 따지며 바른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한 편의 글을 쓰기에 넉넉한 글감이었다. 그런데 나는 첫 문장부터 속앓이를 해야 했다. "사광은 앞 못 보는 장님이었다." 한 편의 글을 위해 맨 앞에 내세운 이 문장에서 낱말 하나가 옹근 하루 내 속을 태웠다. '장님' 때문이었다. '장님'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게 속앓이의 머리였다. 먼저 국립국어원에서 인터넷에 올린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았다.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올림말 '장님'에 대한 풀이였다. '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세상에!', 가볍게 몸이 떨렸다. '소경'이나 '봉사'라는 낱말과 똑같..

산문 마당 2021.09.23

향기 넘치는 부부

밥상을 물리고 나면 (남편과 함께) 귀래당歸來堂에 앉아 차를 우렸다. 그러면서 가득 쌓인 책을 가리키며 어떤 전고典故가 어느 책 몇 권 몇 쪽 몇째 줄에 있는지 알아맞히기로 승부를 결정하여 차를 마시는 순서를 정했다. 맞히면 찻잔을 들고 크게 웃다가 가슴에 찻물을 쏟아 한 모급도 마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환경에서 한 평생을 지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기에 우리 부부는 비록 환난과 곤궁 속에 살지라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북송과 남송 어름에 살았던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의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청조는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사대부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뛰어난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열여덟 살에 스물한 살 난 태학생 조명성趙明誠과 북송의 도성 변경汴京에서 결혼했다. 때는 휘..

정사초鄭思肖의 지절

"어떤 놈이 흙을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는가?" "흙도 뿌리도 그리지 않고 잎과 꽃만 그렸으니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떤 이의 이 물음에 정사초가 버럭 목소리를 높인 되물음이다. "아니, 어떤 놈이 흙을 다 훔쳐갔다는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호통이었다. 이 호통 속에는 원元에 나라를 내어준 송宋의 유민으로서의 애절하고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라가 망하자 그는 자기 이름까지 '사초思肖'로 바꾸었다. '초肖'는 '조趙'의 오른편을 취한 글자이다. 조씨가 세운 자기 조국 송宋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송을 세운 황제가 바로 '조광윤趙匡胤' 아닌가. 정사초의 지조와 절개가 서릿발이다. 그가 그린 국화 제시에도 무릎 꿇지 않으려는 그의 기개가 자못 오롯하다. 꽃이 피어도 ..

남당의 서예가 서현의 '마침내'

남당南唐의 서현徐鉉은 소전小篆에 능했다. 그가 쓴 소전 작품을 햇빛에 비춰보면, 필획의 가운데에 한 가닥 짙은 먹물이 공교롭게도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필획이 구부러진 곳에도 짙은 먹물은 역시 한가운데에 있다. 필획 양쪽에 이 짙은 먹물이 치우치지 않았으니, 이는 필봉이 뒷걸음치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언제나 필획의 한가운데를 직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전 서법의 진정한 운필법이다. 서현이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왜편법歪匾法을 알아냈소." 대체로 소전은 보통 여위고 긴 것을 좋아한다. 절충하여 비스듬하고 평평한 운필법을 쓰는데,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서예가가 아니면 쓸 수 없다. 11세기 북송의 학자 심괄沈括이 펴낸 '서화書畵' 가운데 한 부분을 데려왔다. '늘그..

단점의 장점& 장점의 단점

제齊 나라 사신이 위魏 나라 도성 대량大梁에 왔다. 손빈孫臏은 형벌을 받은 신분으로 제의 사신을 남몰래 만나 자기 의견을 털어놓았다. 제나라 사신은 이 양반이 굉장한 인재임을 알아보고 몰래 자기 수레에 태우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가 그를 높이 평가하여 큰손님 대접하듯이 높여 대우했다. 전기는 걸핏하면 제나라 귀족 자제들과 큰돈을 걸고 경마를 즐겼다. 손빈은 이들 말의 실력이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고 이들을 상, 중, 하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그런 뒤,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일렀다. "이제 크게 지르십시오. 제가 어르신을 승리하게 만들겠습니다." 전기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제나라 왕공 귀족의 자제들과 경마를 벌이기로 하고 천금의 판돈을 걸었다. 경기에 임하기에 앞서 손빈은 전기에..

동아시아 최초의 여장군 부호富好

'부호富好'라는 이름은 상商 왕조 무정武丁 때의 갑골문에 보인다. 그녀는 살아생전에 제사를 주관했을 뿐만 아니라 정복 전쟁에도 참여하는 등 지위가 돋났다. 부호의 묘는 이른 시기 은허殷墟에 속하여 무정의 시기와 일치한다. 이 묘의 주인 부호는 당연히 무정의 배우자이다. 위의 글은 중국측 포털사이트 '소우거우[搜狗]'에서 가져왔다. 한평생 장렬한 삶을 살았던 이 사람 '부호富好', 3천 몇백 년 전, 세상을 떠나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던 이 여성을 다시 우리 눈앞에 불러낸 이도 또한 여성이다.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기 위하여 발굴 현장을 지휘하던 마흔일곱 살의 고고학자 정전샹鄭振香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던 서른세 살 부호를 우리 눈앞에 다시 불러낸다. 지금으로부터 3천 6백여 년 전, 그러니까 기원전 1..

간언에 귀 막은 군주

춘추시대 진陳 나라 영공靈公이 행실도 바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는 말도 당치 않은지라, 이 나라 대부 설야泄冶가 이렇게 간언했다. "우리 진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벌써 몇 차례나 고칠 것을 청하여 올렸지만 임금께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엄숙함과 장중함을 버리고 있습니다. 임금께서 백성을 교화함은 바람이 풀을 눕히는 것과 같아서 동풍이 불면 풀은 서쪽으로 눕고 서풍이 불면 풀은 동쪽으로 눕습니다. 결국 풀이 눕는 방향은 바람의 방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일거수일투족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부러진 나무가 어찌 곧은 그림자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임금께서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시면 그 이름을 보존하여 후세에 남길 수 없습니다."..

평민 유온劉媼의 꿈

전국시대 말엽, 진秦 나라 군주 영정贏政이 칠웅 가운데 최후의 승자가 되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시황제가 된 이후, 중국 역사에 이름을 올린 황제는 모두 4백여 명이다. 이 가운데 하잘것없는 평민 출신으로 황제가 된 이는 서한西漢을 연 유방劉邦과 명明 나라를 연 주원장朱元璋, 이 둘뿐이다. 절간에서 불목하니로 일하던 주원장이 원元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어선 홍건군에 참가함으로써 마침내 명나라의 개국황제가 된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만나려는 서한의 개국 황제 유방에 비하면 1천 년 하고도 5백 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기원전 256년 섣달 스무여드레, 전국시대 초楚 나라 땅 패풍沛豊에서 태어난 유방이 중국 역사상 평민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 유온의 간절..

무게 없는 말은 침묵보다 가볍나니

위衛 나라의 어떤 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다. 새댁은 수레에 오르자 마부에게 이렇게 물었다. "바깥쪽에서 달리는 말은 뉘 집 것이오?" "빌렸습니다." 그러자 새댁이 마부에게 이렇게 일렀다. "바깥쪽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해도 되지만 안쪽에서 달리는 말은 채찍질해선 안 되오." 수레가 신랑 댁 문간에 이르자 새댁은 들러리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렸다. 이때, 새댁이 들러리에게 이렇게 일렀다. "빨리 부엌의 불을 끄게, 자칫 불나겠네." 새댁이 이제 방에 들어가려는데, 마당에 놓인 돌절구가 눈에 들어오자, 이번에는 이렇게 일렀다. "이놈을 창문 아래로 옮기게, 오가는 이들에게 거치적거리겠네." 이 말을 들은 신랑 댁 어른들이 피식 웃었다. 새댁이 이른 세 마디는 하나같이 꼭 필요한 말이었지만 비웃음을 면치..

금덩어리만 눈에 보이니

지난날 제齊 나라에 황금을 손에 넣으려는 이가 있었다. 이 사람이 이른 아침에 옷 입고 모자 쓰고 저자로 나가서 황금을 파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틈을 타서 황금을 슬쩍 가지고 자리를 떴다. 그를 잡은 관리가 이렇게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거기 있었는데, 자넨 어떻게 다른 사람의 황금을 가져갈 생각을 했는가?" 그러자 이 사람을 이렇게 대답했다. "황금을 슬쩍 손에 넣을 때,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덩어리만 보입디다." 전국시대 정鄭 나라의 철학자 열어구列御寇의 저서 '설부說符' 마지막 단락에서 가져왔다. 이 부분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나 이제나 탐욕으로 이성을 잃은 자의 행태는 하나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열어구가 살았던 2천 4백여 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눈이 곧 마음

얼굴은 온몸의 주요 부분이며, 눈은 또 얼굴의 주요 부분이다. 관상을 보는 이는 언제나 얼굴부터 살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또 얼굴을 보는 데는 먼저 눈부터 살핀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깊은 뜻을 파고들며 연구하지는 않는다. 나는 관상을 보는 방법으로 반드시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잘 알아야 그 형체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형체'가 무엇인가? 바로 눈썹, 머리카락, 입, 이, 귀, 코, 그리고 손과 발 따위이다. 마음은 뱃속에 있는데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눈이 있으니 걱정 말라. 마음의 바름과 그름을 살피는 데 눈을 살피는 것보다 더 절묘한 방법은 없다." 17세기 청나라 때 극작가 이어李漁가 쓴 '성용부聲容部-미안眉眼'에서 ..

달콤한 아첨 멀리하기

추기鄒忌는 키가 여덟 자 남짓에 풍채가 의젓하고 용모도 준수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조복에 의관을 갖추고 거울 앞에 선 그가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 보기에 나랑 저쪽 마을에 사는 서공徐公이랑 누가 더 멋지오?" "그야 당신이 훨씬 멋지지요. 당신을 어떻게 서공과 겨눌 수 있겠어요?" 저쪽 마을에 사는 서공은 제齊 나라에서 이름을 날리는 미남자였기에 추기는 크게 자신하지 못하고 이제 그의 작은마누라에게 물었다. "나랑 저쪽 마을에 사는 서공이랑 누가 더 멋지오?" "당신을 어떻게 서공과 겨눌 수 있겠어요?" 다음날, 어떤 손님이 집으로 찾아와 추기와 함께 앉아 한담을 주고받았다. 그때, 추기는 이 손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랑 서공이랑 누가 더 멋지오?" "서공은 어른에게 상대가 되지 않지요..

프롤로그

역사에 커다란 공적을 세우며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을 우리는 앞세워 기린다. 그런데 이들 곁에는 곤경과 좌절로 비틀거리는 상대를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안심시키며 일으켜 세운 여성도 있다. 지혜와 총명에 더하여 따스한 모성이 곤경과 좌절에 빠진 남성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역사에 우뚝 세운 예를 역사는 기억한다. 이와는 달리 사람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짓을 저지른 여성도 없지 않다. 그 악랄함이 인간이 가야 할 길을 한참 벗어났기에 역사는 또 이들을 기억한다. 역사는 낮은 곳에서 한평생을 보냈던 인물을 높은 무대에 올려 부활시키기도 하지만, 살아생전 큰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못할 짓 마다않던 인물을 다시 무대에 올려 이들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안기기도 한다. 사마천의 도 다르지 않다. 사마천도 ..

난쟁이의 풍간諷諫

위衛 나라 영공靈公 때 미자하彌子瑕가 임금의 총애와 신임을 받으며 나라를 오로지했다. 어느 날, 어떤 난쟁이가 영공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꿈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영공이 물었다. "무슨 꿈을 꾸었소? 난쟁이가 대답했다. "아궁이를 보았는데, 결국 임금님을 뵙는군요." 이 말에 영공이 화를 내며 소리 높였다. "임금을 뵈려면 꿈에 태양을 본다는데, 어찌 꿈에 아궁이를 보고 과인을 만나려 한단 말이오?" 난쟁이가 임금의 말에 대답하여 입을 열었다.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면 물건 하나가 이를 막아설 수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나라 모든 사람을 두루 비춘다면 어느 한 사람이 임금님을 막아설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임금님을 만나려는 자는 꿈에 태양을 보는 것입니다. 만약 아궁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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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작성하고 블로그를 관리해보세요. 댓잎님의 회원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글은 비공개로 작성돼 있습니다. '편집'으로 내용을 바꾸시거나, 삭제 후 '새 글을 작성'하셔도 됩니다. 글 뿐만 아니라 블로그의 각종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블로그관리'를 확인해보세요. #2 다양한 스킨이 있어요. 티스토리에 있는 다양한 '스킨'도 살펴 보세요. 블로그나 사이트를 사용하는 목적에 맞게 스킨을 고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실 건가요? 잘 생각해 보시고, 마음에 드는 스킨을 고르세요. '스킨 편집'을 통해 다양한 커스텀, 그리고 홈 꾸미기를 적용하실 수도 있답니다. #3 포럼에서 사람들과 소통하세요. 마지막으로 사용하시다가 티스토리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포럼'을 확인하세요..

카테고리 없음 202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