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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사람 없다

예전에 공손룡公孫龍이 조趙 나라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능력이 없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교분을 맺지 않네.” 이때, 허름한 옷에 낡은 새끼로 허리를 동인 사람이 공손룡을 찾아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렇게 아뢨다. “저는 고함을 잘 지릅니다.” 이 말을 듣자 공손룡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 가운데 고함을 잘 지르는 자가 있느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공손룡은 이렇게 일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을 우리 곁에 머물도록 하고 이름을 명부에 올려라.” 며칠 뒤, 공손룡은 연燕 나라 임금에게 자기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길을 떠날 일이 생겼다. 황하에 이르러 강 양쪽을 오가며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는 배가 강 저쪽에 있음을 알았다. 고함을 잘 지르는 자를 불러 이 ..

지도와 함께하는 중국 역사(夏~元)

1. 하夏-중국 역사상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세습제 왕조(기원전 2070년경~기원전 1600년경) . 첫 번째 군주 우禹가 아들 계啓에게 군주의 자리를 물려줌으로써 세습제 시작 . 마지막 군주는 걸桀-궁중에 배를 저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주지酒池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미녀 후궁들과 술 마시며 즐겼다고 함.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를 만들어 냄. 왕후는 말희末嬉 ' 역사 기록-사마천의 '하본기' . 강역 2. 상商-중국 역사상 두 번째 세습 왕조(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경) . 상탕商湯이 세운 나라 . 이 나라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으나 반경盤庚이 은殷으로 옮기며 중흥을 이루기 시작함. . 이 때문에 이 나라를 은 또는 은상이라고 이름. . 마지막 군주는 주紂, 왕비는 달기妲己. . 달기는 ..

곧은길이나 질러가는 길보다 더 편리한 길은 없다. 그러나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은 없다. 대체로 새롭고 독특함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곁문을 내어 집안 식구들이 드나들기에 편리하도록 한다.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닫아서 아담하고 우아한 운치를 살리면서 실제 생활의 쓰임을 모두 갖추도록 했다. 『한정우기閑情偶寄』「거실부居室部」〈방사제일房舍第一〉가운데 ‘도경途徑’ 꼭지 전문을 몽땅 데려왔다. 구불구불 곡선으로 그려진 길이 우리가 걸었던 길의 원형이다. 길은 원형을 허물고 변형으로 치닫기를 결코 소망하지 않았지만 곡선의 부드러움과 정겨움을 허문 이는 인간이었다. 길의 원형을 허물기 시작한 인간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

알파고의 무례無禮

그러기에 사람이 예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예가 없으면 이룰 수 없고, 국가도 예가 없으면 안정될 수 없다. (故人無禮則不生, 事無禮則不成, 國家無禮則不寧.) '수신修身'에서 가져왔다. 나는 바둑의 고수라는 중국의 커제柯潔가 알파고에게 세 번이나 잇달아 진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키득키득 한참이나 웃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바둑 고수 이세돌李世乭이 커제에 앞서 붙은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한 판 이겼다고는 하지만, 이는 바둑의 역사에서 마지막이 될 결과임에 분명하다. 나는 이런 대국을 세기의 대국이라 널리 알리며 자기 회사 선전에 열을 올리는 구글이 정말 염치없는 짓을 한다며 혀를 찼다. 염치없는 짓이란 바로 타자에 대한 예의를 잃은 행동을 낮잡아 이를 때 ..

내홍內訌

동물 가운데 훼虺라는 독사는 한 몸에 두 개의 입이 달렸다. 이놈이 먹을 것을 두고 다투느라 서로 물어뜯으며 싸웠다. 결국 이 두 개의 입이 서로 잔인하게 물어뜯다가 자기를 죽이고 말았다. 신하들이 권력과 이익을 더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나니, 이는 모두 독사 훼와 다름이 없다. '설림하說林下'에서 가져왔다. 한 나라나 집단 안에서 그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이 외부의 적과 벌이는 싸움보다 더 위험하다. 내홍으로 입은 상처는 쉬 아물지 않는다. 통증은 오래가고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부른다. 분단 때문에 치러야 했던 싸움으로 더 깊은 분단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현대사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조정래 선생의 엔 '분단과 전쟁'이 앞서고 '전쟁과 분단'이 그 뒤를 잇는 꼭지로 엮어진다..

황제가 사랑한 여인-이사사李師師

"폐하께서는 귀하신 천자의 몸, 못 하실 일 없사오니, 그저 뜻대로 마음껏 즐기소서." 북송의 여덟 번째 황제 휘종徽宗을 곁에서 모시던 간신 고구高俅가 이렇게 부추겼다. 그러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함께 근질근질하던 휘종은 흥성거리는 저자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짐이 궁궐에 갇혀 일반 백성이 어떻게 즐기는지 모르니, 오늘 이들이 사는 저자에 한 번 나가고 싶소." 간신은 예나 이제나 나라의 안녕보다는 황제의 굄을 차지하여 제 이익을 손에 넣는 데 온갖 힘을 쏟는다. 고구는 서생의 의복을 즉시 휘종 앞에 내놓았다. 미복을 입은 이들 일행이 궁문을 빠져나와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어둠이 내리자 이른 곳은 금환항金環巷, 북송의 도성 변경汴京(지금의 허난성 카이펑開封)에서도 기녀가 남자들을 맞아들이는 집들이 잇대..

꽃밭에는 꽃들이

1. 범의꼬리 범의꼬리 아랫쪽 주황색 꽃은 금잔화. 우리집 꽃밭의 꽃들은 서로 견주며 잘난 체하지 않는다. 2. 꿩의비름 몇 년 전, 이웃집 새댁이 준 몇 포기가 이제는 꽃밭 여기저기 뿌리를 내리며 번졌다. 향기가 좀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욕심을 내다가도, 꿩의비름 자신은 이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을 텐데, 하고 내 욕심을 나무란다. 3. 윤판 친구들은 이미 한 해를 마무리했는데, 이 한 송이가 마지막 가는 세월을 지켜보려는 듯이 홀로 피었다. 여러 해 전, 안동 봉정사 앞 찻집에서 딱 한 뿌리 얻어다 심은 이 꽃이 이제는 꽤 번졌다. 이 꽃을 볼 때면, 찻집 주인의 넘치는 기품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오늘 '윤판'으로 검색하니 '윤판나물'이 열린다. 이 꽃과는 전혀 다르다. 휴대폰으로 검색해도 ..

생활 속에서 2021.10.25

본성本性

검중黔中이란 자가 제齊 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그런데 이 양반, 뇌물을 좋아하다가 쫓겨나 생활이 곤궁하게 되자 환룡豢龍 선생을 찾아가서 이렇게 아뢨다. “소인이 재물을 탐내다가 지금 이렇게 벌을 받느라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른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다시 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는 뇌물을 챙기다가 다시 파면되었다. 그러자 환룡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현석玄石이란 자가 술을 좋아하다가 과음하여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지. 오장은 불에 쐰 듯 말라버리고 살과 뼈는 수증기를 쬔 듯 갈라졌는데, 온갖 약을 써도 되지 않았지. 사흘이나 지나서야 겨우 주독이 풀리자 곁에 있는 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지. -이제 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작정이네...

새콤달콤-가을 냉이 무침

1. 씻기 >여러 번 깨끗이 씻기-초벌을 깨끗이 씻어야 데친 후 찬물에 두 번만 씻어 진한 향을 살릴 수 있다. 2. 물 끓이기 >물을 넉넉히 붓고 팔팔 끓으면 소금을 한 큰 스푼 넣은 뒤 냉이를 뿌리부터 넣는다.(냉이 100g 당 물 한 컵) 3. 데치고 씻기 >냉이가 알맞게 데쳐지도록 위 아래로 뒤집어 준다>>> 5분 정도 데친 뒤 찬물에 재빨리 씻어준다.....알맞게 데쳐야만 질기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4. 물 빼기와 썰기 >손으로 살짝 눌러서 물을 빼내고 듬성듬성 썬다. 5. 양념 만들기 >고춧가루, 고추장, 무우청, 매실청, 집 간장, 소금을 넣고 잘 섞어준 뒤, 다진 마늘, 다진 파를 넣고 다시 한 번 섞는다. >냉이 400g 당...고추장 1 큰술, 고춧가루 2 큰술, 다진 마늘 2..

생활 속에서 2021.10.22

생강生薑에서 꽃이......

생강은 여러해살이풀로 소개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월 하순 봄에 심어 서리 내릴 무렵 시월에 추수하기에 한해살이풀로 알기 십상입니다. 생강은 뿌리가 맵고 향기가 있어서 흔히 향신료로 쓰입니다. 그 밖에 생강은 천식을 완화시키고 목감기를 낫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생강의 잎과 줄기도 알싸하고 향긋합니다. 김장에 약간 넣어 겨울 김장의 풍미를 높이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뿌리를 여러가지로 이용합니다. 자, 그런데 생강 줄기 곁에 꽃대궁이 올라왔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대궁이. 십 년 넘게 생강을 길러보았지만, 꽃대는 처음 봅니다. 물론 꽃도 본 적 없고요. 아열대 식물이기 때문이겠지요, 추위에 약한 것이. 밤에는 부직포로 덮었다가 해 뜨면 벗겨주며, 꽃 핀 모습..

생활 속에서 2021.10.21

제대로 살기

나이 아흔 되니 지난 여든아홉 해를 잘못 살았음을 알았네. (年九十而知八十九非.) 한 세상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오로지하던 어떤 이가 세상 떠나기 즈음하여 스스로 지은 묘비명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 사람, 나이 여든에는 지난 날 되돌아보지 않았을라? 그렇다면 지난 일흔아홉 해를 깊이 뉘우쳤을 터이다. 하기야, 이 사람, 스스로 지었다는 이 말을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생각에 찾아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거백옥은 나이 쉰 되니 지난 마흔아홉 해를 잘못 살았음을 알았네. (蘧伯玉五十而知四十九非.) 춘추시대 거백옥蘧伯玉의 이야기로 '원도훈原道訓'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세상 온전히 잘 사는 이는 언제나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궤도 수정을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온전한 인격에 도달하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한 사랑-설도薛濤

마당에 오래된 오동나무 한 그루, 줄기가 구름 속까지 솟았네. 庭除一古桐, 聳干入雲中. 정원 오동나무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던 설운薛鄖이 문득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이제 겨우 여덟 살 난 그의 딸 설도薛濤가 아버지의 시에 금세 대구를 내놓았다. 가지는 이곳저곳 새 다 맞아들이고, 나뭇잎은 오가는 바람 다 배웅하네.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설운은 몹시 기뻤다. 어린 딸의 타고난 천재가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운은 자못 걱정스러웠다. 대구로 내놓은 시의 내용이 딸의 앞날을 스스로 예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사람됨이 강직하여 바른말을 마다 않던 설운이 조정 대신들의 미움을 받으며 사천 지방으로 폄적되었다. 집안 식구들은 번성하고 화려한 도성 장안을 떠나 산 넘고 물 ..

돈 세다 잠드소서

영주永州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수영을 익숙하고 능란하게 한다. 어느 날, 물이 갑자기 불어났는데도 대여섯 사람이 자그마한 배를 타고 상강湘江을 가로 건너고 있었다. 중간쯤 이르렀을 때, 그만 배가 파손되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건너편 기슭을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헤엄을 쳐도 평상시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를 본 그의 또래가 이렇게 물었다. “자네 헤엄 솜씨는 알아주는데, 오늘은 어찌하여 뒤처지는가?” “엽전을 천 냥이나 허리에 찼더니 무거워서 뒤처지네.” “왜 버리지 않는가?” 그는 대답 대신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제 기슭에 닿은 또래가 그를 향해 목소리를 한껏 높여 내질렀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 손가락만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그는 돌덩어리를 황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여 재물에 대한 탐욕이 적은 이를 찾아 신선으로 만들려고 했다. 골골샅샅 찾았지만 이런 이는 없었다. 커다란 바위를 황금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지만 모두 너무 작다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에게 신선은 돌덩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이 돌을 황금으로 만들어 네게 줄 것이니라.” 하지만 이 사람은 고개를 흔들며 필요 없다고 했다. 신선은 이 양반이 돌덩이가 작아서 그러는 줄 알고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저 바위를 황금으로 만들어 네게 줄 것이니라.” 그래도 이 양반은 고개를 흔들며 필요 없다고 일렀다. 신선은 재물에 대한 탐욕이 전혀 없는 이런 양반을 만나..

우아한 말싸움-장자莊子와 혜시惠施

초나라 위왕이 장주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자에게 두둑한 예물을 들려 보내며 그를 맞아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장주는 웃으면서 초나라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금은 굉장히 큰돈이외다. 또 재상은 정말 높은 자리외다. 그런데 그대는 제사지낼 때 쓰이는 소를 아예 못 보았단 말이오?” (楚威王聞莊周賢, 使使厚幣迎之, 許以爲相. 莊周笑謂楚使者曰 : “千金, 重利 ; 卿相, 尊位也.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가운데 한 부분이다. 한 가지 더 가져온다. 이번엔 '추수秋水' 의 마지막 단락이다.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濠水의 다리 위를 노닐다가 입을 열었다. “저 물고기가 참으로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으니, 이게 바로 저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그러자 혜자가 맞받았다. ..

알과녁을 맞힌 한 발의 화살과 훌륭한 말

자금子禽이 물었다.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까?" 묵자墨子가 대답했다. "두꺼비와 개구리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도 귀 기울이는 이 없네. 하지만 수탉은 날 샐 무렵 때 맞춰 울어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며 온갖 만상을 깨우네. 말 많은 게 무슨 소용 있겠는가? 때맞춰 하는 말이 중요하지." 춘추시대 말엽에서 전국시대 초엽에 걸쳐 살았던 농민 출신 사상가 묵자의 언행을 뒷날 제자들이 편찬한 저서 '부록' 가운데 한 부분이다. 말 많은 이와 함께하면 불안하다. 진군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온누리에 가득한 듯하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입을 온전히 제대로 간직하며 침묵할 줄도 안다. 그러나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은 제 거짓을 참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입을 혹..

자객 섭정의 윗누이 섭영

전국시대 초기, 한韓 나라는 칠웅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소한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따르면 한나라도 신불해申不害가 펼친 개혁이 성공을 거두며 다른 제후국들이 함부로 넘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불해는) 학술로써 한나라 소후昭侯에게 유세하여 재상이 되었다. 그는 안으로는 정치와 교육을 바로 닦고 밖으로는 제후들을 상대하기를 열다섯 해 동안 했다. 결국 그가 자리에 있을 때 나라는 다스려지고 군대는 강하여 한나라를 쳐들어오는 자가 없었다. 속의 위 원문을 이어 붙인다. 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內修正敎, 外應諸侯, 十五年. 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칠웅의 자리에는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한나라도 제 몸 하나 간수하며 제법 어깨를 폈던 시기가 있..

부부의 기도

위衛 나라의 어떤 부부가 함께 기도를 했다. 먼저 아내가 간절히 바라며 빌었다. “저에게 시련을 거두어 주시고 그저 삼베 일백 필만 손에 쥐게 하소서.”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 “왜 겨우 그것뿐이오?” 이 물음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작은마누라 들일 테니까요.” '내저설하內儲說下'에서 가져왔다. 본성이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그 일이 자기에게 미칠 이해관계부터 셈한다. 더구나 재물은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요물이다. 이 요물은 소망을 욕망으로 재빨리 바꾼다. 아니 욕망을 건너뛰어 탐욕의 키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키운다. 다른 한편, 참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재빨리 짚어내는 이 여인의 지혜를 지나칠 수 없다. 사랑 없는 ‘함께’..

참 용기

25년 봄, 제나라 최저崔杼가 군사를 이끌고 우리 노魯 나라 북쪽 변경을 공격했다. 여름 5월 을해일에 최저가 자기 임금을 죽였다. '양공25년襄公二十五年'에서 앞 부분 두 문장만 가져왔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 장공莊公이 대부 최저의 아내와 남몰래 정을 통했다. 이를 안 최저는 계책을 세워 장공을 죽이고 그의 배다른 동생 저구杵臼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리고 최저 자신은 스스로 재상 자리를 차지하고 제멋대로 조정을 오로지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임금을 죽였기에 자못 두렵고 불안했다. 이 사실을 사관이 그대로 역사에 기록하면 천고에 오명을 남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태사太史를 가만히 불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매하고 무능한 임금이 세상을 떠났으니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

우리말의 속살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힌 우리는 시각을 나타낼 때, '시'는 고유어와 짝을 이루고, '분'은 한자어와 짝을 짓는 데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한, 두, 세, 네, 다섯...열'은 '시'와 결합하고 '일, 이, 삼, 사, 오...십'은 '분'과 결합한다. 우리말에는 수를 나타내는 말에도 고유어와 한자어가 서로 짝을 이룬다. '한, 두, 세, 네...'는 고유어이며 '일, 이, 삼, 사...'는 한자어이다. 양을 셈하든 차례를 나타내든 고유어와 한자어가 함께한다. 대체로 '한, 두, 세, 네...'와 만나는 의존명사는 고유어인 경우에, '일, 이 삼, 사...'와 만나는 의존명사는 한자어인 경우에 결합한다. 예컨대,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로, '일 세, 이 세, 삼 세, 사 ..

산문 마당 2021.10.07

밤 쪄서 보관하는 방법

삶은 밤, 특유의 구수한 맛에 단맛까지 살짝 더하여 한겨울 지나 봄이 되어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자, 따라만 하셔요. 낱알도 상하지 않고 맛도 그대로 유지하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1. 먼저 깨끗이 씻습니다. 물 위에 뜨는 놈은 벌레 먹었거나 상했으니 그냥 버리셔요. 2. 압력솥을 이용하셔요. 물은 8부 정도. 3. 추가 흔들리기 시작한 뒤 약 20분 후에 불을 끄셔요. 그리고 약 10분 동안 뜸을 들이셔요. 4. 뜨슨 기운 없이 완전히 식히셔요. 5. 지퍼백에 넣어서 냉동 보관하셔요. 6. 몇 달 뒤, 세 발 달린 스텐리스 채반에 담아 한 번 더 찝니다. 맛, 짱!

생활 속에서 2021.10.06

효빈效嚬

공연 중에 이루어지는 상투적인 스타일은 가지각색이라 하나하나 다 셀 수 없는데, 참으로 격이 낮고 속된 내용을 어느 한 사람이 연출하고 나면 수많은 이들이 이를 본받아 표준으로 굳어지니,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로다! 17세기 청淸 나라 극작가 이어李漁의 '연습부演習部' 가운데 한 부분이다. 그가 ‘괴이쩍은 일’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도 여러 사람의 눈길을 받는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단지 이들의 비속한 행동이 미칠 부정적인 결과를 염려했음이 분명하다. 옛적 초楚 나라 영왕靈王이 몸매 가는 사람 좋아하자 이 나라 사대부들이 먹을 것 덜 먹으며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물론 온 나라 백성들이 이를 본받아 굶어죽더라도 몸매 날씬해지기를 간..

재물에 눈먼 사나이 석숭石崇의 끝장

석숭石崇의 자는 계륜季倫으로 청주靑州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제노齊奴였다. 어려서부터 기민하고 총명했으며 담력에다 지혜까지 갖추었다. 그 아비 석포石苞가 죽을 때가 되어 재산을 나누어 여러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오직 석숭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곁에 있던 석숭의 어미가 불평을 하자 아비인 석포는 이렇게 일렀다. “이 아이가 지금은 비록 아무것도 없지만 뒷날 제 힘으로 뜻을 이룰 거외다.” 崇字季倫, 生于靑州, 故小名齊奴, 少敏惠, 勇而有謀. 苞臨終, 分財物與諸子, 獨不及崇. 其母以爲言, 苞曰 : “此兒雖小, 後自能得. '열전3列傳三' 화려했던 옛 일은 향이 남긴 재 따라 사라지고, 흐르는 물은 무정해도 풀은 절로 봄일세. 해질녘 봄바람에 새소리 애처롭게 들리는데, 흩날리는 꽃잎은 누대에서 ..

역시 사람이다

환공桓公이 마구간을 돌보는 관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가장 어렵소?” 마구간을 돌보는 관리가 미처 대답을 못하자 관중管仲이 입을 열었다. “저 관이오管夷吾가 일찍이 말을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마구간의 울짱을 겯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먼저 굽은 나무를 써서 결으면 또 굽은 나무를 써서 결어야 합니다. 이렇게 굽은 나무로 결으면 나중에는 곧은 나무는 쓸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먼저 곧은 나무를 써서 결으면 또 곧은 나무를 써서 결어야 합니다. 이렇게 곧은 나무로 결으면 나중에는 굽은 나무가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관자管子』「소문小問」에서 한 단락 데려왔다. 역시 사람이다. 굽은 나무를 재상 자리에 앉혔더니 줄줄이 알사탕 엮듯이 재상 아래로 참모들 모두 ..

끝나지 않는 아픔

그대 없이 한식을 맞으니, 눈물이 금빛 물결처럼 쏟아지네. 달 속 계수나무 잘라내면, 달빛 더욱 깨끗하고 맑으리. 헤어질 때 밝은 달빛 흩뿌렸는데, 그대 지금 이마 찌푸리고 있겠지. 견우직녀는 이별에 시름겨워도, 기약한 날 그래도 은하를 건너겠지. 無家對寒食, 有淚如金波. 斫却月中桂, 淸光應更多. 仳離放紅蕊, 想像嚬靑蛾. 牛女漫愁思, 秋期猶渡河. 당나라 때의 천재시인 두보杜甫의 전문이다. 고향 떠난 지 1백 일 하고도 닷새가 된 어느 날 밤, 달 마주하며 보고픈 이 그리는 두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예나 이제나 저쪽이나 이쪽이나 우리에게 아픔을 한 아름 안긴다. 일천 몇 백 년 전, 두보도 사랑하는 처자식과 헤어진 지 석 달 넘은 어느 날 밤, 달을 바라보며 이렇게 그리움..

한단학보邯鄲學步

그대는 연燕의 수릉壽陵에 사는 어떤 젊은이가 조趙의 서울 한단邯鄲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한단에 가서 이들의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결국 이 젊은이는 조나라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자기 걸음걸이 자세마저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땅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네. 「추수秋水」가운데 한 부분이다. 학문과 변론은 물론 사상가로서도 당대 최고라고 자부하던 조나라 사람 공손룡公孫龍에게 위魏 나라 공자 위모魏牟가 들려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공손룡이 그만 벌렸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칼날이 번득이고 피가 튀던 전국시대에 (이런 글을 남긴 장자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연나라 수릉의 이 젊은..

알묘조장揠苗助長

송宋 나라의 어떤 농부가 자기가 심은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어린 농작물을 하나하나 살짝 들어올렸다. 피곤했지만 만족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참 피곤하오. 내가 어린 농작물 싹이 잘 자라도록 좀 도와주었소.” 아들이 급히 달려가 살피니, 어린 싹은 벌써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공손추상公孫丑上'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이곳 한국 땅에는 옛적 이 농부처럼 제 자식을 다루는 부모가 있다, 아니 많다. 2천 몇백 년 전,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도 알묘조장하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한탄했지만, 이제 좀 가만히 두시라, 자식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오로지 자연의 이치 따라 그냥 북돋아 주면 될 일이다. 엄동설한이 아무리 매서워도 오는 봄 앞에 무릎 꿇는 이..

목불견첩目不見睫

동해의 신 약若이 푸른 모래톱에 놀러 나왔다가 우강禺强도 만났다. (이날, 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의 순찰에) 조개와 물고기 들이 나와 서열에 따라 늘어서서 알현했다. 기夔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때, 기의 모습을 본 자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소?” 기의 물음에 자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껑충껑충 뛰는 모습이 우습소이다. 그러다가 넘어질세라 걱정이오.” 그러자 기는 이렇게 되받았다. “제 걱정 접어두고 이 몸 걱정해 줘서 고맙소만, 참, 걱정도 팔자로소이다. 네 발로 길을 가면서도 제 몸 하나 건사 못 해 절뚝거리면서 내 걱정을 하며 키득거리니 말이오.” 먼저, 이 글에 등장하는 '약若'은 다르게 '해약海若'이라고도 하며 중국 옛 신화 속의 '해신海神'을 말한다. 또 이 글이 두 번째 등장인물 '우강禺..

스물넷에 사형당한 여류 시인 어현기魚玄機

서경의 도교 사원 함의관의 여도사 어현기는 장안의 광대 집안 딸로서 자는 유미이다. 그녀의 아리따운 용모는 임금이 혹할 만큼 뛰어났으며, 생각은 절묘하였다. (西京咸宜觀女道士魚玄機, 字幼微, 長安倡家女也. 色旣傾國, 思乃入神.) 당唐 나라 말엽 황보매黃甫枚가 편찬한 가운데 '어현기가 녹교綠翹를 매질로 죽이다' 꼭지에서 맨앞 두 문장을 가져왔다. 버들 푸른 빛 쓸쓸한 물가까지 이어지고,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는 멀리 누각 보이네. 물위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그림자, 꽃잎은 어옹의 머리 위로 떨어지네. 버드나무 뿌리는 물고기 숨는 곳, 나무밑동에는 객선이 묶였네. 비바람 소슬한 밤, 놀라 깨어나니 시름 더욱 깊어라. 翠色連荒岸, 烟姿入遠樓. 影鋪春水面, 花落釣人頭. 根老藏魚窟, 枝底繫客舟. 蕭蕭風雨夜, 驚夢復..

군주가 지켜야 할 도리

진晋 나라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어떻게 왕도를 펼쳐야 할까요?” 사광의 대답은 이러했다. “왕도를 펼치려면 청정 무위해야 하고 백성을 두루 아끼는 데 힘써야 하며 인재를 뽑아 써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널리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살펴야 합니다. 게다가 세상의 비속함에 물들어서는 안 되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홀려서도 안 됩니다. 고요한 상태에서 멀리 바라보면 여러 사람 가운데 분명 돋보일 것입니다. 이어서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자주 살피면서 이로써 신하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주가 왕도를 펼치는 데 갖추어야 할 몸가짐입니다.“ 사광의 말을 다 들은 평공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훌륭하오!” 서한시대 문학가 유향劉向이 펼친 '군도君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