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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화살 맞아 쓰러진 개혁-오기吳起

인정 없고 모진 사나이 오기吳起 기원전 440년, 전국시대 초엽, 위衛 나라에서 태어난 오기는 부잣집 도령으로 세상물정 모르고 호강스럽게 자랐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큰 벼슬을 얻으려고 유세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려버렸다. 마을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자 그는 자기를 비웃으며 헐뜯은 이웃을 서른 명이나 죽이고 위나라 동쪽 성문을 빠져나와 몸을 피했다. 이때, 그가 어머니에게 하직하며 맹세한 장면이「손자·오기열전」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오기는) 자기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제 팔을 물어뜯으며 맹세하여 아뢨다. “저는 공경이나 재상이 되지 않으면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與其母訣, 齧臂而盟曰 : “起不爲卿相, 不復入衛.”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위나라 동..

장군이 된 장마당 관리인-전단田單

열기 기원전 284년, 악의樂毅가 이끄는 연燕 나라 군대가 제나라 국경을 넘어 도성 임치臨淄까지 손에 넣었다. 당시 연나라 군주는 소왕昭王. 그는 스물세 살의 나이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날부터 이웃 제나라를 무릎 꿇릴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요 선왕인 연왕쾌燕王噲가 제나라의 침공으로 당한 아픔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전국시대 다른 어떤 제후국과 마찬가지로 계획의 출발은 인재 영입이었다. 아경亞卿으로 발탁된 위魏 나라 출신 악의가 연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선 데에는 소왕이 기울인 인재 영입이 열매를 맺은 결과였다. 당시 제나라 군주는 민왕湣王, 자리에 오른 지 열일곱 해 되는 해였다. 그도 어질고 착한 신하를 멀리하고 달콤한 말로 꾀는 간신을 가까이 둠으로써 불행한 끝장을 맞은 여느 군..

굶어죽은 군주-제환공齊桓公

환공, 관중을 받아들이다 사실 관중은 환공桓公 편이 아니었다. 환공이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 전, 그는 공자 소백小白이었다. 곁에는 배다른 형 공자 규糾가 있었다. 군주는 양공襄公, 이들의 형이었다. 함께 살려면 자기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해 품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양공은 그러하지 않았다. 이웃 노나라 환공을 술에 취하게 만든 뒤 주살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부인과 가만히 정을 통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행동거지가 수시로 변하는 양공을 지켜보던 소백과 규, 이들 둘은 각각 거莒 나라와 노魯 나라로 몸을 피했다. 아무런 까닭 없이 사람을 마구 죽이는 양공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곁에서 소백 편에 섰던 이가 포숙아였고 규 편에 섰던 이가 관중이었다. 양공을 시해하고 제나라 군주의 자리..

떠나야 할 때 떠난 사람-범려范蠡②

-문 열기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를 펼치면 범려范蠡를 만날 수 있다. 중학 시절이었을까, 춘추시대 미녀로 이름난 서시西施가 범려의 곁에 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기에, 사마천을 만나면서『사기』곳곳을 훑었지만 서시라는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민간에 떠도는 밑도 없는 이야기를 모은 야사에나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사실도 늦게야 알았다. 그러다가 중국정법대학 리샤오李曉 교수의『상고지혜商賈智慧』를 만나며「화식열전」을 새로이 또 펼쳤고, 이제 범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부자라면……’, 역사의 무대에 영광스럽게 부활시켜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상고지혜商賈智慧』...리샤오, 商賈智慧, 廣西師範大學出版社, 『중국 옛 상인의 지혜』로 인간사랑에서 출판. 옮긴이 이기흥. 이로부터..

셈 빠른 장사꾼의 끝장-여불위呂不韋

-정도를 넘은 욕망 전국시대 말엽에 조나라 도성 한단에 온 여불위는 이미 부자였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이미 가진 재물만으로도 한평생 넉넉히 호사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은 그를 바라보는 보통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잠시 사마천을 벗어나서『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다섯 번째 편을 펼친다. 여불위의 욕망이 사뭇 진득하여 앞으로 그가 살아갈 모습을 미루어 알기에 넉넉하다. 복양濮陽 사람 여불위가 한단邯鄲에 장사하러 왔다가 진나라의 인질 이인異人을 만난 뒤 돌아와 그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여쭸다. “농사를 하면 몇 배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의 아버지가 대답했다. “열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니라.” “보석 장사를 하면 몇 배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백 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니라...

욕망이 만든 비극-이사李斯

-씨앗 한 알 먼저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가운데 '한비자韓非子' 부분 첫 번째 단락을 가져온다. 한비韓非는 한韓나라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형명과 법술에 관한 학문을 좋아했다. 그의 학설의 이론적 바탕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에 있다. 한비는 말을 더듬는다는 결점 때문에 유세에 능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장으로 이론을 세우는 데는 뛰어났다. 그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경荀卿을 스승으로 모시고 섬겼는데, 이사는 자신이 한비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韓非者, 韓之諸公子也. 喜刑名法術之學, 而其歸本於黃老. 非爲人口吃, 不能道說, 而善著書. 與李斯俱事荀卿, 斯自以爲不如非.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이사李斯는 자신이 한비만 못하다고 생각했다.’에 얼른 밑줄을 그었다. 귀곡자를 함께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

갈등과 화해-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

-앞 이야기 전국시대 말엽, 서쪽 변방의 진나라가 함부로 넘보기에는 버거운 상대가하나 있었으니 바로 조나라였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철저히 무릎 꿇리기엔 자기가 입을 상처도 만만치 않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조나라에는 염파廉頗, 인상여藺相如, 그리고 조사趙奢 같은 영명하고 지혜 넘치는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기원전 279년,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옥덩어리 하나가 조나라 조정에 풀기 힘든 문제를 던졌다. 당시 조나라의 군주는 혜문왕惠文王, 진나라의 군주는 소양왕昭襄王이었다. 소양왕이 던진 말 한 마디, 그것도 계산된 말 한 마디에 조나라 혜문왕은 조정 대신들에게 지혜를 구했다. 진나라 소양왕의 요구는 이러했다. “성읍 열다섯을 드릴 테니 화씨벽을 우리 진나라에 넘기시오.” 이쯤..

이런 복수-손빈孫臏과 방연龐涓

사마천이『사기』라는 무대에 올린 인물은 수도 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는 갈등을 풀고 화해함으로써 함께 산 인물이 있는가 하면, 갈등으로 깊어진 원한을 피로써 풂으로써 함께 죽은 인물도 있다. 상대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뒤 권력에 빌붙어 영원히 살 것처럼 으스대던 인물은 역사의 무대에서 바짓단 걷고 매를 맞으며 죽음보다 더 큰 치욕을 당하는가 하면, 당시 역사의 무대에서 죽임을 당하며 사라졌던 인물은 오늘 영광스럽게 부활하기도 한다. 모자라면 채워야 한다. 힘써 채워도 모자람을 기울 수 없다면 자기 곁에 있는 인물의 힘을 빌리는 방법이 있다. 재능 넘치는 인물이 곁에 없으면 멀리서라도 모셔야 한다. 모자람을 채우기보다 재능 넘치는 인물을 제거함으로써 홀로 권력을 오로지하며 우뚝 서려다가 추물이 된 인물을 ..

재치와 해학으로 승리한 사나이-순우곤淳于髡

1. 데릴사위 그리고 작은 키 사마천은 「맹자·순경열전」과「골계열전」두 편에서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순우곤淳于髡을 등장시킨다. 먼저 「골계열전」부터 펼친다.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의 데릴사위였다. 그는 키가 일곱 자가 채 되지 않아도 익살스러운데다 말재주가 뛰어나 여러 차례 제후 나라에 사신으로 갔지만 굴욕을 당한 일이 일찍이 없었다. 淳于髡者, 齊之贅婿也. 長不滿七尺, 滑稽多辯, 數使諸侯, 未嘗屈辱. 순우곤 ‘열전’의 첫 번째 단락이다. 데릴사위와 작은 키, 그리고 뛰어난 말재주, 이 세 가지이다. 데릴사위. 이는 그의 이름자 가운데 ‘곤髡’과 더불어 출신이 매우 비천했음을 드러낸다. ‘데릴사위’는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시작된 풍속이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맏딸이 출가할 수 없으면 집안에서 제사를 주관해야 ..

황후의 몸종에서 숙비淑妃가 된 여인-풍소련馮小憐

후주가 총애하는 풍소련은 총명한데다 비파까지 잘 탔다. 게다가 노래와 춤에도 남달리 뛰어났다. 후주는 그녀에게 빠져 숙비로 올려 앉혔다. 齊後主有寵姬馮小憐, 慧而有色, 能彈琵琶, 尤工歌儛, 後主惑之, 拜爲淑妃. -『수서隋書』 미색에 빠지니 나라 곧 망하고, 가시나무 가득하자 슬픔이 비롯되네. 소련小憐의 아름다운 몸 가로누운 밤, 북주의 군사가 진양에 들어왔다네. 一笑相傾國便亡, 何勞荊棘始堪傷. 小憐玉體橫陳夜, 已報周師入晋陽.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북제2수北齊二首』 가운데 앞부분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련小憐’이 바로 북제의 후주 고위의 후궁 풍소련馮小憐이다. 그녀는 원래 황후 목야리의 몸종이었다. 목야리가 고위에게 버림을 받은 뒤, 그녀의 신분은 한꺼번에 껑충 뛰어오르며 숙비淑妃에 봉해졌다. ..

나라의 평화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인물-경보慶父

중손仲孫이 돌아와서 아뢰었다. “경보를 없애지 않으면 노魯 나라에 재난이 그칠 날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제환공齊桓公이 물었다. “어찌해야 그 양반을 없앨 수 있겠소?” 중손이 대답했다. “재난이 그치지 않으면 장차 스스로 무너질 것이오니, 왕께서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소서.” 仲孫歸曰 : “不去慶父, 魯難未已.” 公曰 : “若之何而去之?” 對曰 “難不已, 將自斃, 君其待之!” -『좌전左傳』 「민공원년閔公元年」 탐관오리 백성 괴롭히면서도 거리낌 없고, 간신들 임금 속이면서도 두려움 없네. 貪吏害民無所忌, 奸臣蔽君無所畏.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의『채시관采詩官』가운데 한 부분이다. 백성 괴롭히고 임금 속이면서도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었던 간사한 신하는 어느 왕조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는 이들..

재상이 된 노예-부열傅說

어느 날 밤, 무정武丁은 꿈에 성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열說이라고 했다. 날이 밝자 무정은 꿈에서 만났던 성인의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여러 신하와 많은 관리들을 두루 살폈다. 그러나 이 성인을 닮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리하여 여러 관리들을 민간으로 보내 두루두루 찾게 했다. 마침내 부험傅險에서 열을 찾아냈다. 당시 열은 공교롭게도 징역을 사느라 부험에서 길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파견되었던 관리가 열을 데리고 무정 앞에 나타났다. 무정은 바로 이 사람이 열이라고 말했다. 열을 찾고 나서, 무정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훌륭한 성인임을 안 무정은 열을 가까이 두고 재상의 자리에 앉혔다. 은나라에는 멋진 정치가 펼쳐졌다. 이리하여 부험이라는 지명을 써서 열의 성으로 삼고 부열傅說이라..

오손烏孫에서 눈물 흘리며 시를 읊은 공주-세군細君

오손烏孫이 말 1천 필을 건네고 한나라 딸을 맞이하려고 하자, 한나라는 종실의 딸인 강도옹주江都翁主를 오손왕의 아내로 보냈고, 오손왕 곤모昆莫는 (그녀를) 우부인으로 삼았다. 烏孫以千匹馬聘漢女, 漢遣宗室女江都翁主往妻烏孫, 烏孫王昆莫以爲右夫人. 『사기史記』「대원열전大宛列傳」 한고조 유방 흉노를 치다가 포위되었는데, 어느 날 곤경에서 벗어나려 화친을 도모했네. 그때에도 날카로운 검 있었는데, 어찌하여 봉춘군을 죽일 이 없었던고. 漢帝西征陷虜塵, 一朝圍解議和親. 當時已有吹毛劍, 何事無人殺奉春. 서한의 개국 황제 고조 유방이 백등산에서 흉노의 선우單于 묵돌冒頓에게 밤낮 이레 동안 포위되었다가 겨우 빠져나와 조정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강대한 묵돌의 군대가 북쪽 변경을 걸핏하면 넘보는 상황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는 힘..

토번吐蕃으로 간 당나라의 화친공주-문성공주文成公主

나라의 기운이 한창 번성하던 시대에는 최고 통치자의 위세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그랬다. 그가 나라를 이끄는 힘이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우렁찼다. 당의 북쪽에 동서로 제법 큰 세력을 펼치던 동돌궐과 서돌궐도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네 해만에 무릎 꿇렸고, 십 년도 채 안 된 정관 9년(AD 635년)에는 당의 왼쪽 옆구리를 집적거리던 토욕혼土谷渾을 물리쳤다. 몇 해 뒤, 정관 12년(AD 638년)에는 송주松州(지금의 스촨성四川省 쑹판현松潘縣)에서 벌어진 큰 싸움에서 토번에게 큰 패배를 안겼다. 당시 송주를 미리 점령했던 토번의 군주는 쑹짼감뽀松贊干布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칭장고원靑藏高原에 여기저기 흩어진 부족들의 잦은 내란을 잠재우고 이들을 하나로 모아 왕국을 건설..

음악으로 평화 이룬 연주가-종의鍾儀

진晉 나라 군주 경공景公이 군대 안의 곳집을 시찰하다가 종의를 보자 곁에 있던 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쪽 지방의 모자를 쓴 저 죄수는 어떤 이인가?” 이 물음에 곁에 있던 관리가 대답했다. “정鄭 나라에서 바친 초楚 나라 죄인이옵니다.” 경공이 그를 풀어주며 곁으로 불러 위로했다. 종의는 머리를 조아리며 두 번 절을 올렸다. 경공이 초나라에 있는 그의 겨레붙이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악관이었습니다. 그러자 경공이 다시 물었다.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겠구려?” 晉侯觀于軍府, 見鍾儀, 問之曰 : “南冠而縶者, 誰也?” 有司對曰 : “鄭人所獻楚囚也.” 使稅之, 召而弔之. 再拜稽首. 問其族, 對曰 : “泠人也.” 公曰 : “能樂乎” 『좌전左傳』「성공9년成公九年」 옛적에 공자께서 진陳에 계실 때, 고..

광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으로 일어선 사나이-이연년李延年

이연년은 중산국中山國 사람이다. 그는 부모, 형제, 자매와 함께 모두 다 광대였다. 이연년은 법을 어겨 부형腐刑을 받은 뒤 구감狗監 일을 맡았다. ……이연년은 노래에 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도 만들었다. 당시 황제는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음악에 어울리는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작정이었다. 이연년은 황제의 뜻을 잘 받들어 새로운 노랫말을 만들어 연주하였다. 그의 누이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에 이연년은 2천 석의 인수를 차고 협성률로 불렸다. 李延年, 中山人也. 父母及身兄弟及女, 皆故倡也. 延年坐法腐, 給事狗中. …… 延年善歌, 爲變新聲, 而上方興天地祠, 欲造樂詩歌弦之. 延年善承意, 弦次初詩. 其女弟亦幸, 有子男. 延年佩二千石印, 號協聲律. 『사기史記』「영..

세상의 소리를 알았던 장님-사광師曠

진晉 나라 군주 평공平公이 대종을 주조한 뒤 악공들에게 그 소리를 듣게 하니 모두 음률이 고르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사광은 이렇게 아뢨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주조해야겠습니다.” 평공이 말했다. “다들 음률이 고르다고 하지 않소?” 사광이 다시 아뢨다. “훗날 음률을 아는 이가 있어 이 대종의 음률이 고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저는 임금께서 이 때문에 치욕스러울세라 염려합니다.” 晉平公鑄爲大鐘, 使工聽之, 皆以爲調矣. 師曠曰 : “不調, 請更鑄之.” 平公曰 : “工皆以爲調矣.” 師曠曰 “後世有知音者, 將知鐘之不調, 臣竊爲君耻之.” -『여씨춘추呂氏春秋』「중동기仲冬紀」 종자기 갑자기 세상을 뜨니, 유백아 역시 끝이로다. 거문고 줄 끊고 세상 사람과 멀리했네, 지음이 이로부터 사라졌다며. 호파가 줄..

하늘 오르려는 황제의 꿈을 이루어 준 황두랑黃頭郞-등통鄧通

서한의 문제가 꿈에 하늘로 오르려고 했지만 오를 수 없었다. 이때, 황두랑이 그를 뒤에서 밀어 하늘로 오르도록 해 주었다. 문제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살피니 옷의 등 뒤로 띠를 맨 곳의 솔기가 터져 있었다. 꿈에서 깬 문제가 점대漸臺로 가서 꿈속에서 자기를 하늘로 밀어올린 이를 남몰래 찾았다. 그런데 등통의 옷 뒤 솔기가 터졌는데,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孝文帝夢欲上天, 不能, 有一黃頭郞從後推之上天, 顧見其衣裻帶後穿. 覺而之漸臺, 以夢中陰目求推者郞, 卽見鄧通, 其衣後穿, 夢中所見也. -『사기史記』「영행열전佞幸列傳」 엄릉의 가난뱅이 등통이 굶어죽었네, 황제께서 어찌 도울 힘이 없었으랴. 대장부 아직 이루지 못했다 내치지 말게, 권세에 빌붙기 굳센 기상 버리네. 鄧通餓死嚴陵貧, 帝王豈是無人力. 丈夫未達莫..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위부인魏夫人과 정수鄭袖

회왕懷王이 화를 내며 명령을 내렸다. “코를 베어라.” 정수鄭袖는 앞서서 시종들에게 이렇게 일러두었다. “대왕께서 말씀이 있으면 반드시 그 뜻을 따라야 하오.” 시종이 칼을 뽑아 이 여인의 코를 베었다. 王怒曰 : “劓之.” 夫人先誡御者曰 : “王適有言, 必可從命.” 御者因揄刀而劓美人. -『한비자韓非子』 「내저설하內儲說下」 “저년의 코를 당장 베어라.”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초회왕의 명령은 서슬이 퍼랬다. 군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한 손에 틀어쥐었던 그 시절에 감히 앞을 막아서는 자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그렇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한 여인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내린 명령이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초회왕은 전국시대 일곱 개의 강국 가운데 하나였던 초나라의..

콩나물 기르기

1. 어떤 종류의 콩이든 모두 콩나물로 기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쥐눈이콩을 선택했습니다. 쥐눈이콩은 쥐눈처럼 생긴 콩입니다. 바로 이 콩이 쥐눈이콩입니다. 2. 시루에 콩 앉히기 따로 콩나물시루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플라스틱채반을 썼습니다. 여기에 물기 잘 빠지는 천을 깔고 콩을 앉힙니다. 3. 앉힌 콩을 천으로 덮습니다. 이제 2~3 시간에 한 번씩 물을 줍니다. 덮은 천 위에 그대로 물을 주면 됩니다. 4. 이틀 뒤의 모습입니다. 참, 온도는 20도로 맞추었습니다. 5. 사흘 뒤의 모습입니다. 6. 닷새 뒤의 모습입니다. 아차, 너무 자랐습니다. 한나절쯤 전에 끝냈어야 했는데, 좀 늦었습니다. 그만 잔발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6. 뽑은 콩나물 가운데 몇 개만 나란히 줄을 세워봅니다. 7. 콩..

생활 속에서 2022.03.10

매화나무 삽목

1. 삽목 시기...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가 좋다는 안내가 인터넷에 올라 있습니다. 새해, 소백연봉에 아직 흰 눈이 가득한데도, 안달이 난 나는 1월이 아직 한참 남았지만, 매화나무 곁을 그냥 지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월 22일 한 차례, 2월 16일 한 차례, 두 차례로 나누어 삽목했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하며 관찰할 것입니다.) 붙임1. 그러고도 3월 10일~3월 30일까지 시차를 두고 각각 5차례 나누어 삽목을 했습니다. 2. 삽수揷穗 채취... 가. 삽목을 위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낸 식물의 싹을 삽수라고 합니다. 나. 삽수는 지난해 자란 도장지徒長枝를 가져와야 합니다. (도장지에는 꽃눈은 없고 잎눈만 있습니다.) 3. 도장지를 일정한 길이로 자르기 가. 15cm 정도가 알맞습니다. ..

생활 속에서 2022.03.06

오리무중 五里霧中

옛적에 기린을 본 적이 없는 이가 일찍이 기린을 본 적이 있는 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린은 어떻게 생겼소?” 기린을 본 적이 있는 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기린은 꼭 기린처럼 생겼소.” 물었던 이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기린을 진즉 보았더라면 그대에게 묻지도 않았을 거외다. 그런데 그대가 기린은 꼭 기린처럼 생겼다고 말하니, 어떻게 알 수 있겠소?” 그러자 기린을 본 적이 있는 이가 이렇게 일렀다. “기린은요, 몸은 사슴의 몸이요, 꼬리는 소의 꼬리이며, 발굽은 사슴의 발굽이고, 등은 말의 등입니다.” 물었던 이가 그제야 알아들었다. 모자牟子의 『모자 이혹론牟子理惑論』가운데 한 부분을 가져왔다. 기린을 본 적 없는 이에게 ‘기린은 꼭 기린처럼 생겼다.’는 설명은 듣는 이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

산문 마당 2022.01.18

쟁공爭功

입과 코가 누가 더 지위가 높은지 쟁론을 벌였다. 입이 먼저 말했다. “나는 예와 지금의 시비를 논할 수 있는데, 네가 어떻게 나보다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이 말을 들은 코도 내받았다. “마실 것 먹을 것 모두 나 없으면 나누어 가를 수 없는데.” 그러자 눈이 코에게 말했다. “나는 가까이 솜털의 끝까지 가려내고 멀리 하늘 저 끝까지 살필 수 있으니 나를 제일 앞에 두어야지.” 또 눈썹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넨 무슨 공을 세웠다고 내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가?” 눈썹이 입을 열었다. “나는 비록 주인에 대한 손님처럼 아무 쓸모없다고는 하지만, 주인도 손님 없으면 예의를 차릴 수 없지. 만약 나 눈썹이 없다면 어떻게 얼굴 꼴을 갖추겠어?” 북송北宋의 왕당王讜이 엮은『당어림唐語林』에서 가져왔다. 조선..

산문 마당 2022.01.18

복사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식부인息夫人

가는 허리 좋아하는 초 임금 궁 안에 복사꽃 새로 피었는데, 한마디 말 없이 몇 번의 봄이 지났구나. 끝내 식국息國이 망한 건 무엇 때문인고, 가엾어라 금곡의 누각에서 몸 던진 여인이여. 細腰宮裏露桃新, 脈脈無言度幾春. 畢竟息亡緣底事, 可憐金谷墜樓人. 842년, 황주黃州 지방 자사刺史로 지방에 좌천된 시인 두목杜牧이 그보다 무려 1천 5백 년 앞서 춘추시대를 살았던 '도화부인桃花夫人'을 그리며 읊은 칠언시, '제도화부인묘題桃花夫人廟'이다.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웠기에 '도화부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여인 식부인息夫人의 죽음을 떠올리며, 다시 서진 때의 부호 석숭石崇의 애첩 녹주綠珠를 데려온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을 우리는 이 시에서 만난다. 두 여인은 모두 자기의 참사랑 한 남자를 위해 하나뿐인 목..

지도와 함께하는 전국시대 전쟁 13 장면

* 먼저 전국시대 진입 직전의 지도를 보인다. 1. 탁택지전濁澤之戰 - 기원전 369년, 탁택濁澤(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윈청시運城市 부근)에서 - 위魏와 한+조韓.趙 연합군이 벌인 전쟁. - 위가 한+조 연합군을 물리치고, > 위의 공자 앵罃이 자력으로 위의 세 번째 군주, 곧 혜왕惠王의 자리에 오름. > 위의 혜왕은 도읍을 안읍安邑에서 대량大梁으로 옮겼기에 역사에서는 양혜왕梁惠王이라 일컬음. - 위의 내분 > 위의 군주 무후武侯가 세상을 떠나자, > 무후의 맏아들 공자 앵罃과 둘째아들 공중완公中緩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 세력이 약한 공중완이 조의 도성 한단邯鄲으로 몸을 피하며 도움을 요청하자, - 송宋에 있던 위의 대부 공손기公孫頎도 조를 거쳐 한의 도성 정鄭(지금의 허난성 신정新鄭)으로 들..

아직도 사랑하는 그 사람 기다리는 여인 - 소소소蘇小小

저는 유벽거를 탔고요, 그대는 청총마를 탔군요. 어디에서 우리 마음 맺을까요? 서릉의 송백나무 아래지요. 妾乘油壁車, 郞騎靑驄馬. 何處結同心, 西陵松柏下. 중국판 ‘춘희椿姬’로 이름난 소소소蘇小小의『동심가同心歌』이다. 진실한 사랑만이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만들고 영혼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알렉산드르 뒤마의『춘희』보다 무려 1천 3백여 년 전, 중국 땅 남북조 시대 남쪽 왕조 제齊 나라에 살았던 가냘픈 여인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가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딸로서 사랑을 독차지했던 소소소였다. 그러나 그녀가 열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머니마저 잇달아 세상을 버리자, 그녀는 집안의 재산을 다 팔아버린 뒤 유모를 따라 서쪽 서령교西泠橋 부근으로 옮겨 송..

중국의 전통 악기

중국은 예부터 기악이 자못 발달한 나라였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옛적에도 악기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뒷날의 삶의 모습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 중국 옛적의 전통 악기 열 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1. 북[鼓] 이 악기는 대략 4천여 년의 역사를 가졌을 정도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출현했다. 이 악기의 소리가 하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높여 받들었기에 제사를 올릴 때 빠지지 않고 연주했다. 여기에 더하여 수렵이나 정복 전쟁 중에도 널리 쓰였다. 주나라 때에는 8음이 있었는데, 이 북[鼓]을 여러 음의 머리로 삼았다. 그러기에 '금琴'과 '슬瑟'을 타기에 앞서 먼저 '북'을 울림으로써 다른 소리를 이끌었다. 2. 생황[笙] 관악기의 발음원이 되는 피리서, 얇은 진동관을 울림으로써 소리를 ..

다 가지려다 다 놓친 사나이 - 노애嫪毐

시황제가 장년이 되어 가도 태후는 음란한 행동을 그치지 않았다. 여불위는 화가 자기에게 미칠세라 두려워서 남몰래 거시기가 큰 노애를 찾아 사인으로 삼고, 걸핏하면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며 노애의 거시기를 오동나무 수레바퀴에 달아서 걷게 하였다. 태후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 것이다. 始皇帝益壯, 太后淫不止. 呂不韋恐覺禍及己, 乃私求大陰人嫪毐以爲舍人, 時縱倡樂, 使毐以其陰關桐輪而行, 令太后聞之, 以啗太后. '여불위열전呂不韋列傳' “이 몸이 진왕의 의붓아비인 줄 알고나 있는가? 네까짓 거지같은 것들이 감히 나와 맞서겠다고?” 몇 순배 돈 술이 이 양반의 간을 배 밖으로 끌어냈던 것일까? 이미 얼굴은 불콰하니 술기운이 가득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벌어진 말싸움에서 목소리를 높여 내뱉었지..

지도와 함께하는 춘추시대 전쟁 13 장면

*먼저 춘추시대 초기의 지도를 잘 살펴보자. 1. 수갈지전繻葛之戰 - 기원전 707년에 정鄭이 수갈繻葛(지금의 허난성 창거시長葛市 북쪽)에서 주왕실의 연합군을 크게 물리친 전쟁. - 주평왕周平王의 뒤를 이어 자리에 오른 주환왕周桓王은 제후국 정鄭에 대하여 강경정책을 실시. - 정의 장공莊公이 이에 반기를 들며 주왕을 다시는 알현하지 않자, - 주환왕은 채蔡, 진陳, 위衛(卫) 등 제후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정을 공격. - 정의 군사가 쏜 화살이 주환왕의 어깨에 명중 - 주왕의 군대는 크게 패함. > 이 전쟁으로 주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며 쇠락하기 시작하지만, > 제후국은 세력을 크게 불리며 패권을 다투기 시작. -정장공이 승리한 원인 > 진공 방향의 정확한 선택-주왕실 연합군의 취약점을 면밀히 파악한 ..